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살의 노장이 만든 영화 <마션>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지구 귀환 프로젝트’이다. 지구에서 5만 KM 이상 떨어진 화성에서 낙오된 마크 와트니(맥 데이먼)의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화성과 지구의 거리 때문에 구조대가 와도 4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과연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화성에서 그는 식물을 재배하고 공기를 만들고 기기를 이용해 지구에 신호를 보내 자신의 생존을 알린다. 제목 그대로 화성인(The Martian)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화성판 <삼시세끼>?). 많은 시간을 그는 화성의 벌판에 나가 우주와 화성을 보며 구조를 기다린다. 그 무한한 기다림의 시간이 영화의 대부분이다. 결국 그는 귀환에 성공한다. 

이렇게 보면 <마션>은 아마도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의 자장 안에 있는 것 같다. 우주에 고립된 인간의 귀환 분투기. 좀더 상세하게 말하면, <그래비티>의 리얼리즘과 <인터스텔라>의 과학 이론의 중간 정도에서 <그래비티> 쪽에 더 치우쳐 있다. 때문에 영화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그리 많지 않고, 첨단의 과학 이론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를 우주로 바꾸었을 뿐이지 서사는 전형적인 ‘로드 무비’이다. 

영화를 보면 먼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과연 이 영화를 SF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극단적인 의문. 물론 <마션>은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s)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어남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니, 당연히 SF영화 아니겠는가. 이때 <마션>이 SF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지구인이 화성을 탐사하지 못했다는 이유. 그 외에 어떤 요소도 공상과학 영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 영화 <마션> 포스터
 

이렇게 보면 <그래비티>는 철저하리만큼 사실적인 드라마였다. 임무를 수행하러 우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 거기에는 어떤 공상과학적 상상이 없다. 대기권 밖에서 만난 우주선 잔해를 피해 목숨 걸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에 반해 <인터스텔라>는 과학 이론의 총집합 같은 영화였다. 상대성 이론, 중력 이론, 블랙홀 등 현재 과학자들이 공부하는 최첨단의 이론이 스크린에 재현되었다. 같지만 다른 버전.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든 아니든 세 영화는 공히 ‘귀환’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 <그래비티>가 어머니의 귀환이고, <인터스텔라>가 아버지의 귀환이라면, <마션>은 아들의 귀환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왜 이토록 지구로의 귀환에 주목하는 것일까? 질문을 다르게 해 보자. 과거의 SF영화도 대부분 귀환 모티프를 다루었지만, 그 영화들은 우주전의 스펙터클을 주로 다루었지 귀환이 목적은 아니었다. 우주의 괴물이나 사악한 외계인과 싸우는 이야기. 그런데 세 편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 이것은 사실적인 것인가 비공상적인 것인가? 

   
▲ 영화 <마션> 스틸컷
 

어쨌든 세 편의 영화가 등장하면서 SF영화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세 영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가족으로의 귀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래비티>의 여주인공이 우주가 편한 이유를 조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구에서 아이를 잃은 여인이 우주에서 치유 받고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 <인터스텔라>의 아버지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딸의 죽음 직전에 지구로 귀환해 극적 상봉을 한다. 이상하게도 <마션>에서는 가족의 고통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원과 나사(NASA)의 기다림만 간절하고, 마크 와트니 부모의 간절함이 영화에는 제외되었다. 와트니의 대사로 이 상황을 표현하지만 그것으로는 약하다(나는 이 부분에서 부모를 등장시켜 신파적 코드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할리우드의 특성에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족 때문에 귀환한다는 것은 여전하다. 그들이 귀환하고자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귀소본능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이륙이 죽음 충동의 실현이라면 귀환은 삶의 본능 같은 것, 살아 돌아왔음의 확인 같은 것”이라고 다소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히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들의 보편적인 정서이고 삶의 형태이다. 

   
▲ 영화 <마션> 스틸컷
 

여기서 다시 의문이 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 아닌가. 귀환 모티프를 다루지만 우주의 적과 인간의 대결을 그렸던 영화들. 다르게 말하면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우주를 바라봤던 영화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의 등장은 지금 우리 시대의 어떤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물론 리들리 스콧의 SF영화가 전자 영화의 전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경제가 팽창하고 식민주의로 시장을 넓힐 수도 있었던 시기의 SF영화는 우주의 적과 싸워 이기는 내용을 다루었지만, 그런 희망이 사라진 시대의 SF영화는 무사히 임무를 수행한 후 지구로 귀환해 가족과 포근한 저녁을 먹는 것이 소망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선전 문구인 “포기란 없다! 반드시 지구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든 직장인들이 하는 말, 특히 가족을 그리워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이들이 하는 말과 (“지구”를 “집”으로 바꾸면) 정확하게 일치한다. ‘저녁이 있는 삶’의 욕망이 할리우드의 SF영화에 재현되었다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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