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포스트 김대중-노무현을 역설하고 낡은 진보를 청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반응이 뜨겁다. 

이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정치인' 안철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냉혹한 비판이 대부분이다. 내용도 부적절했고 입장을 밝힌 타이밍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오래된 반감도 폭발하는 분위기다.   

비판 지점 중 하나는 매번 집권여당과 싸우는 쟁점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오히려 새누리당의 주장을 '물타기'해 전선을 흐렸던 사람이 안철수 의원이었다며 이번 기자회견 내용도 물타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실제 새누리당과 첨예하게 맞서는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4월 임석규 한겨례 논설위원은 <안철수가 '싸움꾼'이 된다며>이라는 칼럼에서 "지난해 국정원 정치개입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 때였다. 어느 학자가 안철수에게 정치생명을 걸고 이 문제에 집중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 아닌가요?' 안철수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고 썼다. 

관련 칼럼은 안철수 의원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면서 화제가 됐다. 안 의원은 지난 2013년 7월에도 국정원 정치개입을 비판하면서도 "국정원 문제는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국정원을 정파의 도구로 타락시킨 이명박 정권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10년간 국정을 담당했던 민주세력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정원 정치 개입에 대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질타하며 국정원개혁 방안을 마련해도 모자라는 판에 민주세력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국정원 개혁 동력마저도 훼손시키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지난 2013년 11월엔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항의해 집단 퇴장하는데 당시 무소속이었던 안 의원이 투표에 동참한 모습도 회자됐다. 

현재 역사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안 의원은 입장은 양비론에 가깝다. 지난 2014년 교학사 교과서 채택 문제가 불거지자 안 의원은 "역사나 정파나 좌우 진영 간의 이념논쟁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는 거에 양쪽 다 문제인식을 가져야 한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보는 생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학사 교과서 문제는 국정화 교과서 추진의 직전 단계로 볼 수 있어 여야가 타협할 수 없는 싸움으로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안 의원은 교과서 문제를 정쟁으로 규정해버렸다. 현재 국정화 교과서에 대해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메시지는 물론 타이밍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역사교과서 국정 발행 행정고시를 하루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안 의원이 "과도한 이념화는 민생 문제의 소홀을 가져왔다. 양극화, 빈부격차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국민들을 일으켜 세워드리지 못했다. 성장을 말하지도 못했고 분배를 강조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는 부족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검인정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로 몰아세우고 이에 대응해 국정교과서는 친일 독재를 미화할 여지가 많다고 주장하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야당이 과도한 이념 투쟁을 하고 있다는 안 의원이 주장은 적진 분열에 가까운 주장일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의 행보 중 지난해 3월 신당 통합과정에서 민주당 정강에 나온 5.18과 4.19, 6.15 공동선언 등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것도 패착으로 꼽힌다. 

당시 안 의원 측 금태섭 대변인은 "민주당의 현행 강령을 보면 5.18, 4.19를 비롯한 여러 사건이 나열돼 있다.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전들에 대한 것은 어떤 건 넣고 어떤 건 빼냐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있어서 넣지 말자는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금 대변인의 발언은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 민주 정부가 세운 성과마저도 부정하는 듯한 안철수 의원 측의 입장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고, 안철수 의원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확산됐다. 논란이 커지자 안 의원은 진화에 나섰다. 안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 나의 역사 인식은 확고하다.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명확한 역사의 평가가 내려진 한국 현대사의 성과이자 이정표"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과거 민주정부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강정책 삭제 주장이 단순한 논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안 의원의 기본 입장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지 않으면 중도층 공략은 힘들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언제까지 돌아가신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하며 당권을 호소하고 정권 교체를 말할 것이냐"라며 "이것이 진정한 진보성이며 진정으로 두 분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냐. 두 분의 성과 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의원의 주장은 자신이 결국 김대중-노무현을 뛰어넘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주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 정부가 세운 역사조차도 확고해 보이지 않은데 정권 창출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안 의원이 중도층 공략 방안으로 내놓은 낡은 진보의 청산이 구호에 머무를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안 의원은 "포용적 대북화해협력은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지만 북한의 핵과 도발, 인권 문제에 대해 무비판적이고 온정적인 입장을 가진 세력과는 결코 연대할 수 없다"며 북한을 고리로 한 선거연대 금지 입장을 밝혔다. 안 의원이 지난해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안 의원은 '북한 동조=옛 통합진보당'이라는 등식을 세워놓고 "지난 대선 때 통진당 후보와의 연대는 얻은 표의 몇 배에 해당하는 표를 잃어버린 큰 실책"이며 "북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온정적이고 무비판적인 입장은 안보의식에 의구심을 불러 왔다. 핵이나 무력도발, 인권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색깔론 탄압, 밀어붙이기식 진보당 해산 등을 고려한다면 우파 세력의 종북 프레임에 갇힌 꼴이라는 비판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대북 문제에 과도한 이념을 개입하는 게 안철수 의원이고 북한 반대 주장을 중도층 공략에 이용하려다 정체성을 의심 받으면서 집토끼까지 잃을 위험이 크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구호가 낡은 종북 프레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 지난해 새정치연합 창당 발기인 대회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
 

안 의원의 콘텐츠로 낡은 진보를 청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있다. 안 의원은 '새정치'라는 브랜드의 지분을 가진 정치인이지만 새정치에 걸맞는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안 의원은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이 새정치라고 주장하지만 대중의 정치혐오정서에만 기대 책임없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에선 정작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며 현행 유지에 합의한 것에 대해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안 의원의 주장은 여야를 싸잡이 비판할 수 있지만 정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낡은 진보의 청산이라는 대의보다는 자신의 스피커를 최대한 키우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기자회견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를 비판하는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안 의원은 혁신위가 수개월동안 시간 낭비를 했고 100% 실패를 했다고 진단했지만 안 의원이 말하는 '혁신'의 구체적인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안 의원의 주장은 '문재인 대표로는 안된다'라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아 정치적 공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회 위원장직을 제안했을 때 거부한 것도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안 의원은 혁신위 실패에 대한 책임이 문재인 대표의 성찰없는 태도에 있다고 지적했지만 자신이 위원장직을 수락해 혁신을 관철시킬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해놓고 낡은 진보의 청산을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안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당 수권비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지만 인선과 관련해 "제가 뭘 하겠다고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한발 빼는 모습도 정직하지 않다. 문 대표 체제의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방안이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면 자신이 제안한 조직의 수장을 맡아 당을 탈바꿈시키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구호는 절실하지만 실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 의원의 발언을 두고 자기 부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안 의원은 "위원회는 계파를 떠나 합리적 개혁의지를 갖춘 인사로 구성하되 우리 당을 지지하는 인사가 아니더라도 당의 혁신과 정치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와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김종인 전 부총리, 윤여준 장관, 최장집 교수 등 안 의원의 주변 인사들이 그를 모두 떠난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안 의원의 입장 발표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안철수를 알아야 정치가 보인다"는 글은 매번 정치적 쟁점이 첨예할 때 양비론적 입장을 펼치거나 새누리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안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새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깔끔하게 새출발하는 것이 어떨까요. 낡아빠진 개념으로 말이죠”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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