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의 국내 유일 번역서가 번역 오류를 넘어 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해당 출판사가 디턴 교수에게 사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출판사는 조만간 국내 독자에게도 사과문을 발표하고 다음 달 초 왜곡 논란이 인 프롤로그 전문을 실은 재판을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사 계열사인 한경BP는 19일과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9일(한국 시간) 앵거스 디턴 교수와 프린스턴대에 에이전시를 통해 사과했다”며 “국내 번역서에 프롤로그(Introduction) 중 일부를 드러내면서 디턴 교수에게 허락 받지 않은 점에 대한 사과”라고 말했다. 

한경BP 관계자는 “프롤로그의 상당 부분이 본문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독자들이 지루해 할 수 있다는 편집자 판단에 따라 번역본에서는 해당 내용을 들어내고 출판한 것으로 오류나 왜곡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 위대한 탈출 한국어 번역본. (http://rudol.net/10123)
 

 

한경BP측은 본문에서 중복되는 내용 요약을 삭제하고 번역문을 실은 것으로 편집자의 판단이지 번역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프롤로그의 일부 내용을 빼고 출간하는 과정을 원저자인 디턴 교수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출판사 쪽의 잘못을 인정했다. 

출판업계에서는 해외 번역서의 경우 서문과 본문을 건드리지 않고 전문을 번역해 출간하는 것이 기본이 돼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예민한 학술서나 전문 번역서 등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게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서문이 국내 상황에 맞지 않는 등 번역서에 싣기 어려운 경우 해외 저자에게 수정 혹은 새로운 원고 작성을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편집자는 “한경BP의 경우처럼 서문을 일부 삭제해 출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주변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경BP는 “번역 오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위대한 탈출’의 부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이 번역서에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로 바뀐 것을 포함해 부(part), 장(cepter), 절(section) 제목이 바뀌었고 원문 내용 중 일부가 생략되거나 추가됐다며 출판사의 ‘적극적인 왜곡’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경BP 관계자는 “부, 장, 절 등 제목은 서문에서 일부를 삭제하면서 단락 구분을 새로하면서 추가·삭제된 것이 있지만 본문의 왜곡 번역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역자가 전문 번역자로 경제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에서 일부 오류가 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지만 의도적인 왜곡은 절대 없었다”고 덧붙였다.

‘디턴 VS 피케티’는 마케팅 산물 
이와 함께 국내에서는 유독 디턴과 피케티를 대립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디턴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확정, 발표된 후인 지난 13일 대부분 언론은 “불 붙은 파이 논쟁…디턴 ‘키워라’Vs. 피케티 ‘나눠라’”(뉴스1), “디턴VS피케티 누가 옳은가”(서울경제) 등 기사와 사설을 통해 디턴을 피케티의 대척점에 놨다. 

지난해 책이 출간된 당시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책 출간 당시 “피케티 ‘21세기 자본’ vs 디턴 ‘위대한 탈출’ 누가 맞을까…출판가 승자는?”(한국경제, 2014.9.12.)이란 제목의 책 소개 기사를 냈다. 

   
자유경제원이 10월 14일 주최한 앵거스 디턴 노벨상 수상 기념 <디턴의 위대한 탈출과 한국에 주는 메시지> 토론회 포스터. 사진=자유경제원.
 

한경BP는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글을 책에 실으며 디턴·피케티 교수를 대립 시키는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 냈다. 책 띠지에도 “피케티 vs 디턴”이라는 홍보 문구를 실으며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국내용’ 대립각을 만들어 냈다. 

출판사는 디턴과 피케티 교수를 대립시킨 것은 마케팅 전략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 초판이 나온 시기는 지난해 9월로 당시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흥행하던 시기다. ‘피케티 열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받았던 책과 함께 주목 받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설명이다. 

한경BP 관계자는 “국내에선 디턴 교수의 첫 책이라 학계가 아니면 디턴 교수 자체를 잘 알지 못하던 때로 홍보용으로 띠지에만 사용했던 마케팅 문구였다”며 “이를 구체적으로 피케티와 디턴의 대립점으로 이용한 것은 자극적인 문구를 좋아한 언론의 자가발전이었다”고 반박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소장의 글을 책에 삽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제학자 인재풀에 한계가 있었던 데다 현진권 원장 역시 경제학에 정통한 분이라 섭외했던 것”이라며 “이분께도 마케팅 차원에서 글의 방향을 ‘피케티와 대비시켜 달라’는 주문을 하기는 했었다”고 말했다. 

한경BP는 디턴 교수에게 서문 임의 삭제 부분에 대해 사과했고 원저자의 뜻에 따라 프롤로그 전문을 살린 번역본을 다음달 중으로 재판해 출간할 예정이다. 한경PB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프롤로그를 일부 편집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입장문을 조만간 게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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