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은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무기력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유신시대’라 일컬어지는 현 시대를 사는 후배 언론인들에게, 41년 전 유신정권에 대항했다가 해직당하고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선배들이 건네는 고언이다.

지난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1주년을 기념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언론인들이여, 이제 그만 깨어나라-자유언론실천선언’ 41주년을 맞아’라는 성명서에서는 “패배주의와 무기력을 떨치고 자유언론을 살리기 위한 과감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2천만 노동자를 ‘쉬운 해고’의 희생자로 만들어 재벌과 대자본가들이 갈수록 ‘풍요’를 노래하도록 해주려는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 재앙’, 1970년대 박정희의 한국적 파시즘과 민주·민생·평화 파괴를 합리화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죄악상을 지우거나 미화하려는 역사 쿠데타가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청와대의 하수인인 ‘낙하산 사장들’이 인사권과 편집·보도·제작권을 좌지우지하는 체제 속에서 아무리 진실을 보도하고 성실한 논평을 하려고 해도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암담한 처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며 “41년 전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명백히 주장했듯이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 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통해 한국 언론의 자유를 드높였다.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언론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주 중대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은 몰락의 날을 향해 제동장치도 없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자전거나 다름없다”며 “언론노동자들이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나서지 않는 한 그 ‘자전거’는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고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기나긴 굴종과 침묵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라”고 덧붙였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동아투위의 성명서는 41년 전 발표했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도 있지만 오늘의 현장에서 온갖 악조건 속에서 청와대 낙하산 사장, 족벌가문이 경영하는 신문, 심지어 진보 언론을 자청하는 언론사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고, 때로는 기회주의적인 행태들을 지적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동아투위 소속 한 언론인 역시 “진보언론을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들이 겸손함없이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권력 주변에 머무르며 권력의 프레임을 반복 생산하는데 급급하다. 진보언론들조차 검찰 등 출입처 중심 소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에 귀기울이려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인들 스스로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자유언론으로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며 이번 성명서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아투위는 1975년 3월17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서 강제 해고된 113명이 결성한 조직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전국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 속칭 ‘기관원’을 상주시켜 수시로 언론인들을 감시했다. 이에 반발하며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사의 젊은 언론인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며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발표된 뒤 동아일보에 광고탄압이 가해졌지만, 동아일보를 격려하는 시민들의 격려광고가 이어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정권이 폭력배를 동원해 113명의 기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자유언론실천선언에는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될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다음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성명서 전문이다. 

<언론인들이여, 이제 그만 깨어나라- ‘자유언론실천선언’ 41주년을 맞아>

지금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총체적 파탄의 위기에 빠져 있다. 가장 큰 원인이 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패악, 무능과 반역사적 행태, 주권자들을 한갓 ‘신민(臣民)’으로 얕잡아 보는 오만함에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벌어지는 일들만 보아도 박 정권의 본질과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2천만 노동자를 ‘쉬운 해고’의 희생자로 만들어 재벌과 대자본가들이 갈수록 ‘풍요’를 노래하도록 해주려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 재앙’, ‘1970년대 박정희의 한국적 파시즘과 민주·민생·평화 파괴를 합리화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죄악상을 지우거나 미화하려는 역사 쿠데타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자체는 물론이고 민족공동체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오늘 언론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원래 극우보수적인 매체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1987년 6월항쟁 이래 자유언론 실천과 공정방송 구현에 앞장섰던 선배들의 투쟁을 익히 알고 있을 언론노동자들이 굴종과 침묵을 계속하고 있는 현상은 아무리 선의로 본다 한들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의 하수인인 ‘낙하산 사장들’이 인사권과 편집·보도·제작권을 좌지우지하는 체제 속에서 아무리 진실을 보도하고 성실한 논평을 하려고 해도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암담한 처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41년 전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명백히 주장했듯이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받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공영방송’은 완전히 박근혜의 친위대가 장악하고 있다. 한국방송의 이사장은 친일파의 후손이자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고, 문화방송을 감독·관리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제일야당 대표를 비롯해서 국민 대다수를 공산주의자 또는 좌파로 몰아붙이는 ‘사상적 테러리스트’이다. 두 방송의 경영진은 오직 ‘정권 안보’에 전념하면서 자유언론이나 공정방송과는 정반대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주 중대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를 하나만 들어보기로 하자. 2012년 12월의 18대 대통령선거 투개표 과정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에 관해 2013년 1월 4일 2천여명의 시민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을 때 그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강동원이 대정부질의를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투개표 조작을 폭로하면서 “공직선거법상 180일 이내에 대선무효소송 재판이 이뤄져야 하는데 1015일 째 심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진보언론’은 그 사실을 묵살해버렸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그렇게 중대한 발언을 한 것이 단 한 줄짜리 기사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동원을 ‘터무니 없는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하자 일부 ‘진보언론’은 마지못해 한 귀퉁이에 그 사건을 보도했다. 박근혜가 국정원이나 다른 정부 기관들의 부정행위에만 힘입어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원천적인 투개표 부정이 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속보와 심층보도를 신속히 내보내야 하지 않는가?

언론인들이여, 이제 기나긴 굴종과 침묵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라. 낙하산 사장들의 지배체제가 워낙 완강해서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와 무기력을 떨치고 동지애로 뭉쳐 국민대중과 함께 자유언론을 살리기 위한 과감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몰락의 날을 향해 제종장치도 없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자전거나 다름없다. 언론노동자들이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나서지 않는 한 그 ‘자전거’는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고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우리 동아투위 구성원들은 언론 동지들이 장엄한 투쟁에 나선다면 자유언론의 깃발을 함께 들고 나갈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2015년 10월 23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