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남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KBS 2TV ‘해피투게더3’가 오는 8일부터 처음으로 ‘남성 MC 체제’로 개편된다. 유재석과 박명수의 기존 MC 체제에 전현무와 김풍 등이 합류해 박미선과 김신영의 빈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장수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여성 MC 하차는 단순 개편으로만 치부하기엔 해석의 여지가 많다. 가뜩이나 지상파 방송사에서 여성 MC 가뭄인 상황에서 ‘베테랑 여성 MC’들이 하차하게 됐기 때문이다. 

‘해피투게더’에서 여성 예능인으로서 진행을 맡아온 박미선 하차는 의미가 남다르다. 박미선은 ‘해피투게더’ 원년 멤버인 이효리, 유진, 신봉선의 바통을 이어 7년 간 여성 MC로서 자리를 지켜왔다. 2009년, 2013년에는 ‘해피투게더3’으로 KBS 연예대상 쇼·오락 MC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진행 실력을 인정받았다. 

‘남성 MC 체제’로 대폭 물갈이한 이번 개편은 KBS 간판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등 제작진의 의지로 읽힌다. 한편으론 방송가에서 여성 MC가 자리매김하는 게 만만치 많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이 양적·질적 성장해왔지만 여성 출연자의 입지는 불안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KBS ‘여걸5’, ‘여걸6’ 등 여성 중심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꾸준히 방영됐다. 그러나 SBS ‘영웅호걸’(2011), KBS ‘청춘불패’(2011), MBC every1 ‘무한걸스’(2013) 이후 여성 출연자들 간 팀워크가 돋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명맥은 끊긴 상태다. 

현재 예능 트렌드로 자리 잡은 ‘먹방’, ‘쿡방’ 예능과 육아 예능에서조차 남성 셰프와 남성 연예인의 전유물이 되었다. 

여성 예능인 뿐 아니라 스튜디오물에서 여성 MC는 물론 여성 고정 패널을 찾아보기 어렵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활약하며 입지를 다져온 신봉선과 김신영은 버라이어티쇼의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그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SBS ‘힐링캠프’에서 김제동이 단독 MC로, 전현무가 프리랜서 선언한 지 3년 만에 KBS ‘전무후무 전현무쇼’로 복귀하는 동안 ‘욕망 아줌마’ 박지윤 외에 이렇다 할 여성 출연자의 활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JTBC ‘마녀사냥’ 개편 당시 곽정은, 한혜진이 하차하는 등 여성 패널의 입지가 좁아졌다. 

   
▲ KBS 장수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 ⓒKBS
 

가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부를 만하다. 이처럼 여성 예능인과 MC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든 이유는 2000년대 중반 이후 KBS ‘1박 2일’, ‘무한도전’ 등 야외 버라이어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 출연자의 활동이 좁아진 탓도 있다. 

한 지상파 PD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는 출연자 스스로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며 “날것의 모습 그대로가 부각될수록 큰 재미가 나오는데 이런 면에서 여자연예인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채널이 많아지면서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지상파에 비해 여성 예능인과 MC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전통적인 소재에 천착하고 있어 한계가 뒤따른다. 

예컨대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는 최은경, 안선영, 엄앵란, 노사연, 이성미 등 입담 좋은 여성 MC와 패널들이 출연한다. <동치미>는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고충을 풀어놓는 게 콘셉트라, 제도적 틀 안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재차 설파하는 데 그친다. 더불어 여성 MC가 단독 MC로 설 자리는 일반인 여성의 외모를 바꿔주는 메이크 오버쇼나 뷰티쇼인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 제기하듯 남성 출연자와 여성 출연자 간 경쟁력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 출연자가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무대가 견고하게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짜여 있는 등 여성 출연자가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게 방송가의 현실이다. 

기존에 스튜디오 예능에서는 남녀의 이분화된 영역이 명확해 한계가 존재했다. 남녀가 동등한 선상에서 진행하기보다 남성 MC가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면, 여성 MC들은 추임새를 넣거나 부가 설명을 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이처럼 여성 MC가 보조적 역할에 그치거나 여성 출연자의 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여성MC 역할의 한계는 앞서 언급한 예능 프로그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뉴스·보도 영역에서도 여성MC가 보조적 역할만 수행하는 등 여전히 성차별적 구성이 여전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지난 8월 1~7일 지상파와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등 총 9개사의 뉴스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남녀 아나운서의 보도 비중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뉴스 오프닝의 경우 남성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횟수가 여성 아나운서에 비해 4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여성 예능인과 MC를 찾지 않는 시대. 여성 예능인과 MC들이 탄탄한 진행 능력과 버라이어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찾는 게 숙제로 남은 동시에 방송계 역시 과제를 떠안게 됐다. 

여성 예능인과 MC들이 나름의 경쟁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여성 예능인의 신선한 조합과 색다른 기획을 담은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은 방송가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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