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과 6일 진행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수차례 얼어붙게 만든 인물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역사학자 등 본인의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좌편향’ ‘공산주의자’ 등의 발언을 쏟아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장으로서의 적합한 역사인식과 정치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우려를 넘어 사퇴까지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 이사장 “사법부 일부가 좌경화됐다”

지난 2일 미방위 국감장은 고 이사장의 이념편향성 논란에 대한 질의로 뜨거웠다.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고 이사장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며 비난한 것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자 “솔직하게 답변하면 국감장이 뜨거워질 것이고 사실과 다르게 말하면 법정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회피했다.

   
 
 

고 이사장은 지난 2013년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공산주의자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문재인 대표에게 민형사상 고송을 당했다. 

우상호 의원과 장병완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방문진 감사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고 이사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계속 답변을 거부하면 국감 진행이 되지 않는다며 감사를 중지하고 퇴장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미방위 국감 자체를 수차례 파행으로 얼어붙게 한 발언들도 잇따랐다. 고 이사장은 “제1야당 대표인 문재인 대표와 한명숙 전 의원도 대법원 판결을 받고 사법부 전체를 부정했던 걸로 안다”며 “그에 비하면 제가 사법부 일부가 좌경화됐다고 우려한 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고 이사장이 대법원이 부림 사건의 재심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사법부 일부가 좌경화 됐다”고 밝힌 것에 대한 해명이다.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 이사장은 “우리 국민 대다수는 제가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확고한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명숙 판결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태도가 자기의 사법부 편향보다 심하다는 이런 답변을 왜하냐”며 비난했고, 야당 의원들은 또다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사법부가 편향됐다는 내용의 답변은 6일 국감에서도 이어졌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과거 고영주 이사장이 북한 사법부 침투 전술이 상당히 성공했다고 주장한 적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고 이사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공무원 중에도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본다. 검찰에도 프락치가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재오·김문수도 공산주의자”
국감장에서는 고영주 이사장의 역사 편향 논란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3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뒤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한 사실이 주로 도마에 올랐다.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김근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을 비롯해 우상호, 이인영,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록돼있다. 이들이 인명사전에 오른 이유에 대한 질의에 고 이사장은 “선정 작업에 관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거라, 과거에 (친북)행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6일 국감장에서는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인가”라고 묻자 고 이사장은 “민중민주주의자”라고 답했다. 최민희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냐”라고 묻자 고 이사장은 “네”라고 답했다. 과거 고 이사장은 민중민주주의가 변형된 공산주의라고 밝힌 적 있다. 

고 이사장은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도 “전향했지만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전병헌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칭찬한 적 있는데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죄에 해당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떤가”라고 묻자 “오해가 있다”며 대답을 피했다. 

   
 
 

여당인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역시 고 이사장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박민식 의원은 “우상호 의원이 친북용공이라면 내가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또한 “우 의원은 지역주민들이 선택한 국회의원인데 친북용공인사라면 대한민국 국민 몇백만 명이 친북용공이라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대한민국에 사회에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우상호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여순 반란사건 등을 보면 공산주의자 아니었나”라는 물음에 대해 고 이사장은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이후 전향했다”고 답변했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친북인명사전에 대해서는 오히려 ‘애국적’이라며 감싸기도 했다. 홍의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친일인명사전은 국가를 분열시킨다던 고영주 이사장이 친북인명사전을 만든 것은 분열적인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고 이사장은 “친일인명사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친북인명사전은 좌경화된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했다. 애국 진영의 숙원사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책임지기로 하고 만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의원님들도 신뢰도 높지 않다” 황당발언 이어져
황당한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고 이사장은 “현재 국사학자 90%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대답도 내놓았다. MBC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해당 보도가) 어떤 점에서 형평성에 반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다. 병무청장이 국정감사에서 “박 시장 아들의 병역은 적법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병무청의 입장일 뿐 각 기관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적극 항변했다. 

이사장으로서의 직무 적합성과 역사 편향 논란 등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방문진 이사장이 되셔서 MBC 신뢰도가 올라가겠냐”고 지적하자, 고 이사장은 “신뢰도로 따지면 의원님들도 신뢰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지 않은가”며 반박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국회 미방위원장도 이에 대해 “그렇다고 국감장에 와서 의원들 신뢰도를..”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수행능력 부족” 지적
정치적인 편향성으로 논란을 빚은 발언 이외에도 이날 국감장에서는 고 이사장의 업무 수행능력도 의문이라는 질의도 이어졌다. 

공정방송이란 무엇이냐는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고 이사장은 “공정한 게 공정방송”이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는 ‘방송사업자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방문진의 설립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고 이사장은 방송에 어떤 전문성이 있냐는 질의에는 ‘글쎄요’라고 답변하거나 MBC 전파료 배분 방식에 대해 잘못 답변하고 지상파 재송신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며 “(고 이사장의) 방송 이해도는 지극히 수준 이하”라고 평가했다. 

   
 
 

국감장에서 고 이사장이 보여준 편향된 역사관과 이념에 대해 이사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고 이사장을 방문진 이사장으로 임명한 청와대와 방통위 등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경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5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이사장의 시대착오적인 그리고 이념편향적인 시각은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고영주를 출세의 롤 모델로 삼는 극우파들의 반사회적인 활동에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사장직에서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강경하게 발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측은 고영주 이사장의 막말 파문에 대해 “고 이사장은 국감장에서 ‘자신을 이 자리에 보내준 사람이 있다’며 자신이 특명을 받고 그 자리에 간 것을 은연 중에 고백했다”며 “방송통신위원장은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인물을 이사장 자리에 보냈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공영방송 이사회는 지성이나 균형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야만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곳이 아니다”라며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역시 6일 성명서를 내고 “고영주 이사장은 MBC의 대주주이자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방문진의 수장임과 동시에 인권을 옹호하고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뒤흔드는 발언을 통해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문진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6일 미방위 국감장에서 퇴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법조인 때 공안업무를 하면서 최초로 한총련이 이적단체라는 것을 밝혀냈고, 통진당이 위헌 정당이라는 것도 밝혀냈다”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을 때 내가 그런 것을 해냈다”며 “앞으로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며 완고하게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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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 대표 검사 3인 중 1인… 통진당 해산 주역

 

세월호 유족 겨냥 “떼쓰면 주고 국민성 황폐화”… 친북인명사전 출간도 주도

 

지난 8월 MBC의 대주주이자 관리감독을 맡은 방문진의 신임 이사장으로 고영주 전 방문진 감사가 선출됐다. 고영주 이사장은 ‘통합진보당 해산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을 맡아 정당해산심판 청원서를 썼고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대표적인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고 이사장은 영화 ‘변호인’에서 다뤄졌던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부림사건’은 부산의 사회과학독서모임이었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들 22명을 구속한 공안사건이다. 이후에도 고 이사장은 극단적인 우편향 행보를 걷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고 방문진 이사장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4월 회의에서 그는 “국정운영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떼를 쓰면 주고, 점잖게 있음 안 주고, 국민성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며 세월호 유가족을 ‘떼쓰는 사람’으로 비유해 논란을 빚었다.

고 이사장이 이사장으로 추천된 데에는 그의 우편향 행보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했던 한 보수 단체의 고영주 이사장 추천서에는 “고영주 변호사가 과거에 공안통 검사로서 오랫동안 일한 것과 그리고 애국시민운동가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것도 방송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이유가 포함돼있다.

해당 추천서에는 “고영주 변호사는 애국자이며, 애국적 용기가 대단한 분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친북인명사전 출간을 주도했고, 통진당 해산 청원을 주도하는 등,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과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며 “종북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감사하고 있다”며 추켜세웠다.

전병헌 의원은 “고영주 이사장의 추천서에는 방송 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이렇게 막말로 점철된 추천서를 보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뭘 보고 고영주 이사장을 방문진 이사장으로 추천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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