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날, 새롭게 만들어진 국립묘지의 헌정식에 두 명의 연사가 초대되었다. 한 사람에겐 2시간, 다른 한 사람에겐 2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연사는 한 명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역사는 뒤에 올라온 사람의 2분만을 기억한다. 미국의 존재 목적을 정의했다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어느 실험의 이야기.

링컨의 짧은 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흔히 앞부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만 인용되곤 하지만, 링컨이 그 연설에서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뒤에 있었다. (그런 미국의)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지 말라는 것. 그는 남북전쟁 중에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미국과 민주주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영화 '링컨'의 포스터.
 

미국의 독립전쟁은 미국에서는 "미국혁명(American Rev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혁명이라면 프랑스혁명이 워낙 길고 험해서 더 유명하지만, 사실 미국은 프랑스보다 일찍 혁명에 성공했다. 혁명 후에도 왕정과 공화정을 오고 간 프랑스와 달리 실패 없이 대통령제를 꾸준히 유지했던 유일한 나라기도 하다. 근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전 세계적으로 희망이 안 보이는 처절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실험에서 유일하게 버티던 최전방이 미국이었고, 100년을 못 채우고 무너질 위기를 맞았다. 그게 남북전쟁이었다.

미국혁명에 자극을 받아 일어난 스페인(1820), 러시아(1825), 프랑스(1830)의 민중봉기들은 왕정 하에 모두 무너졌고, 1848년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봉기들 역시 굳건한 구체제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다.그리고 1861년 미국의 내전,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역사학자 앨런 겔조(Allen C. Guelzo)에 따르면 그런 미국을 지켜보던 당시 세계 열강, 즉 구체제 왕정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엣가시 같은 나라, 이상한 정치실험을 한답시고 남의 나라의 고분고분한 국민들에게 왕정에 대한 반감을 심고 들쑤시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런 미국이 반으로 쪼개져서 서로 싸우면서 무너지고 있는 모습은 유럽의 왕족들에게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확인이었고, 자신들이 직접 정부를 세우려는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가르쳐줄 예화였다.

링컨은 그렇게 조롱하는 열강들 앞에서, 희망을 잃어가던 국민 앞에서 미국의 미래만이 아닌, 앞으로 등장할 민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호소를 한 것이다. 우리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다는 절절한 호소가 게티스버그 연설이었다.

링컨은 인류가 성공한 적 없는 이 체제가 살아남으리라 정말 확신했을까? 링컨은 무모한 낙관주의자가 아니었고, 전쟁의 결과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사명감이었다. 미국의 건국 리더들에게는 어떤 사명의식이 있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고, 달라야 하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유럽의 역사 깊은 강대국들 앞에서 미국인들을 당당하게 했고, 그런 믿음과 사명의식이 여러 차례의 국가적 위기를 견뎌내게 해주었다. (인생에서 위기를 겪어 본 사람들은 안다. 때로는 황당하고 근거 없어 보일지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힘든 시기를 버티는 유일한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미국의 그런 사명감이 때로는 제국주의로 돌변해 몹쓸 짓도 많이 했지만, 링컨이 남북전쟁 같은 위기를 버티게 해준 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버텨낸 미국을 보며 유럽을 비롯한 세계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고, 왕정을 무너뜨리며 차례차례 민주주의로 들어섰다.

그런 점에서 링컨의 사명의식은 옳았다. 풍전등화였던 미국의 민주정부가 조금만 더 버텨주면,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 정부도 유지될 수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으면 다른 나라들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될 터였다. 링컨은 민주주의의 세계적인 확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우리 모두는 그의 사명감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설의 진정한 성공은 연사의 중요성에 있지도 않고, 화려한 문장에 있지도 않다. 링컨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 넬슨 만델라의 연설에 우리가 아직도 감동하는 것은 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에 기반한 사명감을 가졌고, 그 사명감을 실천하며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시대를 내다 본 사람들의 사명감은 동시대인들은 물론, 후세까지 감동시킨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지켜낸 그들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그런 사명감을 가져볼 수 없을까? 한국도 한때 세계 민주주의의 자랑이었다. 유교문화를 가진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독재를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가 가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일본과 중국은 일당 집권, 일당 독재가 불가피해도 한국만큼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는 나라라고 기대되던 아시아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 2010년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단상을 지키기 위한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실상 일본식의 일당 독점이 불가피하다는 자조적 패배주의가 국민들에게 퍼지고 있다. 여당을 봐도 야당을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필요에 따른 정권교체는 불가능하고 그냥 이대로 유사(類似) 민주주의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지금 집권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선절차 논의의 어디에도 민의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보존하려는 집념만 보인다.

연설에서 링컨은 남북전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이 나라, 아니 민주주의로 잉태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진 모든 나라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전쟁을 하고 있다.” 남북 간의 내전을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사명으로 승화시킨 링컨과, 민주주의적 절차의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생존 문제로 보는 이 땅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우리가 왜 아직도 국부(國父)논쟁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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