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에서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감염인에 대해 치과 치료시 진료 거부 및 차별 진료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는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HIV감염인을 차별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HIV감염인 A씨는 지난 5월 보라매병원에서 스케일링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치과치료 예약날짜가 다가오자 A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초 감염내과를 통해서 치과 치료 협진을 요청했을 때는 스케일링 예약까지 잡았지만 뒤늦게 진료를 거부한 것이다. 

A씨는 서울시와 보라매병원에 민원을 넣었다. A씨는 지난 6월3일 보라매병원장으로부터 “즉시시정 조치하겠다”며 “우리병원 치과에서 HIV 감염관리에 대해 정확히 숙지하지 못해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답변을 받았다.

보라매병원은 답변서를 통해 “HIV는 환경 중에서 매우 약한 바이러스로 공기 중에 단독으로 노출되면 3초 정도면 사멸하는 바이러스이고, 체액과 같이 유출되더라도 체액이 마르면 100% 사멸되며, 공기 중 비말(침방울)로 감염되지 않는 질병”이라며 “보라매병원 내규인 ‘HIV 감염관리지침’에 치과 진료 시 표준예방지침(개인보호구 착용) 준수 외의 별도의 공간이나 시설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 지난 2일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HIV감염인에게 스케일링 치료를 위해 별도의 공간에 비닐로 감싼 모습. 사진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제공
 
   
▲ 지난 2일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HIV감염인에게 스케일링 치료를 위해 별도의 공간에 마련한 의자를 비닐로 덮은 모습. 사진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제공
 

하지만 지난 2일 A씨가 보라매병원 치과를 찾았더니 별도의 공간에 비닐로 의자 등을 덮은 뒤 진료를 진행했다. A씨는 “다른 사람들이 진료 받고 있는 곳이 아닌 별도의 방으로 데려갔는데 방에 들어선 순간 비닐이 한가득 있어 숨이 막혔다”며 “페인트칠 할 때 묻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있어 ‘내가 정말 더럽고 무서운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보통 스케일링을 받고 나면 깔끔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받고 나서 더 불편해졌고,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스케일링 시간도 더 짧았던 것 같다”며 “그날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 데 몇 번 더 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HIV감염인 환자들이 아프면 언제 어느 병원이든 갈 수 있길 바란다”며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등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내가 김장김치냐, 비닐을 치워라”, “페인트 칠하냐 비닐을 치워라”, “나도 인간답게 치료받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한 참가자들은 비닐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비닐을 씌우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대우가 보라매병원 내규에는 어긋나지만, 진료거부는 시정됐으니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랑 비교해보면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HIV감염인은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와 감염률이 비슷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김민지씨는 “치과 치료 시 타액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은 B형, C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HIV바이러스가 공기나 물에 노출될 경우 바로 사멸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1만명 정도인 HIV감염인들은 치료할 때는 차별하는 반면 200만 간염바이러스 보균자가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차별을 받았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고 지적했다. 

대한에이즈학회 ‘의료인을 위한 HIV/AIDS길라잡이’에도 HIV감염예방을 위해서는 개인보호장비 착용과 일반적인 소독 정도를 권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주의지침만 따르면 되지 별도의 공간에서 의자에 비닐을 덮는 등의 특별한 조치는 할 필요가 없다. 

HIV감염인에 대한 진료거부 및 차별 진료는 반복돼 온 문제다. 권미란 활동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특수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감염인에게 고관절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 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차별이라고 봐 재발방지를 권고했다. 지난해에도 강원도 원주의 한 병원에서 가림막이 없다는 이유로 HIV감염인에게 중이염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권미란 활동가는 “앞으로 또 어떤 이유를 들어 진료를 거부할지 걱정되고 무섭다”고 말했다. 

  

   
▲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치과치료 거부 피해자와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등 시민사회단체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보라매병원은 HIV감염인을 차별하지 말라"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장슬기 기자.
 

지난 23일 보라매병원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자의 체액이 많이 튀는 스케일링을 할 때 HIV환자 뿐 아니라 간염 환자 등 감염전파의 우려가 있는 환자의 진료 시엔 의료기기나 의자에 비닐을 씌우고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며 “비닐을 덮은 작업은 감염 전파 방지를 위한 의료행위일 뿐 환자를 차별하기 위한 작업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병원 측은 “의료진의 감염 예방과 다른 환자로의 감염전파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병원관리지침에서 정한 기준보다 더욱 강화된 감염예방조치를 위해 비닐을 덮고 진료를 실시했다”며 “향후 감염예방조치와 환자의 진료환경에 대해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최적의 방안 마련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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