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콜린스는 미국정부의 인간 지놈 프로젝트를 지휘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수장이다. 과학자면서도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클 셔머는 유사(類似) 과학지식을  폭로하는 '스켑틱(Skeptic: 회의주의자)'을 창간했다. 신앙을 통해 과학에 접근하려는 콜린스 같은 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은 각각 기독교인들과 무신론적 과학주의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진영은 항상 싸우고, 그들이 상대를 공격할 때 콜린스와 셔머는 아주 요긴한 이론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에 가졌던 입장에서 180도 돌아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콜린스는 자신이 학생 시절에는 신앙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논쟁할 정도로 철저하고 전투적인 무신론자였다가 어느 순간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했고, 무신론자인 셔머는 신학자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주위에 그렇게 달라진 사람 한두 명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부모세대가 보기에는) 멀쩡했던 아이들이 대학만 가면 극렬한 사회비판 세력이 되곤 했다. 정부의 주장처럼 불온한 사상교육이 원인이라면 고등학교 때까지 받은 교육이 왜 그리 쉽게, 일순간에 뒤집혔는지 생각해봤는가.” 흥미로운 지적이다. 물론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변하게 마련이지만, 한 가지 주장만을 배타적으로 배우고 믿었던 사람들의 “전향(轉向)”에는 좀 더 특별한 무엇이 있다.

   
▲ 프랜시스 콜린스(왼쪽)와 마이클 셔머(오른쪽). 사진=TED 홈페이지
 

한 가지 주장, 단일한 주의(主義)만을 접하며 자라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전향시키기 쉽다. 자신이 배운 것에는 하나의 오류도 없다고 믿기 때문에 작은 오류라도 확실하게 보여주면, 마치 한 줄의 실로 짠 스웨터가 올이 풀리기 시작하면 대책없이 풀려나가듯 모든 신뢰가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의 전단살포나 대북방송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체제가 그렇게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믿음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호모순적인 존재다. 스티브 잡스는 인도철학에 심취하고 소유에서 초월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을 세웠고,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구절을 넣어서 훗날 노예해방의 근거를 마련했지만, 정작 본인은 흑인 여자노예를 침실로 데려와 살면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링컨은 노예를 많이 거느린 부자의 딸과 결혼했고, 흑인 인권운동에 동조한 존 F. 케네디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베트남 전쟁을 확대시켰으며, 남로당 가입혐의로 대한민국 군사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박정희는 공산주의 척결에 진력했다.

그렇게 상호모순적인 인간들이 만드는 역사 또한 상호모순적일 수밖에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역사를 어느 한 가지 관점만으로 보게 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유아적인 환상일 뿐 아니라, 작은 오류만 지적해도 한 번에 붕괴될 수 있는 위태로운 사고를 구축한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단순하고 근시안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부가 교과과정을 아무리 길게 통제해봐도 12년이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12년 동안 정부가 원하는 내용을 주입하면 평생 그렇게 믿고 살 것이라는 낙관주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게 단일한 사관, 유일한 주장만을 주입받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시험과 상관없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할 여유가 생기면 그 때는 정부가 서점을 통제할 것인가?

   
▲ 2002년 발행된 국사 교과서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즐겨드는 예가 1950년대에 있었던 바나나의 멸종 위기였다. 남미 바나나의 주 고객이었던 미국에서는 당시만 해도 그로미셸 종(種) 하나만을 수입했다. 따라서 남미의 모든 바나나 농장들은 그 종 하나만을 키웠고, 그 종을 파괴하는 파나마병이 발생하자 멸종 위기가 온 것이다. 다행히 전염병이 돌기 직전에 캐번디시라는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고, 그로미셸을 대체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거의 예외 없이 이 캐번디시다.

하지만 그 후 캐번디시는 전세계에서 재배하는 바나나의 95퍼센트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로미셸과 똑같은 운명에 처해있다. 그 종을 공격하는 새로운 병이 퍼지고 있고, 특별한 대책을 찾지 못하면 몇 년 안에 바나나 산업은 붕괴된다는 경고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캐번디시 바나나는 세계적으로 단 하나 밖에 없는 바나나 품종이다. 가장 맛있는 품종이지만 캐번디시 바나나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순식간에 멸종할 위험이 있다. ⓒ비주얼다이브.
 

굳이 리차드 도킨스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지식과 사상의 확산은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균을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몸에 주입하지, 아이를 무균실에서 키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한 사람의 주장이나 한 가지 사상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지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사상적 다양성에 노출시켜야 한다. 교과서 위주의 단일 교과과정도 시대착오적인 마당에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은 학생들의 건강한 지적발달을 지체시키는 결과 이상을 가져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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