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대법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판결, 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까지, 박근혜 정부의 신(新) 공안정국과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지켜보며 가장 쾌재를 부르고 있을 사람은 누굴까. 

물론 이 모든 시나리오의 발원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 대통령 다음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을 사람은? 아마도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연 ‘문제적 인물’로 떠오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일 것이다. 

고 이사장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신의 마지막 공안검사로 일하다 지난 2006년 1월 서울남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사직에 물러났다. 그 후 그는 2008년부터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국정추) 위원장을 맡으며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이른바 ‘애국보수’ 진영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사실 그는 전형적인 극우 이념으로 중무장한 사람이었다. 지난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방침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검정 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아 역사인식에 혼란을 주고 나아가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교조까지 엮어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흐름의 줄기가 고영주 이사장이 검사 시절부터 치밀하게 ‘이론화’한 후 국정추를 이끌며 본격적으로 밀어붙였던 ‘프로젝트’라면?

   
▲ 디자인=이우림 기자
 

고 이사장은 역사학자들과 전교조를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지난 2011년 8월15일 국정추와 자유민주연구학회(유동열 회장)가 공동 발간한 ‘역사왜곡을 통한 대한민국 허물기 공작, 좌편향화된 한국사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지난 좌파정부 시절 관철된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현상’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자리 잡은 친북좌파세력의 영향력이 지대함을 재확인시켜준 사례”라며 “제 나라 역사가 일부 세력들에 의해 친북좌편향으로 왜곡되고 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애국보수’의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고영주 이론화→박근혜 정권 현실화

고 이사장은 당시 MB정권에 대해선 실망감을 표하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선 “정부당국(교육부)은 묵묵부답이며 국정운영에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도, 집권여당도, 잘못된 국가시책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대다수 국회의원도 이 문제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상태”라고 불편함을 내비쳤다.

2011년 8월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도 그는 “MB 정권은 정권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그동안 중도실용이나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중도실용은 다른 말로 기회주의다. 대한민국 정통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를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고 비판했다. 

결국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목표는 그를 방문진 이사장까지 추대해준 박근혜 정권에서 달성하게 됐다. 이에 앞서 올해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기까지 그는 ‘전교조를 와해시키는 방법’을 구상해 보수·극우 진영에 줄기차게 설파하기도 했다. 

고 이장은 2011년 ‘우리 아이들 누가 망치고 있나?’라는 제목의 미래한국국민연합 창립기념 국민대토론회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아이들을 상대로 자신과 국가 사회를 망치는 반미친북반대한민국 좌경의식화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며 “이러한 전교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 이사장은 “전교조를 자연 도태시키는 방법은 교사들에 대해 정상적인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라며 “학력을 향상시킨 교사를 우대하는 교원평가제가 제대로 실시된다면 민중혁명 전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교조는 존립 근거가 없어지고 자연 도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교과부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정상적인 교원평가제도를 시행할 수 없고, 6만여 명에 달하는 전교조 조합원을 전부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전교조를 먼저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그러면 전교조의 실체를 모르고 가담했던 선의의 교사들은 전교조를 탈퇴할 것이기 때문에, 남은 핵심 조합원들에 대해서만 사법처리해 전교조를 쉽게 분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3월 당시 고영주 변호사가 위원장으로 있던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1차 수록 예정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을 포함됐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전교조는 반미·친북·좌경의식화 교육 집단” 이적단체 규정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세력” 해산 청구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권을 위한 고 이사장의 가장 혁혁한 공이라면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이다. 그는 지난 2012년 ‘통진당 해산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 3차례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서를 직접 작성했다. ‘법무부가 청원서를 베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무부의 해산심판청구 이유서는 고 변호사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2013년 11월 법무부가 발표한 ‘정당 해산 심판청구 요지’에는 “통합진보당의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해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이고,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이념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 이사장이 2012년 5월 작성한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서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김일성이 북한 공산독재 체제 즉 ‘인민민주주의’를 미화해 사용한 용어일 뿐이다. 통합진보당이 이러한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 내지 파괴해 다른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서술돼 있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민중주권주의’에 대해서도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목표로 해 소위 특권계층의 주권을 박탈하고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개념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이사장 역시 “통합진보당 강령 내용 중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정부’란 결국 노동자가 주인이 된다는 공산주의 이념의 선전이론이고, 민중민주주의는 국민 중 일부인 민중계급만의 주권을 주장함으로써 ‘국민 전체가 주인이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이었던 ‘부림사건’ 담당 검사는 이렇게 지난날의 부끄러움을 ‘망각’하고 ‘부정’하며 보수정권에 충성해 마침내 ‘일베의 영웅’이 됐다. 

특히 고 이사장은 지난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자신이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때 부림사건을 수사했다고 소개하며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고, 그 사건에 문재인 후보도 변호사였다”면서 “그러므로 나는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이사장의 주장과는 달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당시 부림사건을 변론하지 않았으며, 부림사건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공안사건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 무죄 판결 후에도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이라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억도 못 하면서 “사법부 좌경화” 탓만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 피의자의 진술과 관련해서도 거짓말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 피의자가 누군지 “너무 오래돼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선 당시 피의자가 이상록씨였다고 단정했다. 

이에 대해 영화 ‘변호인’의 실제 주인공인 고호석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상록씨의 담당 검사는 고영주가 아니라 최병국 검사”였다며 “전혀 사실이 아닌데 이씨가 돌아가신 것을 악용해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씨는 지난 2006년 고인이 됐다.

   
미디어오늘 카드뉴스. 글·디자인·사진=김유리·이우림·이치열 기자
 

고 이사장은 또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문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부림사건 등 피해자들을 불법구금한 사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고, “여관에서 당사자 동의하에 합숙하면서 수사했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에 대해 실제 고 이사장의 검사 시절인 1985년 그에게 수사를 받으며 여관에 불법구금된 적이 있다고 밝힌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경찰·검찰 같은 사법기관은 수사 대상이 되는 사람의 ‘신병’을 법률로 정해진 장소에만 ‘유치’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불법”이라며 “사법기관의 불법(구금)은 당사자가 동의해도 불법이고 동의하지 않으면 더욱더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고영주에 수사받은 기자 “여관에 알몸으로 갇혔다”)

1985년 5월 대학생들이 미국 문화원을 점거한 이른바 ‘삼민투’ 사건이 일어났고, 전두환 정권은 이를 계기 삼아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대학 캠퍼스를 덮쳤다. 당시 고려대 언론출판연합체 회장을 맡아 ‘일보전진’이라는 단행본을 펴냈던 김 기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았다. 김 기자는 이후 노태우 정권에서 사면 복권이 됐고, 2002년 6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  
 
고 이사장은 2011년 12월13일 ‘국민행동 2012 전국 순회 강연회’에서 김 기자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요새 같았으면 안 되지만 그전에는 경찰이 시위용품만 들고 와야 하는데 압수수색 영장을 가져간 김에 학생회관에 있는 걸 전부 다 가져왔다. 그 안에 ‘일보전진’이라는 고대 교지도 잘못 압수돼 온 것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려고 책을 봤다”며 그가 위법 수집 증거로 수사한 사실도 무용담처럼 말했다. 

김 기자는 고 이사장이 본인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시 자기네들이 감옥에 집어넣었던 많은 사람들이 6월 항쟁 이후 사면 복권돼 그들이 시쳇말로 ‘쪼다’가 된 것”이라며 “이런 사실이 부끄러워 더욱더 자신들의 지난날 공안 검사 경력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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