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경찰청의 사건조작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홍보 실적을 중시하는 경찰의 성과평가지표가 이런 사건조작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언론에 기고하는 경찰관들에게 표창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언론 홍보작업에 앞장서 온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9월 언론에 여경이 택배기사로 위장하는 재치를 발휘해 증권법 위반 혐의로 10년 도피행각을 벌이던 피의자를 검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화제가 된 여경의 인터뷰가 줄지어 방송에 등장했으나 검거 사실을 뺀 모든 것이 경찰의 조작이었다. 충북경찰청은 해당 경찰관들이 여경에게 공을 몰아줘 표창을 받기 위한 욕심에서 검거 경위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여경 택배기사 변장 거짓말 언론도 알고 있었다>

이런 조작의 배경에 홍보를 중시하는 성과평가지표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김동철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경찰청 개인성과지표’에 따르면 2015년 성과지표 중 ‘치안정책 홍보실적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7%를 차지한다. 2013년과 2014년까지만 해도 ‘치안정책 홍보실적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 3년 간 경찰청 개인 성과평가 지표.
 

반면 치안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지구대와 파출소 평가에 해당하는 ‘국민중심 생활안전업무 평가’는 그 비중이 2013년 7%에서 2015년 5%로 하락했다. 수사와 형사업무를 평가하는 항목인 ‘국민중심 수사업무 평가’는 2013년 7%에서 2015년 5%로 떨어졌다. ‘인권보호 노력도 평가’는 2013년 4%에서 2015년 2%로, ‘반부패 경쟁력 평가’는 2013년 4%에서 2015년 3%로 떨어졌다.

이 개인성과지표는 ‘치안종합성과 평가’를 위해 사용하는 지표로, 경찰은 정부업무평가기본법에 의거해 2007년부터 매년 치안종합성과 평가 계획을 작성하여 각 지방청과 경찰관서에 전달한다. 이 계획에 따라 전국 경찰관서, 부서 및 개인을 종합평가하고 이를 통해 성과상여금, 인사자료로 활용한다. 

김동철 의원은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것보다 홍보실적 평가점수가 훨씬 더 높은 상황에서 어느 경찰이 범인을 잡으러 나가겠는가. 경찰에 대한 업무평가 지표가 이렇기 때문에 과잉홍보를 위한 사건조작마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MBC 뉴스투데이 갈무리
 

홍보가 중요한 평가의 지표로 등장하면서 발생한 또 다른 현상은 경찰이 언론에 직접 기고하는 것이다. 최근 언론 지면에 ‘독자투고’ 혹은 ‘기고’라는 이름으로 경찰관이 직접 집회소음을 줄이자거나 폴리스라인을 지키자는 글을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집회·시위 문화 “놀이터의 시소처럼”(뉴스1)
이해와 존중, 배려로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뉴시스)
“집회소음” 이제 상생을 생각해야(매일일보)
불법시위 그만…준법집회·시위 문화 정착시켜야(뉴스1)
“모두가 공생하는 길, 질서유지선 준수”(한국경제)
평화적인 집회.시위문화 정착으로 국민행복시대를 만들자(아시아뉴스통신)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의 정착을 기대하며(전북연합신문)
선진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국민들의 공감을 바라며(국제뉴스)
선진집회시위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전남경제뉴스)
선을 지키는 것, 선진 집회시위 문화의 첫걸음(아시아투데이)
폴리스 라인은 “생명(生命) 존중(尊重)의 선(線)”(아시아뉴스통신)
선진교통문화 정착으로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충남일보) 

뉴스1에 따르면 9월 한 달 간 뉴스1에 기고나 독자투고 형태로 게재된 경찰관들의 글은 총 24건으로 이틀에 한번 꼴로 경찰관의 글이 전국 각 지역의 경찰서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김동철 의원실 관계자는 “홍보를 중요시 여기다 보니 미담기사에 검거과정에서의 조작은 물론 언론에 경쟁적으로 기고하려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며 “서울은 물론 지방의 지구대와 파출소 순경들까지도 ‘아는 기자 좀 소개해 달라’고 수소문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이 김동철 의원실로부터 받은 ‘2013년 이후 지방청별 기‧투고 현황’에 따르면 경찰은 2013년 107건, 2014년 78건, 2015년(8월 기준) 71건 언론에 기고 혹은 투고를 했다. 

   
▲ 2013년 이후 지방청별 기·투고 현황. 자료=김동철 의원실 제공
 

또한 경찰은 언론에 기고와 투고한 경찰관에게 포상을 실시하고 있다. 최초 1회 기‧투고자(중앙지 기준)는 경찰청장의 기념품(시계)을 받고, 1회 게재 후 1년 내 4건 이상 기고하거나 투고하면(중앙지 기준) 경찰청장의 표창을 수여받는다. 우수 기고자, 투고자의 경우 게재건수와 관계없이 즉시 상을 수여한다. 우수 기고자란 “시의성 있고 치안정책에 대해 공감대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장신중 전 강원 양구경찰서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현장 경찰관들은 언론 기‧투고 건수 채운다고 메일 글을 써서 게재를 구걸하고 홍보실적과 신문 보도 없는 파출소장, 과, 계장은 시달림 당하기 싫어 지역신문 기자들을 불러서 밥 사고 술사며 구걸을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강 전 서장은 또한 “기자와 전화 통화만 해도 언론보도 대응으로 조작하고, 신문을 뒤지고 검거 보고서를 뒤져서 있지도 않은 언론보도 예상보고를 하고 이에 대응한 것처럼 조작하는 게 주무부서의 하루 일과”라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꼴찌를 면할 수 없다. 단언하는데 언론성과 평가 1위를 한 지방청과 경찰서를 조작을 가장 잘 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언론 홍보라는 이름의 기고‧투고가 경찰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경찰은 집회시위 때 폴리스라인을 넘기만 해도 검거하는 강경책을 내놨는데, 이를 앞두고 ‘폴리스라인을 지키자’는 경찰의 기고 글이 언론에 대거 등장했다. (관련 기사 : <경찰, ‘폴리스라인 넘기만 해봐’ 폭력진압 거세진다>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할 공권력이 비판을 수용하기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게 문제”라며 “경찰이 언론을 통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경찰이 질타를 받을 수 있거나 문제시 되는 조치 정책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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