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한 2002년,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던 편집국장은 농담처럼 이렇게 얘기를 하곤 했다. “월간지 기자는 한 달에 하루 일하고, 주간지 기자는 일주일에 하루 일하고, 일간지 기자는 하루에 반나절 일하고, 인터넷신문 기자들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이 얘기를 들으며 난 속으로 ‘계간지에 갔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흐흐) 당시만 해도 실시간 속보는 연합뉴스와 일부 온라인 경제 매체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편집국장은 하루 종일 전투적으로 편집을 한 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는 뿌듯한 표정으로 신문을 봤다. “이거 봐. 1면부터 3면까지 다 우리가 어제 냈던 기사들이지?” 당시 뉴스 전략은 명확했다. ‘중요한 뉴스를 골라 연합뉴스보다 깊게, 일간지보다 빠르게.’

지금은 이 전략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시간으로 속보를 쏟아내는 매체들이 넘쳐난다. 일간지들도 기사들을 묵혀 두지 않고 실시간으로 송고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 아래 언론사들은 많은 ‘혁신’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디지털 퍼스트’는 제대로 되고 있을까?

1년 넘게 해외에 있는 동안에도 한국의 뉴스를 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스마트폰을 켜면, 페이스북 친구들이 공유 기능을 통해 주요 뉴스를 전해줬다. 그것도 친절한 해설, 혹은 논평을 곁들여서. 팔로잉을 하는 몇 군데 언론사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도 웬만한 뉴스는 챙겨볼 수 있었다. 이렇게 ‘배달’을 받아 보는 뉴스 외에도 가끔은 네이버나 다음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주요 뉴스를 훑어 보기도 했다. ‘디지털 퍼스트’ 덕분이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뉴스 소비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편적인 뉴스 소비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한국을 떠나기 전 집에서 배달시켜 보던 H 신문 정기구독 신청을 했다. 신청한 날이 금요일 오후였는데, “내일부터 꼭 넣어주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H 신문을 신청한 이유는 ‘토요판’ 때문이었다. 토요판은 다소 얇지만, 주말 동안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좋은 연재가 많았다.

그런데 토요판의 팬이 나만은 아니었다. 신문배달부만이 아니라 페이스북의 페친들 역시 내 스마트폰으로 토요판의 기사들을 배달해주었다. 비슷한 경우가 매일 반복됐다. 아침에 신문을 펴들면 ‘어제 본’ 기사가 대여섯 개씩은 나왔다. 페친들이 배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H 신문사가 직접 페북에 배달해 주는 기사도 제법 됐다. 오늘(2015년 10월 12일) 자 신문에도 ‘볼만 하다’고 생각한 두 꼭지의 기사(특명! 조종사 빼오기… 숙련 아버지에 초보 아들 ‘1+1’ 채용도/대만.중국 vs 일본, 태평양에서 막오른 ‘꽁치 전쟁’)도 신문이 오기 전날 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배달이 돼 이미 읽었다. 디지털 편집자 입장에서는 좋은 기사를 널리 읽게 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하다. 다만 구독자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느껴진다나고 할까. 집에는 다 읽지도 못한 신문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왠지 종이를 낭비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돈을 들여 신문을 정기구독하는 데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사의 저녁 메인 뉴스도 심심해졌다. 스마트폰(SNS, 포털)을 켜도, TV(종편과 보도채널)를 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광고용 모니터)를 타도 어디에서나 뉴스가 쏟아진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뉴스에 노출된 생활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정통 매체(일간지, 방송 메인뉴스)들은 대부분 ‘이미 본’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 덕분이다.

언론사의 생존을 위한 혁신 구호로 ‘디지털 퍼스트’가 주창됐다. 디지털 편집부서가 만들어졌고,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 비주얼 콘텐츠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의 ‘디지털 편집부’는 어뷰징에 동원되는 부서로 전락했고, 인포그래픽은 여전히 독립된 콘텐츠가 아닌 텍스트 콘텐츠의 부가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스브스뉴스’처럼 SBS의 콘텐츠를 모바일 친화적으로 재가공해 호평을 얻고 있는 케이스가 있지만 카드뉴스는 여전히 부가 서비스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 pixabay
 

혁신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언론사 기자들에게 손바닥만 한 캠코더가 지급된 적이 있다. 동영상 플랫폼 회사가 무상으로 캠코더를 지급했다. 기자들이 동영상을 찍어오면 자신들의 플랫폼에 업로드한 뒤 기사에 동영상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을 나눠 갖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동영상 촬영을 귀찮아했고, 찍더라도 편집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영상의 퀄리티는 형편이 없었다. 회사도 무관심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동영상 서비스를 개시하자 ‘동영상을 만들어야 하나?’ 다시 고민하고 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전략수립팀은 여전히 ‘언제나 공부만 하는 부서’, ‘나를 귀찮게 할(?) 부서’ 취급을 받으면서 냉소를 받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의 전략으로 비주얼 콘텐츠 강화를 얘기하지만, 언론사 전체 인력 중 비주얼 콘텐츠 제작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나. 2007년 미국 USA투데이 본사를 방문했다. 당시 편집부 사무실이 텅텅 비어 있어 부편집장에게 물어보니 “편집기자들의 상당수에게 웹디자인 교육을 해 인력 재배치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언론사는 여전히 종이신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콘텐츠 생산은 여전히 지면 계획에 따라 실행된다. 지면 계획에 따라 15매, 30매를 정해 놓고 기사를 쓴다. 디지털 퍼스트는 기껏해야 이런 기사를 지면 발행 이전에 웹과 소셜 미디어에 퍼뜨리는 정도이다. 신문 지면이 90평짜리 단독주택이라면 스마트폰의 모바일 화면은 원룸 아파트이다. 그런데 단독주택 세간을 하나도 버리거나 손 보지 않고 원룸 아파트에 그대로 욱여넣고 있으니 제대로 들어가겠느냐 말이다.

   
ⓒ pixabay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아직 먹고살 만해서이다. 주요 일간지 언론사들의 주 수익은 여전히 종이신문에서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고, 잘하는 것도 종이신문 만드는 일이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수익 전망은 불확실하다. 디지털 시장의 권력도 포털과 소셜 미디어에 빼앗겼다. 디지털 트렌드를 좇긴 하지만 언제나 뒷북이다. ‘디지털 퍼스트’가 될 리가 있나. 하지만 언제까지 종이신문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신문구독률은 이제 20% 수준이다.(“아직도 그렇게 신문 보는 사람이 많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신문이 어디에 많은지 생각해보시라. 신문 구독자의 상당수는 관공서나 사무실과 같은 ‘기관 구독자’이다.) 1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지구에서 석유가 사라지기 전에 신문이 먼저 사라질 것이 확실하다.

다만 종이신문이 사라질지언정 ‘뉴스’가, ‘언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아직 먹고 살만 하다’는 것은 혁신의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편부터는 대안과 제언을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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