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턴’ 스포일러 있습니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말은 꼭 맞지 않는다. 보통 기업 경영진이나 정치인들을 노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노인은 자영업자나 노동자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을 나타낸다.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했을 때 노인이 된다. 노인은 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했다. 

원래 노인은 시혜의 대상이기만 하진 않았다. 과거 노인을 부양한 이유는 효(孝)를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노인의 지혜는 곧 삶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큰 변화가 없던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축적된 경험의 가치는 컸다. 가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어른들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노인들의 경험은 가치를 잃고 늙은 것은 낡은 것이 됐다. 빠른 변화에 적응한 사람들만 살아남는 경쟁사회가 됐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인이 된다. 늙는다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말한다. ‘개저씨’, ‘꼰대’ 등의 비판은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치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고집마저 꺾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생물학적으로 나이 먹는 것은 서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매일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영화 ‘인턴’의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라는 70대 할아버지는 ‘노인’이 아니다. 인턴으로 고용됐지만 그는 한 회사의 부사장 출신이다.   

   
▲ 영화 인턴 한 장면.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 왼쪽)과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
 

영화 ‘대부’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로버트 드 니로가 70대 인턴 역할을 맡은 건 흥미롭다. 인턴은 교육을 받으며 일을 하는 사회적 약자의 자리인데 이 자리에 ‘대부’가 등장했다. 영화 내내 벤 휘태커는 사실상 인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푸근한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영화에서 그는 꼰대도 아니다. 

벤의 상사인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은 30대 사장이다. 영화 앞부분에서는 줄스 오스틴이 투자자들로부터 경험이 없어서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지난 200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비서 역할을 하며 허둥지둥하던 앤 해서웨이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도 미숙한 리더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일정부분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젊은 사장이 이끄는 회사에서 부사장 출신의 경험을 싼 값에 고용한 꼴이다.  

영화 ‘인턴’이 지난주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던 영화 ‘사도’를 제쳤다. ‘인턴’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고 보는 내내 지루하지도 않은 영화다. 각종 리뷰를 보면 ‘훈훈하다’, ‘힐링 영화’라는 평가가 많다. 세대 갈등에 이골이 나 있는 한국사회에서 70대 인턴과 30대 CEO의 화합은 충분히 아름답다. 

이런 훈훈한 영화를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다. 제목이 ‘인턴’인데 벤은 사실상 ‘인턴’이 아니며, 그 인턴자리에 고용된 ‘노인’이 사실상 ‘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인턴’이나 ‘노인’이 갖는 의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화 ‘인턴’의 사회적 약자인 인턴과 노인에 대한 판타지영화다.

   
▲ 영화 인턴 포스터
 

영화에서 불편한 지점은 더 있다. 줄스의 남편은 전업주부다. 성공한 아내에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사노동이 힘든데 의지할 곳이 없어 다른 여자를 만난다. 영화에서는 전업주부인 남편이 참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줄스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의 친구 생일파티 장면이 나온다. 이곳에 등장하는 전업주부들 역시 할 일없이 빈둥대며 남을 깎아내리기만 하는 여자들로 묘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노인 인턴은 여성인데 운전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섬세하지 못한 존재로만 묘사한다. 부사장 출신의 벤과 대비된다. 

영화는 정말 힐링에 불과하다. 영화가 끝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영화를 보는 두 시간만 환상 속에서 행복할 뿐이다.

영화를 보고 청와대에서 밀어붙였던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떠올랐다.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를 만들 거라고 나이 든 서민과 젊은 서민들을 싸움 붙여놨지만 정말 고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벗어나있다. 

현실에서는 월급 한 푼, 일자리 하나가 생존과 직결된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월급은 고민거리도 아닌 사장과 삶이 무료해 다시 일을 시작한 전직 부사장이 상부상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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