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수리는 순식간이었다. 20년 근속 기념으로 주는 닷새짜리 휴가 마지막 날 오후 5시, 그는 메일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사직의사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받아들여졌다. 이은용 전 전자신문 기자는 “회사는 마치 내가 사표를 쓰기 기다린 것 같았다. 회사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6개월. 이 전 기자가 전자신문에 머문 기간이다. 16년은 기자로 1년은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쓴 기사는 1만1818건에 이른다. 칼럼이나 사설까지 합치면 1만2000건이 넘는 기사를 전자신문에서 썼다. 그는 “내가 생각해도 참 무식하게도 썼다”고 말했다. 

이후 3년은 고난의 행군 기간이었다. 부당해고와 복직을 겪었고 마지막에는 ‘유배지’라 불리는 송도 광고마케팅국으로 발령 났다. 회사가 “이은용은 기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 전 기자는 “회사는 그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처음부터 기자가 아니었던 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건지…”라고 말했다. 그를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발산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 이은용 전 전자신문 기자의 기자증. 사진=이은용 제공
 

 
동아투위 선배들이 있던 언론, 전자신문 

그에게 기자는 오랜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닥치는 대로 신문사 입사 시험을 봤다. 1년만에 합격한 곳이 전자신문이었다. “사실 회사 다니면서 다른 시험을 보거나 이직 기회를 노리려고 했는데, 전자신문 편집국 분위기가 좋았다. 전두환 정권 때 해직된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 선배들이 전자신문에 여럿 계셨다. 편집권 독립 등 환경이 잘 조성돼 있었다.”

그는 당시 기자들은 ‘전자신문 다운 기사’를 썼다고 기억했다. 그가 말하는 전자신문 다운 기사는 그가 2010년 펴낸 책 ‘미디어카르텔’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다뤘다. 방통위는 종편과 같은 방송사업자를 허가하는 권한이 있으며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인터넷 정책도 담당한다. 

그래서 신나게 일했다고 했다. “이직 제의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이 정도 지면을 확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다음 남기로 했다. 기자가 취재해서 쓴 것이 거의 그대로 지면에 반영되는 언론이 전자신문이었다.” 전자신문이 다루는 영역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16년간 ‘핫한’ 출입처를 담당했고 2005년에는 회사에서 1년에 한번 수여하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전자신문이 자유로운 분위기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배구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전자신문에는 최대주주이나 사주 개념이 없었다. 여러 기업과 개인들이 소액으로 주식을 갖고 있던 구조였다. 그러다 2006년 새로운 회장이 오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이 전 기자는 기억했다. 전자신문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 최영상 회장이다. 

 

   
▲ 지난 5일 발산역 인근 카페에서 이은용 전 전자신문 기자를 만났다. 사진=이하늬 기자
 

“전자신문이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전자신문은 급속하게 망가졌다.” 이은용 전 기자가 말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하이닉스 사장단 기사 삭제다. 전자신문은 지난 2011년 11월 13일 밤 ‘SK “하이닉스 CEO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지만 그날 밤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해당 기사를 뺐다. 배송 중이거나 지국에 배포된 신문 상당량을 회수했고, 다른 기사로 교체한 다음 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회사는 2012년 초에는 윤전기를 팔고 윤전 업무를 외주화 하려 했다. “당시 경영이 어려웠던 것도 아닌데 회사는 윤전기를 팔고 윤전기 노동자 10명도 해고하려고 했다. 회사의 속내는 윤전기부터 판 다음, 그 땅을 팔고 싶었던 것 같다. 윤전기는 언론사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고 윤전부 노동자들은 전자신문을 10년 20년 찍어내신 분들이다. 당연히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윤전기 매각과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피케팅에 나섰고 노조 임시총회에서 지지발언도 했다. 문제는 당시 그의 ‘신분’이었다. 당시 논설위원인 그는 노조 조합원 자격이 없었다. 1기 총무부장, 3기 수석부위원장, 4기 노조위원장을 맡아 노조 집행부로 일했지만, 전자신문 노조 규약상 부장급 이상은 조합원이 될 수 없다. 그런 행동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달 뒤쯤 출판팀 부장대우로 발령이 났다. 

 

   
▲ 삼성전자와의 전면전의 시작을 알리는 지난 4월8일 전자신문 1면에 실린 [알립니다]
 

17년차 기자를 출판팀 막내로

부장 대우라고 했지만 출판팀에서 그가 맡은 건 소위 막내가 하는 창고 관리와 책 배포 등의 일이었다. 이 전 기자는 “사실상 회사를 나가라는 이야기였는데 집필과 출판에 관심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만약 내가 조합원이었다면 징계성 인사조치라고 항의했을 것”이라며 “혼자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2013년 1월 1일 부장급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규약이 바뀐다. 그는 부장급에서는 처음으로 조합에 가입했다. 2014년에는 노조 부지부장을 맡았다. 전자신문이 삼성전자와의 싸움을 벌일 때다. 당시 삼성은 전자신문 3월 17일자 기사가 ‘오보’라며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전자신문이 받아들이지 않아 삼성 광고가 끊기는 등 6개월간 전면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해 9월 전자신문은 오보를 인정하며 삼성전자에 손을 들었다. 당시 노조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편집국장 불신임 투표에 들어갔으나 근소한 표차로 부결됐다. “노조는 동력이 떨어지는 계기였고, 회사는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였을 것이다. 그때 노조가 강성이라는 평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즈음 내게도 해고가 통보됐다. 근태 보고 지시거부 및 불이행, 업무 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였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이 전 기자의 손을 들어주어 복직했으나 회사는 그를 송도에 위치한 ‘광고마케팅국 경인센터’로 배치했다. 회사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유배지로 통하는 곳이다. 회사는 ‘수도권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 경인센터로 발령난 다수 노동자들이 알아서 회사를 나갔다. “기본 관리도 안 해서 벌레가 나오고 단전이 되는 그런 사무실에 17년차 기자를 광고하라고 보내는 게 경쟁력 강화인가”

 

   
▲ 지난 5일 발산역 인근 카페에서 이은용 전 전자신문 기자를 만났다. 사진=이하늬 기자
 

“이대로라면 전자신문은 스러질 것”

“삼성과의 전면전을 전후로 해서 14명의 기자가 회사를 떠났다. 같이 노조 활동을 하던 김유경 전 지부장도, 삼성 사태 기사를 썼던 기자도, 삼성에 굴복한 이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후배 기자도 모두 회사를 떠났다. 이 중에는 경인센터로 발령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둔 이도 있다. 사실상 나가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기자 유출은 기사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친기업’ 적인 회사 분위기와 삼성과의 전면전 이후 패배감이 보태졌다. 이 전 기자는 이에 대해 “좋은 기사가 나올 수가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요즘 전자신문은 부끄러울 정도로 기업이 좋아할만한 기사만 쓴다”라며 “이대로라면 전자신문은 스러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신문을 떠났지만 전자신문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고 했다. “애정이 없을 수가 없다. 다른 회사에 있어본 적이 없고 17년간 기자로 일하면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애정도 깊어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도저히 그 회사에서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판단에 사표를 썼지만 남은 후배들이 힘을 내서 좋은 기사도 쓰고 예전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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