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이 청와대로 뛰어가는 것이 한국언론의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다. 대변인, 홍보수석 등 청와대의 언론계 주요 인사 차출은 수시로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정의와 진실을 외치던 공영방송사의 앵커, 시사토론 사회자들은 하루아침에 집권당의 일방적 주장을 진실인양 포장하여 똑같은 입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10월 25일 청와대 신임 대변인에 MBC 시사제작국장이자 MBC 100분토론 진행을 맡았던 정연국 씨를 내정했다고 한다. KBS 앵커출신 민경욱 전 대변인에 이어 현직 언론인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독 언론사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 인사로 임명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내정 당일까지 SBS미디어홀딩스 사장이었으며 윤두현 전 홍보수석도 YTN플러스 사장을 맡고 있다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 임명된 김성우 현 홍보수석도 SBS기획본부장 출신이다.

청와대에 KBS, MBC, SBS 등 공중파방송의 주요 언론인들과 뉴스전문채널 YTN 사장등이 자리를 바꿔가며 드나들어도 아무 문제없는가. 이들의 청와대행에 대해 해당 언론사의 입장은 무엇인가. 후배 언론인들은 왜 아무 말도 없는가.

방송사 앵커, 시사제작국장, 사장 등의 주요 역할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일이다. 권력 감시를 제대로 했다면 청와대에서 이들을 불러갈 이유가 없다. 이들이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로 간다는 것은 그동안 무늬만 언론인이었고 특정당이나 권력자의 심부름꾼, 하수인 역할을 열심히 했다는 반증이다.

   
▲ 민경욱 청와대 전 청와대 대변인(왼쪽)과 이번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정연국 전 MBC시사제작국장(오른쪽)
 

MBC 경우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세월호 사건 보도에서 MBC는 대형오보, 망언을 가장 많이 보도한 방송사였다. 시사저널에서 매년 조사하는 언론사별 신뢰도조사에서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으며 공영방송사의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다.

청와대로 달려가는 시사제작국장은 개인의 직업적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방송사에 남아있는 후배 언론인들의 몫이다. 일부에서는 방송사 현직에서 권력의 입으로 자리를 옮긴데 대해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후배들중 후임 앵커나 국장들도 청와대의 요청이나 지시에 잘 따르면 대변인, 홍보수석에 이어 국회의원 출마라는 코스를 밟게 된다는 기대감을 갖게도 한다.

현직 언론인들의 권력행은 불공정 보도, 곡필의 댓가로 챙겨주는 전리품으로 봐야 한다. 그 결과는 언론 신뢰도 하락이며 국민 불신으로 이어진다. 언론인들의 권력행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직에서 권력과 결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KBS의 경우,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나 앵커의 경우, 윤리강령을 통해 6개월 이라는 유예기간을 설정했다. 물론 이마저도 지키지않는다. 윤리강령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사 앵커, 시사제작국장, 사장 등의 출세지향형 권력행은 이땅의 언론을 퇴보시켰다. 언론을 권력의 완벽한 종속물로 전락시켰다. 1970년대에나 볼수 있었던 언론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사의 후퇴를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1947년 미국의 ‘허친스 위원회’는 언론의 통제방식과 생존방식 등을 통해 전세게의 언론을 분석한 후 '언론의 네가지 이론 (Four theories of the press)'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권위주의 이론 (Authoritarian theory), 자유주의 이론 (Libertarian theory), 공산주의 이론 (Communist theory), 사회책임이론 (Social Responsibility theory) 등으로 분류했다.

윌버 쉬람, 시버트 등의 학자에 따르면, 1950년대 비교적 현대에 발전한 모델로 사회책임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서 언론은 정부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국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서방언론은 주로 사회책임이론에 입각하여 언론자유와 책임이라는 입장에서 발전방향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16세기 영국에서 발원한 권위주의 이론으로 한국언론 모델이 설명되지않는다는 판단하에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1960년와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 전세계에 내놓은 ‘발전 저널리즘 (Development Journalism)' 모델이다.

‘발전 저널리즘’ 모델에 대해 미국의 언론학자 로젠블럼 (Rosemblum) 은 “Reporting the World for America"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언론이 다루는 모든 정보는 국가의 발전과 직결돼야 한다. 국격을 실추시키거나 국내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뉴스나 정보를 허용하게 되면, 더 큰 국가적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의 정보통제는 정당한 권리일뿐만 아니라 필수적 수단이다.”

1970년대 한국 언론은 ‘발전저널리즘’의 전형적인 모델로 소개하며 오늘날 제3세계의 대표적 유형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전저널리즘에서 언론과 권력간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면 앵커든 언론사 사장이든 권력자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것이다. 언론자유는 국가발전이라는 대명제하에 언제든지 제한할 수 있으며 이는 정당화 된다는 논리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현대인들이 유신시대나 가능했던 발전저널리즘의 구태를 변함없이 목격하는 것은 불행이다. 권력과 언론이 경계구분없이 넘나드는 것은 곧 진실과 정의가 위험에 빠졌다는 소리다. 이는 국민의 정당한 알권리가 왜곡,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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