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유행어, 우승 후보는 ‘헬조선’일 듯싶다. 어디를 향해 분노해야 할지도, 그리고 그렇게 폭발해 봐야 효과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답답함은 겨우 인터넷 문화로 표출될 뿐이었다.

뒤틀리는 사회 구조 앞에서 자기계발의 정신론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됐을 때, 그 빈틈을 치고 들어 온 것은 의외로 여당이었다.

공무원연금개혁에서 노동개혁까지 우리 옆의 기득권을 흔들기로 한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이 두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한국 사회의 애환이다. 공무원도 대기업 노조원도 아닌, 감히 꿈꾸기도 힘든 이들로서는 현재의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희소식. 그것이 무엇이든 개혁에는 혹하기 마련이다. 야당은 자신이 어젠다 설정 능력을 잃어버렸음조차 못 느끼고 있을 지경이었으니 효과는 적지 않았다. 야권은 여전히 모든 노동자가 한 가족처럼 한평생 고용되는 드라마 같은 일상을 꿈꾸겠지만, 지친 국민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런 상상력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끌고 재벌이 미는 구태의연한 산업구조는 노동개혁으로 바뀔 리 없다. ‘노동개혁’이란 그냥 해고자유화다. 아니라 변명해도 결국 가게 될 목적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너는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클라이막스다.

사실 기업은 이 최소한의 보장이 되어야 마음 놓고 채용을 하고 사업을 키운다. 이것이 유연화가 가져오는 성장이다. 그런데 이 성장조차 결국 재벌의 것이라는데 한국 사회의 모순이 있다. 한국 노동법의 사각지대란 의외로 크다. 야당의 바람대로 이 개혁을 막더라도 고마워할 이들은 역시 직업 계층의 상층부에 불과하다. 이미 지금도 하층부 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자유화 상태다.

그렇다면 진보든 개혁이든 해야 하는 일이란 현상 유지가 아니다. 현재처럼 한 번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얻으면 ‘세이프’되는 것. 바람직할 리가 없다. 모두가 세이프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웃된 이웃은 점점 늘어난다.

발상을 전환하면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해고 자유화라는 충격파가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할 반동을 준다. 대기업 정규직 보호를 위한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진짜 산별노조가 움트는 적시가 될 수 있지만, 지지기반을 흔들기 싫을 것이다.

평생고용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성장산업이 태동하는 사회의 대전제였다. 자의든 타의든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는 것이 곧 일거리였다.

예컨대 IT 강국인 북유럽도 북미도 모두 해고자유화의 사회다. ‘풀타임 고용’조차 우리 기준으로는 비정규직이다. 문제는 일없는 이들을 향한 태도다. 어떻게 십시일반 이들을 도와줄지 사회적으로 약속한 북유럽, 신산업이 싹틀 문화를 중시해 일거리를 줄지 않게 한 북미. 일은 곧 할 것이고 어딘가에는 일거리가 있다는 희망. 이들 나라에서 해고는 버틸만한 아픔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한국에서는 의자에서 밀려나면 남는 의자도 없고, 드러누울 안전망도 없다. 지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는 여기에 있다. 안전망은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서둘러야 할 지금, 해고가 애초에 불가능한 공상의 유토피아를 꿈꾸느라 안전망 밖으로 이미 나뒹굴게 된 사람들이 소외되고 만다. 인구 구조의 변화, 기술 혁신과 세계화, 손에 쥔 일자리는 점점 줄고 뒹구는 이들은 늘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나뒹구는 모습에서 정치인은 포퓰리즘을 생각해 내는 재주가 있다. 지지 계층을 선별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다. 노인에게 뿌리고 청년에게 뿌린다. 한국의 여당도 야당도 모두 ‘큰 정부’를 꿈꾸는 집단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복지란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라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일 수도 있는 그 내일을 위해 적립하는 것이다.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는 일종의 차별이 아니라, 누구나 공평히 똑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를 찾는 일이다.

아무 일도 못 하는 인생이 내일 내게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다. 그 짐을 내 가족만이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한 가족이 마비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낙오되지 않기에 가장 효율적인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그렇기에 쉽지 않다.

무늬만 기본소득, 무늬만 산별노조.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그거 다 해봤는데 안돼”라는 무용담만 정치인에게 만들어줄 뿐이다. 간접세를 대폭 올리고, 모든 사회보장을 하나로 대통합하는 뼈를 깎는 개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신분이 사라지고 모두 하나의 노조 안에서 교섭하는 개혁이란 잠깐 해보다 말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수도 진보도 아마 못할 일들이다. 헬조선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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