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남 공단 소년 노동자 출신의 산업재해 장애인입니다. 주경야독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해 기득권의 길을 갈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위한 판검사가 될 수 없었고,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1989년 용기만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에 나서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으로 취임한 이재명 시장의 행적을 요약한 취임사 중 일부 내용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 시장이 지난 1일 “성남시에 거주하는 19~24세 청년들에게 1년에 100만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명 성남시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성남시는 일단 오는 2016년 24세 청년에게만 분기당 25만원씩 연 100만원을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하기로 했고 추가적으로 연령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오후 성남시청 시장실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만나 성남시 복지정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즉각 “소득취업여부 따지지 않는다”, “포퓰리즘 정책” 등의 이유로 비판했다. 청년배당에 대한 보수언론 지적의 핵심은 소득과 취업 여부를 따지지 않고, 부잣집 아이들까지 청년배당을 지급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주로 재벌 아들과 같이 특수하고 극단적인 사례를 든다. 한국 사회가 99대1 사회인데 극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99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인 합리성이 없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을 골라내는 게 비용이 더 든다. 생활수준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시민 전원을 다 조사하는 것은 비용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부자한테 왜 똑같이 주냐고?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

이 시장은 세금을 내는 과정과 세금이 쓰이는 과정의 차이를 강조했다. 이 시장은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소득 비례해) 차별적으로 징수한다”며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중으로 차별을 두는 게 반드시 필요한가’는 정책적인 판단의 문제이며 세입에 차이를 둔다고 세출에도 차이를 둬야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청년배당이 성남시에서만 쓸 수 있는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 시장은 이어 “복지는 정부 정책결정권자 결단에 의한 시혜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 입장에서 사회 공유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을 나눠 가질 권리”라며 “재벌이 특정 상품을 팔아 돈을 많이 벌면 재벌만의 것인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데 한국 사회의 지식, 인프라 등을 활용해 돈을 벌었는데 독점해야 하는가”라며 복지를 권리의 관점에서 볼 것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국가에서 일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활자금이나 의료비를 선택적으로, 시혜적으로 채워주고 있는데 만약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사는데 100정도가 필요하다면 이를 일률적으로 맞춰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복지를 시행하면 노동의욕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보면 일을 해서 일정소득이 넘어가면 지원금을 못 받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더 노동한 만큼 더 벌어 노동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는 게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를 말살하려는 벌금제도”

성남시와 같은 지방정부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하려면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최근 법제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령 해석을 내렸다. ‘협의’는 성남시가 복지부의 뜻에 반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동의’는 복지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성남시와 복지부가 협의 중인 정책은 청년배당, 성남시 공공산후조리원(270만원, 민간 산후조리원에는 50만원) 지원 정책. 교복비 지원 정책 등이 있다. 법제처에 이어 행정자치부도 나섰다. 행자부는 ‘사회보장제도의 신설·변경시 (보건복지부와의) 사전 협의를 위반하면 지방세 교부금을 깎겠다’는 내용이 담긴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정책을 추진하려면 복지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시행할 복지정책의 예산만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주는 교부금을 깎아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8월 박근혜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을 발표해 지자체가 시행중인 복지사업 중 일부를 ‘유사중복사업’으로 선정해 축소·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지방자치를 말살하려고 벌금제도를 만든 것”이라며 “이런 조치는 법에도 어긋나고 헌법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벌금(교부세 삭감)을 감수하고 복지정책을 집행하거나, 복지정책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겠다는 것인데 법정투쟁이라도 해야한다”며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부하가 아니라 독립된 정부기관”이라고 덧붙였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성남시를 통제하려고 할까? 이 시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의 복지가 확대되는 게 싫어서 반대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부정부패 안하고, 예산 낭비 안 해서 세금관리 철저히 하면 재정여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성남시가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10년 이재명 시장이 취임했을 당시 성남시의 빚은 7300여억원이었다. 이 시장은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하고 토목·건설 관련 예산을 줄여 1년에 약 1500억원씩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성남시는 3년반 만에 재정위기에서 탈출했다. 성남시 복지예산은 전임 시장 시절인 2008년 430억원에서 2015년 880억원으로 두 배정도 올랐지만, 개발사업비는 2008년 4045억원에서 2015년 1448억원으로 절반이상 감소했다. 

이 시장은 “성남시에서 대학생 등록금 대출 이자도 내주고, 어르신들 용돈 버는 사업도 하고, 보건복지 수당도 늘려주는 데 국민들이 관심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돈이 어디서 났지?, 국가에서는 왜 못하지?’ 상대적으로 성남시가 살림을 잘하고 있는 게 나타나니까 사실상 중앙정부에서 ‘너도 똑같이 못해라, 다른 사람 눈에 띄게 잘하지 마라’고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적은 예산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소한 정책은 더 있다. 성남시민 100만명 전원은 자전거보험에 가입돼 있다. 성남시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올해로 3년째다. 최근 자전거를 타다 사망한 시민의 유가족이 경찰의 도움으로 사망보험금 4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 시장은 “이런 소소한 아이디어는 SNS를 통해 시민들이 의견을 주는 것을 시정에 반영한 것”이라며 “‘수원에는 자전거보험 들어주던데 성남도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치인은 지배자가 아니다” 

이재명 시장은 자신의 모든 시정에 대해 SNS를 이용해 홍보하고 정치적인 의견을 나타낸다. 물론 SNS를 많이 해서 가볍다는 지적도 있다. 이 시장은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의식이 있어서 그렇다”며 “정치인이 무거운 게 문제다. 정치인은 머슴, 시민들이 세금내서 고용한 대리인인데 시민들 입장에서 편하고 가벼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성남시청 입구.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중앙정부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한다. 이 시장은 “세월호 사건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게을리 해서 혹은 의무를 버려서 발생했는데 100만 성남시민을 대표하는 내가 입장을 내야 하지 않느냐”며 “오히려 (발언을) 안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시장은 “내가 한 때 일베 짓을 했다. 공장에서 일할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인 줄 알고 억울한 피해자들을 몇 년 동안 욕하고 다녔다. 사상적 노예였다. 나 같은 사람도 권력의 도구로 이용당했던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딱 그런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게 아니라 도와주러 온 거에요. 쌀은 수탈당한 게 아니라 수출한 거죠. 좀 싸게 팔았을 뿐이지. 독재를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근대화 한 거예요.’ 이렇게 입력하려는 나쁜 의도”라고 지적했다. 

“주민자치의 전형을 만들고 싶다”

이 시장은 남은 임기동안 “시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성남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병을 키우기 전에 초기에 발견하거나 예방해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100만 주치의제도’는 그가 앞으로 추진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정책이며, 2013년 공사를 시작해 2017년 완공되는 성남시립의료원은 그가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정치인이 돼 실현하고 싶었던 그의 꿈이다. 

성남시의 복지정책 내지는 시민참여형 정책은 열거하기도 벅차다. 성남시 한 동에 12명의 보안관이 밤길 순찰도 하고 급한 짐을 들어주거나 택배도 대신 받아주는, 이 시장 표현에 따르면 “동네머슴 겸 야간순찰대”인 ‘성남시민순찰대’ 정책은 시범사업 중이고, 길고양이 보호사업(중성화 수술로 개체 수 조정) 등도 성남시 뿐 아니라 다수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정책이다. 

“새누리당 발목잡기? 시민들한테 말했다”

민선 5기 때 성남시 의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이재명 시정 발목잡기와 방해가 심했고, 초반에는 공무원들도 새 시장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시민들이랑 합동작전을 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인데 시의회에서 반대하면 시민들에게 알렸다. 그러면 시민들이 시의회 가서 항의하고 심하면 여의도 (새누리당) 중앙당사에 가서 항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시민들이 시장의 정책을 평가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인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고 시정에 대한 참여도 증가했다. 이 시장은 “공무원들은 로봇 태권브이 같다. 인사권을 쥔 시장이 일하는 사람을 인정해주는 인사를 두세 번 보여주면 재빠르게 최고지도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훈련돼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은 공정하고 투명한 환경에서 나온다”

지난달 이재명 시장이 구단주로 있는 성남FC와 부상 등으로 꿈을 잃었다 다시 축구선수에 도전하는 청춘FC와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이재명 시장은 “성남FC 선수를 뽑을 때 공개테스트를 할 건데 청춘FC 소속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생각할 때는 공정하게 선택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라며 “사회 전체가 투명하고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과제인데 이게 안 되는 곳이 정치영역이고, 더 심각한 영역이 스포츠계”라고 말했다. 

성남FC는 이번 시즌 초 약체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인터뷰 당시인 15일 현재 K리그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시장은 “경쟁력은 공정하고 투명한 질서에서 나온다. 내가 한 일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외부에서 선수한명 써달라는 청탁을 막은 것이다. 그러면 선수들이 자부심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팀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성남FC 인수는 모라토리엄을 극복하고 시행한 첫 공약이다. 시민주주 4만명이상이 모이고 시민축구단 운영을 위한 조례를 통과시켜 만들었다. 이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스페인 FC바르셀로나처럼 협동조합화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재명 “대선주자? 발언권 강해져서 좋긴 하다”
지난 4월부터 대권주자로 분류…“성남시 비공식 홍보대사는 홍준표”

기초자치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이재명 시장은 지난 4월부터 대권 여론조사 명단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야권에서 차기 대선주자는 박원순, 차차기는 이재명이라는 풍문도 있다. 

인터넷에서는 한 역술인이 이재명을 차차기 대선 주자로 점쳤다는 소문도 있다. 이 시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소문에 대해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하는 역술인이 있긴 했다”며 “대중들에게 재미있는 상상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대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를 기록했지만 매달 1%p씩 지지율이 올라 지난 8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시장은 4% 지지율를 기록했다. 성남시 살림만 잘하더라도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의 그의 저서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선 출마에 대한 확실한 뜻을 밝히기는 이르다고 밝힌 이 시장은 “문제는 대중 정서 바닥에 이재명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라며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니까, 너무 원칙이 없으니까 변칙과 특혜와 같은 부조리에 대해 시원하게 돌파하는 것에 대해 통쾌해하는 시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정치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 같은데 (나는) 거짓말을 안 하려고 지키지 못할 공약은 하지 않고 공약한 것은 지켜서 공약 이행률은 90%가 넘는다”며 “법에 있는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서 (사실왜곡이나 명예훼손 발언을 한) 정미홍, 변희재, 차명진 등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하고, 세금을 안 낸 사람들은 가택수사 등을 통해 끝까지 걷는 등의 모습을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재선에서 이재명 시장은 여권 텃밭인 분당에서 2010년 첫 선거(44.6%)에 비해 9.2%p 높은 53.8%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성남시의 부채를 줄여 ‘살림을 잘했다’고 평가를 받아 중산층 이상 계층에게도 인정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SNS를 많이 해 가벼워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시민들은 위대한 지도자 수령을 뽑은 게 아니라 세금으로 대리인을 고용한 것”이라며 “가볍다는 비판 자체가 비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시민들의 의견을 잘 취합해서 시정에 반영하는 게 소통이고, 소통이 안 되면 지배”라며 “시정을 잘하는 것 만큼 홍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정가의 위치에 있지만 성남시민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적인 발언도 가리지 않는다. 성남시는 친환경 무상급식, 교복비 지원, 성남시립의료원을 건립하고 있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무상급식을 폐기하고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지난 3월에는 이 문제를 놓고 이 시장은 홍 지사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시장은 “당시 홍준표 지사와 대비되면서 성남시의 정책이 홍보됐다”며 “홍준표 지사는 비공식적인 성남시 홍보대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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