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가 ‘종북좌파’도 아니고 졸지에 사회주의자가 됐다. 빌 게이츠가 “사회주의가 미래 지구의 유일한 대안 체제”라고 말했다는 외국 언론을 인용한 한국 언론의 보도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인터뷰 원문에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없다. 

2일 오전 세계일보에 <빌게이츠 “사회주의가 미래 지구의 유일한 대안체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서 세계일보는 빌 게이츠가 최근 미국 시사종합지와 인터뷰에서 “오직 사회주의만이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는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며 이같이 단언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민간 부문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효율적이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한 효과적인 대체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부의 연구개발(R&D)은 주로 경제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기술 개발에 한정됐다. 잠재적인 탄소세 부과 외에는 혁신가들이나 공장주들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꿀 만한 유인책이 없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이 기사는 포탈과 SNS를 통해 확산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몇몇 매체들이 이 보도를 받아썼고, 누리꾼들은 “빌게이츠도 종북 좌파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인터뷰 원문에는 사회주의(socialism)라는 단어가 없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단어는 수차례 등장하지만, “자본주의는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빌게이츠는 ‘왜 자유 시장이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충분히 빠르게 개발하지 못하냐’는 질문에 “상당한 탄소세 부가 없이 혁신가들이나 생산설비 구매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할 인센티브가 없다”고 답한다. 

   
▲ 애틀랜틱의 빌 게이츠 인터뷰 기사 갈무리.
 

또한 빌 게이츠는 ‘탄소 에너지에서 (새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는 질문에는 “에너지 R&D에 정부 투자를 두 배 이상 받기는 어려울 듯 싶지만, (나는) 세 배가 되길 원한다”고 답한다. 즉 빌게이츠는 인터뷰에서 자유시장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야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산업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개입, 정부의 투자 증대를 ‘사회주의’라고 해석한 걸까?

“사회주의가 미래 지구의 유일한 대안체제” “자본주의는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는 표현은 애틀랜틱 기사를 인용한 인디펜던트(independent) 기사에 등장한다. 인디펜던트 기사에도 본문에는 이러한 표현이 없다. 

오로지 기사 제목에만 이러한 표현이 등장한다. 인디펀덴트 기사 제목은 <빌 게이츠 “자본주의는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Bill Gates says that capitalism cannot save us from climate change)”>이다. 인디펜던트의 주요 기사 100개를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소개하며 “Bill Gates says that only socialism can save us from climate change”(빌 게이츠 “ 사회주의만 우리를 기후변화로부터 구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빌 게이츠의 발언이 사회주의로 둔갑된 출처는 이곳이었다. 

   
▲ 인디펜던트 기사를 소개하는 사이트 '인디펜던트 100' 사이트 갈무리. 왼편에는 기사를 소개하는 설명으로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나와 있고, 오른편 인디펜던트 기사 제목에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구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세계일보 기자도 출처가 인디펜던트 기사 소개용 표현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송민섭 세계일보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디펜던트에서 운용하는 100’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거기서 제목을 그렇게 달았고, 소제목도 연관해서 달아서 (그렇게 인용했다)”며 “밑에 인디펜턴트 출처를 밝혔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기자에게 “전화 거신 기자는 애틀랜틱 기사도 보셨나? (사회주의라는 말이) 하나도 안 나왔나”라고 묻기도 했다.

세 차례의 인용을 거치며 빌 게이츠가 사회주의자가 됐다. 인디펜던트는 애틀랜틱 기사를 보도하며 본문에 없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는 우리를 구할 수 없다’라는 표현을 썼고, 세계일보가 최초로 이를 인용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화제가 되자 다른 언론들이 다시 이 표현을 검증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결과적으로 누리꾼들은 낚시를 당한 셈이 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