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룰을 둘러싼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친박에 패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반면에 김 대표가 뒤에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첫째, 이번 싸움을 누가 주도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김 대표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담판을 짓자 청와대와 친박은 절차를 문제삼았다. 왜 아무런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공천룰을 정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지난달 26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에 앞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청와대와 협의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발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수석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박 대통령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는 이미 지난 5월 공무원연금 협상 당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공무원연금 합의문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시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진실공방을 벌였다. 김 대표는 합의문 채택 전날인 지난 5월 1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명시 내용을 설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는 해당 문구 명기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5월 1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무원연금 여야 합의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고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고 나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5월 18일 "공무원연금개혁이 애초 추구하셨던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논의마저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개혁과정에 하나의 축으로 참여한 청와대 수석으로서 이를 막지 못한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퇴했다.

대통령 정무수석은 대통령 국정행위를 총괄 보좌하는 역할과 함께 당청 사이를 조율하거나 갈등이 불거졌을 경우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개혁 합의문과 관련해 청와대와 진실게임 공방을 벌이면서 결국 대통령 보좌의 핵심 축인 정무수석을 사퇴하게 만들고 당청관계에서 청와대의 '소통' 부족을 부각시켰다.

이번 공천룰과 관련된 기싸움에서도 정무수석이 등장한다. 조윤선 전 수석이 사퇴한지 53일만인 지난 7월 청와대는 현기환 전 새누리당 의원을 정무수석에 임명했다. 당청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어 김 대표와 사석에서 형 아우로 부르며 허물없이 지낸다는 현기환 수석을 임명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신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리로 여겨지는데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를 정무수석에 임명했다는 것은 원만한 당청관계를 바라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이번 공천룰과 관련해서도 김 대표는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을 의논했다는 입장을 밝혔고 청와대는 이에 반발했다. 이미 지난 5월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공무원연금개혁 합의문을 조율했다는 김 대표의 모습과 판박이다. 김 대표가 현기환 정무수석을 고리로 삼아 또다시 청와대와 갈등을 예고하면서 싸움을 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현기환 정무수석의 입지는 조 전 수석과 마찬가지로 좁아질대로 좁혀져 있다. 친박 서청원 최고위원은 현 수석에 대해 "당청 가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정무특보도 "현기환 수석으로부터 사전에 여야 대표들이 회동한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당청 관계에서 청와대의 메신저 역할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무수석 무용론이 일고 비박 견제용 자리라는 비판이 있는데 김 대표와 아무리 가까운 인사를 세워도 청와대의 뜻대로 의회정치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선 조윤선 전 정무수석에 이어 두번째로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김 대표가 의도적으로 계획했는지 여부를 떠나 청와대와 다른 '마이웨이'를 걷겠다는 김 대표를 청와대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버린 것이다. 

현 수석이 조 전 정무수석과 같이 사퇴하는 길을 걷는다면 대통령 총괄보좌 기능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당청간 조율은 물건너가게 된다. 김무성 대표를 공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둘째, 김 대표는 국민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명분을 얻었다는 점이다. 공천룰 싸움의 핵심 쟁점이 전략공천 여부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의 장단점을 떠나 김 대표는 국민공천제의 수혜 대상이 국민이라는 점을 앞세웠다. 반면 청와대와 친박은 국민공천제의 부작용을 강조했지만 전략공천을 통해 박 대통령의 자기 사람 심기라는 사사로운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집단으로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직접 찍어누르기를 한 것과 달리 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천룰과 관련해 단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분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셋째, 친박 세력이 소수파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김무성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연 인사의 면면을 보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서 최고위원은 7선 의원이다. 그는 훗날 박근혜 정부 이후를 도모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박 대통령 보좌에 '올인'해야 하는 정치인이다. '여권에 김무성만 있는게 아니다'라고 했던 윤상현 정무특보는 친박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그의 입은 청와대의 입장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외에 김 대표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정치인은 드물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비판하는 청와대도 '관계자'라는 익명의 이름 뒤에 숨어 당당하지 못한 느낌을 줬다. 갈등 국면에서 공방의 당사자는 힘의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김 대표를 공개 비판하는 정치인이 적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넷째, 국정운영 하반기 사정기관을 통한 통치 기간이 지나가면 언제든지 힘의 균형은 김무성 대표에게 기울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총리가 있다는 점, 부패 척결이라는 국정기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 등 사정기관을 통한 국정운영 통치는 모두가 예상하는 지점이다. 여권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사정기관의 칼날이 언제 자신에게 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반기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사정기관의 칼날이 무뎌지면 힘의 균형은 급속도로 차기권력으로 기울게 되고 박 대통령은 고립될 수 있다. 공천룰 싸움의 배경도 박 대통령이 임기 이후의 안전고리를 설치하기 위한 기싸움이라고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8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 포커스뉴스
 

다섯째, 김무성 대표의 희생자 코스프레가 먹힐 수 있다. 이번 싸움에서도 청와대는 절대권력임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 한마디에 원내대표가 떨어져 나가고,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거부당했다. 그리고 정당 정치의 게임 규칙인 공천룰까지도 청와대가 개입했다. 권력싸움에서 희생이 거듭되면 동정표가 생긴다. 겉으론 철저히 청와대에 당한 김무성 대표다. 차기권력이라고 하는데 청와대와 맞서지 못한다. 대권후보의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오지만 경쟁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연이은 청와대의 김무성 대표 찍어누르기는 희생자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면서 되려 강한 지지층이 형성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중 상당 부분은 아버지를 잃고 산전수전 겪은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 

여섯째, 김 대표의 지지율이 이미 콘크리트와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사위 마약 사건이 터졌을 때 김무성 대표의 지지율이 상당부분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깨고 소폭 하락에 그쳤다. 지난 9월 16일 차기 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 김 대표는 지난 주 21.2%에 이어 19.4%를 기록했다. 이후 김 대표의 지지율은 20%대를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마약 사건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사위 마약 사건을 두고 청와대 기획설이 흘러나왔는데 김 대표의 지지율이 마약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청와대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곱째,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의 갈등을 두고 박 대통령은 왜 김무성 대표를 싫어할까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문재인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친박의 패권을 유지하고 대통령의 호위무사들을 대거 당선시켜 퇴임 후를 보장받으려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청와대가 설득력있는 답을 주지 않는 이상 대통령의 '욕심'만 부각될 수 있다. 시간은 김무성 대표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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