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가까지 와서 핸드폰을 사는 이유가 뭔가요? 싸니까 그렇죠. 이제는 여기 와서 핸드폰을 살 이유가 없어요. 옛날에는 발품을 판 만큼 싸게 사니까 가능했던 건데 지금은 집 앞이나 테크노마트나 가격이 똑같아요. 여기 와봤자 시간 더 오래 걸리고 교통비도 더 들죠. 나중에 문제 생겼을 때 또 방문하려고 해도 멀죠.”

영세 판매점: 장사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직영점과 차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테크노마트에서 핸드폰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하소연이다. 이날 테크노마트 곳곳에서 상인들은 ‘단통법’이라는 말에 표정부터 굳어졌다. 용산, 강남, 강변 등 핸드폰 판매 매장이 집결한 상가에는 ‘폐업’한 점포를 찾기 어렵지 않다. 새로운 경향도 생겼다. ‘중고폰 매입·판매’다. ‘중고폰 취급’이라는 팻말을 써놓고 홍보하는 가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테크노마트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B씨는 “중고폰 장사를 시작하게 된 건 그냥 핸드폰만 팔아서는 장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올해 초부터 너도나도 중고폰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폰을 사서 외국에 다시 파는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도입된 이래 방송통신위원회의 예상보다 큰 피해가 ‘유통’에서 발생했다. 단통법은 핸드폰을 구입하는 시점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던 기존의 이용자 차별행위를 없애고 비싼 가계 통신비를 인하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도입됐다. 핸드폰 보조금을 공개하고, 상한선을 두는 게 골자다.

   
▲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테크노마트 핸드폰 매장 모습. 단말기유통법 도입 이후 전자상가의 가격차별성이 사라지면서 영세판매점들이 고사위기에 처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단통법 도입 이후 직영점과 영세 판매점의 희비가 엇갈렸다. 통신3사가 직접 영업하는 직영점과 자회사를 통한 판매점은 지난해 12월 8424개에서 2015년 6월 9014개로 590(7%)개 늘어났다. 반면, 영세 판매점은 같은 기간 3만2289개에서 2만8752개로 3537(11%)개나 줄었다. 

단통법 도입으로 시장이 위축되자 통신사들이 직영점을 늘려 자사에 가입하는 이용자 비중을 높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직영점과 영세 판매점에 공급하는 제품을 차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B씨는 “지난 4월 갤럭시S6엣지가 출시된 직후 물량 구경도 못했다. 통신사가 인기 모델에 인기 사양은 직영점부터 뿌리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없어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전체 물량이 부족할 경우 언제든 같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조금 차별도 일어나고 있다. 영세 유통망을 회원사로 둔 단체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조사결과 직영점이 아닌 경우 통신사가 별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판매점은 24.3%에 불과했다. 통신사는 대리점에 법정 보조금 한도 외에 추가로 보조금 15%를 지급할 수 있다. A씨는 “일반적인 보조금을 늦게 지급하거나 덜 지급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말했다. 

떨어지는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가격이 유일한 경쟁력이던 전자상가는 3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가격 차별성이 사라졌음은 물론 사실상 직영점보다 이용자에게 줄 수 있는 보조금과 물량까지 줄어 ‘줄폐업’이 이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상금 제도 역시 영세 유통망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위반행위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포상금 규모가 건당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으로 악의적인 ‘폰파라치’가 많이 등장했다.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포상금 전액을 판매점이 물어야하고 2회 이상 적발 때는 영업이 취소돼 영세 판매점에 과도한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있다.

A씨는 “손님들이 1만~2만원 깎아달라고 하고 핸드폰 케이스나 충전기라도 하나 더 달라고 하는데, 폰파라치가 신고할까 싶어 그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혹시 녹음할까 걱정이 돼 종이에다 써서 핸드폰을 판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폰파라치 제도는 개선돼 운영 중이다. 방통위는 지난 6월부터 제도 변경안을 시행했다. 포상금을 통신사와 판매점이 공동으로 분담하게 했으며 패널티도 기존에 비해 완화한 것이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롯데월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통신사가 유통점들을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고 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온 건 아니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통신사와 통신사의 자회사의 판매점이 늘어나는 반면 골목상권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단통법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방통위, 통신사 등 당사자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제 유통망이 입는 피해를 포함해 제도개선 논의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용자: 효과 미미해 비난여론 거세

단통법에 대한 이용자 불신은 매우 높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단통법에 대한 효과를 묻는 ‘단통법 여러분의 의견은?’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돌아온 건 비판적인 댓글이었다. “덕분에 비싸서 핸드폰 새로 못 사고 있습니다”, “세상에 소비를 억제하는 법이 어디 있냐”, “호갱을 없애라니까 모두를 호갱으로 만들자는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겠다” 등이다.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해소’하고 ‘통신요금을 인하’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중 ‘이용자 차별 해소’라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는 게 맞다. 단통법 도입 이전 시장은 극단적인 차별행위가 발생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2월25일~2013년 1월7일 동안 한 통신사에서 10만원 이하의 보조금을 지급받은 이용자는 39%에 달했으며 5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이용자는 22.9%에 달했다. 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40~50만원 가량 차이가 났다. 물론, 아직까지도 음성적인 불법보조금 지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전처럼 대규모는 아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통신요금 역시 “오히려 가격이 비싸졌다”고 비판할 정도는 아니다. 단통법 도입 이후 어느 정도 통신비 인하 효과가 발생했다. 미래부 자료에 따르면 평균 가입요금 수준은 3만9932원으로 단통법 도입 이전에 비해 11.6% 낮아졌다. 이 같은 효과는 단통법과 병행한 제도들이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가 ‘알뜰폰’이 시장점유율 10%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됐다. 핸드폰 기계만 구입한 경우 요금할인을 해주는 ‘분리요금제’ 할인율이 기존12%에서 20%로 올라가면서 가계통신비 하락에 기여했다. 

문제는 ‘통신요금이 충분히 인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단통법 도입 1년을 지켜본 결과 이용자 차별이 줄었고 일부 통신비 절감효과가 있었다”면서 단통법 ‘무용론’에 대해 선을 그은 뒤 “다만 여전히 통신비가 비싼 수준이다. 가계통신비를 인하할 수 있는 정책적인 방안이 보완돼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기기값’, ‘통신요금’, ‘보조금’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핸드폰 제조사들이 핸드폰 출고가를 크게 낮추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 1일 펴낸 ‘단통법 1년 평가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GDP 국가와 비교하거나 동종 핸드폰을 비교하더라도 국내 핸드폰 판매가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최원식 새정치연합 의원이 가트너(Gartner)사 자료를 기초로 2011~2014년 OECD 29개 주요국 핸드폰 가격 변동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일반폰 세계 1위, 고급폰 세계 2위였다.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5년 4월 출시한 갤럭시S6(32GB)의 국내 가격은 미국, 일본 등 해외 9개국 평균 판매가에 비해 4% 비쌌으며 미국에 비해 21%나 비쌌다. 단통법 도입 이후 핸드폰 가격이 내려간 건 사실이지만 주로 비인기 모델이나 구형모델 위주였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공통적으로 ‘기본료 폐지’, ‘요금 인가제 합리적 운용’, ‘분리공시제’ 등을 단통법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기본료는 통신사가 망설비 투자액을 돌려받는 차원에서 책정되는 기본요금 1만1천원을 말하는데 통신3사의 망이 전국적으로 구축된 현재 상황에서는 굳이 기본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에서는 우상호 의원이 적극적으로 기본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요금인가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요금인가제’는 1위 사업자의 통신요금을 정부가 인가하는 제도로 요금담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으로 2위, 3위 사업자가 1위 사업자의 통신요금과 거의 유사한 가격의 요금을 책정하는 등 사실상 담합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참여연대는 단통법 1년 평가 리포트에서 “통신요금 인가 과정을 민간 전문가에게 공개해 합리적인 가격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등 요금인가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분리공시제’는 일찌감치 도입됐어야 했다. 심현덕 간사는 “핸드폰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분리공시제는 보조금 규모를 제조사의 장려금(리베이트)과 통신사의 약정 보조금으로 분리해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보조금 지급내역이 투명해지기 때문에 제조사의 핸드폰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초안에는 포함돼 있었고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부결돼 시행하지 못해 삼성이 로비를 한 결과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보조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보조금 상한선을 올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통신사가 현재 설정된 상한선(33만원)이라도 채우도록 하고 보조금 혜택이 적은 저가요금제에도 고가요금제와 같거나 유사한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6일 현재 SK텔레콤의 갤럭시S6엣지플러스의 보조금 공시현황을 보면 보조금 상한선이 33만원이지만 고가요금제에 최대 보조금이 24만8000원에 불과하다. 저가요금제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10만9000원 뿐이다. 

통신사: 마케팅비 줄었지만 요금할인 없다?

통신사는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보조금 상한이 묶이면서 더는 과도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져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통신3사의 마케팅비 지출은 2014년 1분기 2조4265억원에서 2014년 4분기 2조1077억원으로 떨어졌고, 지난 2분기에는 2조원 대가 무너져 1조8808억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통신3사의 가입자당 평균매출액은 큰 폭으로 올랐으며 단통법 도입 이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우상호 새정치연합 의원이 미래부,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통신3사의 가입자당 평균매출액(ARPU)은 3만6468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1분기 ARPU 2만9173원에 비해 25%가량 오른 수치다. 우상호 의원은 “연평균 ARPU 성장률은 평균물가상승률의 5배 정도”라고 지적했다. 미래부의 ‘2010∼2014년 이동통신3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통신3사의 매출은 209조1000억원이며 당기순이익은 9조6000억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통신3사 가입자당 평균매출액 추이. 디자인=이우림.
 

단통법이 도입되면서 번호이동, 신규가입 건수가 줄고 기기변경이 늘어난 점도 마케팅비를 줄이는 원인이 됐다. 미래부가 발표한 8월 이동전화 가입자 유형을 보면 기기변경 비중이 54.9%로 나타났는데 단통법 도입 이전인 지난해 1~9월 기기변경 비중 26.2%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처럼 타 통신사의 고객을 자사로 유입하는 마케팅이 줄어 마케팅비가 감소했다는 이야기다.

단통법 도입 이후 두 차례 보조금 대란이 있었지만 방통위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더 이상 대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통신3사의 변칙적인 영업이 이어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핸드폰 다단계 판매를 시작해 논란이 됐다. 방통위는 “단통법 위반 소지만 처벌하겠다”는 방침으로 사실상 다단계 판매를 허용해 지난 9월 국감에서 여야의 질타를 받았다. LG유플러스는 주한미군에게 보조금을 2배로 지급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벌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의 알뜰폰 자회사인 SK텔링크는 자사를 SK텔레콤인 것처럼 속여 영업을 해 지난 8월 방통위로부터 과징금 4억8000만원을 부과 받았다. KT는 과세가 없는 핸드폰 분실·파손 보험금에 소비자들에게 부가가치세를 물려 자사 매출로 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6일 최민희 의원에 따르면 KT는 이 같은 방식으로 이용자들에게 423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요금을 내리고 보조금을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통신사는 요지부동이다. 기본료 폐지와 요금인가제 개편 모두 통신사와 정부가 회의적이다. 지난달 22일 방통위와 통신업계 간담회에서 보조금을 올릴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통신3사 마케팅 담당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신 통신사와 정부여당은 지난 5월 데이터중심 요금제를 도입하며 ‘통신비인하 효과 1조600억’이라고 생색냈지만 그 효과는 과장됐다. 기존 음성무제한 요금 가입자들이 한 달 데이터 사용량이 300MB 뿐인 데이터 중심 최저가 요금제로 옮겨간다는 가정 하에 이뤄진 계산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통해 요금제 선택권을 늘렸다는 데 의의는 있지만 요금인하 효과는 ‘데이터를 적게 쓰고 음성을 많이 쓰는 경우’에 국한된다.

미래부 역시 당장 제도를 개편할 계획은 없다. 류제명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아직은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지 당장 제도적인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기에 따라서는 통신사의 이익이 커졌다고 볼 수 있지만 단통법 도입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던 ARPU의 증가폭이 둔화됐다는 점에서 보면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마케팅비가 줄어 ARPU가 떨어져야 할 시점에 떨어지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거나 완만하게 증가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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