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불평등’에 대한 해석을 두고 한국경제와 한겨레가 서로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겨레와 한국경제는 각각 지난달 31일치 지면과 3일치 지면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며 디턴의 ‘불평등’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31일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앵거스 디턴의 불평등 논란을 다뤘다. 한국경제신문사 출판 계열사인 한경BP의 ‘위대한 탈출’ 왜곡을 처음 주장했던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한경BP가 ‘위대한 탈출’을 번역하면서 제목과 부제, 본문의 소제목을 고치고 서문-도입부-본문의 일부 내용을 삭제·편집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겨레는 디턴과의 e-메일 인터뷰도 공개했다. 

디턴 교수는 “한경BP와 모회사인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자유경제원은 당신의 ‘위대한 탈출’ 핵심 논지를 ‘불평등은 성장을 촉진하므로 좋은 것이다’ 식으로 제시했다”는 한겨레 질문에 “모든 분별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친성장론자다. 그러나 무조건 성장이 좋다는 건 아니다. 불평등은 성장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장단점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고 답했다. 

   
▲ 한겨레 10월31일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겨레는 “‘위대한 탈출’ 번역 왜곡의 특징은 다름아닌 그 ‘체계성’에 있다”며 “책의 부제목 변경→책 전체의 편성 변경→장 제목 변경→절 제목 변경→텍스트 변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계적인 과정을 따라 왜곡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실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제는 3일 지면 한 면과 오피니언면 절반 이상을 할애해 한겨레의 ‘번역 왜곡’에 반박했다. 특히 이번 ‘디턴VS 피케티’ 대립점을 강조했던 정규재 주필이 직접 “누가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왜곡하나” 기명 칼럼을 통해 “일부 변형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억지 시빗거리’가 됐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정규재 주필은 한겨레가 “부분의 진술을 진술의 전부요, 핵심인 것처럼 치환하는 교묘한 편집”을 했다고 주장하며 “‘세계는 정말 좋아졌어. 그러나 불평등도 여전히 많아’ 이것이 명징한 디턴의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재 주필은 디턴이 “피케티와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피케티와 디턴의 비교나 평가 같은 문제는 제3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그러면서 8면 기사에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스티븐 그랜빌 전 호주 중앙은행 부총재 등도 디턴과 피케티를 비교했다며 “한경이 피케티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디턴을 억지로 피케티 열풍에 끌어다붙였다는 김공회 연구위원의 주장이 오히려 왜곡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 한국경제 38면 '정규재 칼럼'.
 

 

한경은 또 디턴이 ‘불평등과 빈곤이 성장을 향한 위대한 탈출 동기라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한경은 디턴이 성장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또 다른 불평등의 확대 가능성을 지적한 점에 대해서는 “디턴의 표현대로 이는 ‘발전의 산물일 뿐 불평등은 다시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다수 언론은 ‘피케티와 디턴이 대립점에 있지 않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오일만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지난달 16일 쓴 “왜곡된 노벨경제학상” 칼럼에서 “그가 국내에서 ‘불평등 옹호론자’로 둔갑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관인 것은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입증한 피케티 교수의 대항마로 디턴 교수를 내세웠다는 점이다”며 “경제학계에서는 이번 논쟁을 성장론자들의 무리한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보는 시각이 많다. 디턴 교수의 방대한 연구 논문이나 저서에서 극히 일부분인 내용을 끄집어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해석한 흔적이 많다”고 비판했다. 

뉴스토마토는 지난달 27일 “회의적 낙관론자 디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한다’” 기사에서 디턴 교수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짚어낸 연구 성과로 노벨경제학상을 탔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턴 교수는 노벨상 수상 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불평등은 양날의 검과 같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불평등은 노력에 대한 보상의 일부지만 이미 불평등에서 ‘탈출’한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이들에게 민주주의와 복지 혜택을 뺏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스토마토는 “불평등의 양면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디턴은 피케티의 연구를 인용해 ‘소득의 과도한 집중이 부자들의 정치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며 “디턴과 피케티가 대척점에 서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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