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기자들은 ‘머독 언론’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쌓았다.”

2011년 7월13일 마크 세이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자(당시 51세)는 미소를 감추지 못 했다. 그가 밝힌 대로 가디언 기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2년 넘게 진행한 탐사 보도로 결실을 거둔 직후였다. 당시 한 언론사 런던 통신원이었던 필자는 영국 주말신문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도청 파문 취채차 런던 가디언 본사 앞에서 그를 만났다.

뉴스오브더월드 기자들이 범죄 피해자 가족 등을 상대로 도청‧취재했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사가 가디언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로 뉴스오브더월드는 폐간됐고, 가디언는 세계 탐사 저널리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호주 출신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미디어그룹 ‘뉴스유케이(전 뉴스인터내셔널)’가 운영하는 뉴스오브더월드였다.

뉴스오브더월드, ‘더 선’을 비롯한 머독 신문들은 영국 선거철마다 지지한 정당이 집권하는 영향력을 과시해 수장인 머독은 미디어 모굴(mogul∙거물)로 불린다. 가디언의 전화 도청 보도가 머독 언론의 영국 시장 독점화 현상을 누그러뜨리는 차원으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다만 도청 파문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머독의 최측근이 지난달 복귀하기로 확정된 것을 보면 철옹성 같은 머독 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듯하다.

   
▲ 왼쪽 사진은 노동당 지지 철회를 밝히는 더 선 2009년 9월30일자 1면, 오른쪽 사진은 1997년 3월18일 노동당 지지 의사를 밝히는 더 선 1면
 

“탐사 보도는 독자가 가디언을 믿는 이유”

‘뭔가 더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터다. 가디언은 2009년 7월부터 ‘뉴스오브더월드 전화도청 탐사보도 기획물’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앞서 2008년 8월 뉴스더오브더월드 왕실당담 기자인 클리브 굿먼의 구속이 계기였다. 굿먼은 영국 왕실계승 서열 2위인 윌리암 왕자의 휴대전화 음성 메시지를 도청한 혐의를 받았다.

가디언은 첫 기획에서 굿먼에 대해 다룬다. 그는 2005년 11월부터 윌리암 왕자가 영국 민영방송 ITV 기자 톰 브래들리에게 이동식 편집실 대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거나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의 특종을 쓴다. 윌리암과 브래들리는 도청이 아니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경찰은 굿먼을 상대로 7개월간 조사한 뒤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밝혀진 것은 굿먼이 사설탐정 글렌 멀캐어를 고용해 윌리암 왕자의 휴대전화 음성 메시지를 도청한 사실이다. 그는 멀캐어가 도청한 휴대전화 음성 메시지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단순히 취재 욕심에 자발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가디언은 이 사건의 배후로 당시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이었던 앤디 컬슨을 언급한다.

이외에도 존 프레스콧 전 영국 부총리, 알렉슨 퍼거슨 프리미어 리그축구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 등을 상대로 도청했다는 의혹을 가디언은 지면에 쏟아낸다. 뉴스오브더월드 측이 고든 테일러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장을 포함한 도청 피해자 세 사람에게 소송 취하를 대가로 총 100만 파운드(약 17억9272만원)를 제시했다는 특종도 터트린다.

가디언은 굿먼 구속 사건을 일회적으로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층적으로 사건을 파헤친 것이다. 회사 에이스 기자들이 전화 도청 탐사 기획에 참여한다. 탐사 보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닉 데이비스 기자가 혁혁한 공을 세운다.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도청 취재를 가디언에서 처음 폭로한 기자도 데이비스였다.

가디언은 2011년 해를 넘기기 전에 결말을 보기로 작심한 듯했다. 연초부터 1면을 비롯한 주요 면이 도청 의혹을 비롯해 머독 신문의 독점화 현상을 비판하는 기사로 도배된다. 머독의 언론사 지배구조를 담은 가디언 특유의 화려한 인포그래픽이 지면 한 면을 통째로 채우기도 한다.

뉴스오브더월드의 도청 사례를 줄줄이 나열한 페이지도 웹사이트에 마련한다. 내용외에도 전달 방식에도 공을 들였던 것이다. 이는 탐사 보도에 대한 앨런 러스브리저 당시 편집국장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러스브러저는 가디언의 탐사보도 투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적 있다.

“탐사 저널리즘에 대한 가디언의 투자는 독자가 가디언에 폭넓은 신뢰를 보내는 이유가 될 것이다.”

   
▲ 뉴스오브더월드 마지막 호 1면
 

머독 “내 생애 가장 부끄러운 날”

도청 파문은 2011년 여름 영국 전역을 뒤덮는다. 머독의 지시로 뉴스오브더월드는 그 해 7월10일 전격 폐간된다. 뉴스오브더월드는 창간 168년의 역사에 영국 주말신문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찍던 머독의 현금창출원이었다.

곧이어 머독은 숙원이었던 위성방송 스카이(Sky plc) 인수를 포기하기로 한다. 사실상 머독이 도청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진다는 의미였다. 어느 신문을 봐도 ‘전화 도청 논란(Phone- hacking Scandal)’이란 단어는 빠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와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 등 영국 전현직 총리도 도청 피해자로 거론됐다. 피해자 수는 수 백 여명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8세 여아의 모친 휴대전화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상태였다.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의 유족 휴대전화도 도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간 영국 여론 반응을 보면 전화 도청에 대해 영미권 언론계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불법적 관행 정도로 치부하는 느낌이었다.

관련 혐의자들은 줄줄이 옷을 벗고 기소된다. 레베카 브룩스 뉴스유케이 최고경영자(CEO)이자 전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은 즉각 사임 의사를 밝힌다. 그는 다음해인 도청 수사 방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한다. 캐머런 총리의 보좌관이자 전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이었던 컬슨도 사퇴한다. 도청 협조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에 휩싸인 경찰 고위 관계자도 자리에서 물러난다.

영국 정치권은 동시에 전화 도청 파문 관련 의회 청문회를 연다. 머독은 2011년 7월17일 차남인 제임스 머독 뉴스유케이 회장과 나란히 청문회 참석해 고개를 숙였다. 노구의 몸으로 청문회에 참석한 머독을 향해 한 젊은이가 면도거품으로 만든 파이를 들고 공격할 기세로 달려들었고 그의 젊은 아내인 웬디 덩이 몸을 던져 막았다. 머독은 이날 청문회에서 “내 생애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불법 취재 보다 심각한 ‘독점화’

가디언이 도청 탐사 기획을 한 건 타블로이드지인 뉴스오브더월드의 불법적인 취재 방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독 언론사의 영국 시장 독점화에 따른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컸다. 이른바 ‘내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머독이 스카이 인수시 독점화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 보고 머독의 대표적인 언론사 중 하나인 뉴스오브더월드를 집중 공략해 머독의 기세를 누르려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시 머독이 소유한 영국 내 미디어그룹 뉴스유케이 산하 신문들은 점유율로 보나 체감적으로 보나 영향력이 국내 3대 일간지인 ‘조중동’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들 신문들의 영국 시장 점유율은 40%에 가까웠다. 뉴스오브더월드를 포함해 영국 내 최대 독자수를 보유한 타블로이지 ‘더 선’과 보수성향의 권위지인 ‘더 타임스’ 등을 두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머독의 미디어그룹 21세기 폭스사는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의 지분 39.1%을 소유한 최대주주다. 스카이의 연간수익은 지난해 기준 우리 돈으로 13조6246억원 달한다.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과 ‘폭스뉴스’ 등을 두고 있다. 전쟁 미화와 사생활 폭로 등 선정적인 보도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비판 대상이 되는 영미 언론사 대부분은 머독 소유 언론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가디언지 2011년 3월 3일자에 실린 루퍼트 머독 언론 독점화 현상 인포그래픽. 사진=가디언 캡처
 

영국에서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건 머독 언론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성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머독 신문이 지지한 정당은 집권당이 됐고 총리를 배출했다. 머독 신문은 언론이 추구해야 할 공익 서비스의 책임 보다 머독 개인의 사상이나 선호도에 초점을 맞췄다.

“노동당은 우리의 지지를 잃었다”

‘더 선’은 2009년 9월 30일자 1면을 통해 영국 노동당 지지 철회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피로감이 느껴지는 고든 브라운 총리 사진을 싣고 굵은 글씨로 ‘12년의 장기 집권 속에서 노동당은 길을 잃었다. 동시에 우리의 지지도 잃었다’고 적힌 제목이었다.

2010년 영국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평가다. 경제 위기를 초래한 브라운 노동당 총리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은 가디언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매체도 지적했으나 더 선의 감정적 1면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간을 12년 뒤로 거스르면 헛웃음이 나온다. 더 선은 1997년 3월18일자 1면 제목으로 ‘우리는 블레어를 지지한다(The Sun backs Blair)'라고 쓴다. 토니 블레어 당시 노동당 당수가 해맑게 웃는 모습도 싣는다. 물론 총선이 6주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시간을 더 거슬러 1980년대 더 선은 노동당과 함께 양대 정당인 보수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현 보수당까지 머독 신문은 지지 정당을 철새처럼 이동한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행보는 이동이 있을 때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지지 정당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는 국내 언론은 여기 비하면 차라리 지조가 있어 보인다.

이동의 배경은 머독의 사상과 취향이다. 블레어는 정치적 진보를 추구하는 노동당의 수장이었지만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제3의 길’의 지도자였다. 사기업 못지않게 수익 창출에 역점을 두는 언론 사업가 머독의 성향과 맞물리지 않았다. 오히려 블레어는 머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섬에서 별장 파티를 열면 헬리콥터를 타고 참석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두 사람 모두 찬성 입장을 보였다. 반면 머독이 “총리감이 아니다”고 평가한 브라운 총리는 이라크 전쟁에 유보적이거나 반대 입장이었다. ‘노동당이 길을 잃었다’거나 ‘블레어를 지지한다’는 더 선의 과거 1면 제목은 공교롭게도 머독이 공적∙사적 자리에서 밝힌 발언의 내용과 일치한다.

   
▲ 루퍼트 머독 ⓒ Wikimedia Commons
 

무너지지 않는 머독의 성채

당시 지배적 예상과 달리 머독 언론은 전화 도청 파문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더 선의 주말판 신문인 ‘더 선 온 선데이’가 2012년 2월 창간돼 사실상 뉴스오브더월드의 빈자리를 채웠다. 머독은 “주말판 더 선의 전신은 뉴스오브더월드”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뉴스오브더월드 기자들은 대거 주말판 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신문의 일일 평균 판매부수는 지난해 3월 기준 168만6840명에 달한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도 여전하다. 더 선은 최근 선출된 노동당수 제러미 코빈을 먹잇감으로 삼은 듯하다. ‘빨갱이(코빈)가 왕가를 증오한다’거나 ‘여왕을 모욕했다’는 표현을 쓰며 제목을 달고 있다. 노동당 역사상 가장 뚜렷한 좌파적 행보를 하는 코빈의 정치 성향을 조롱한 것이다.

무엇보다 머독의 양딸이라 불리는 브룩스가 지난달 뉴스유케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지난해 영국 법원이 뉴스오브더월드의 도청 혐의 관련 브룩스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 같은 결과는 수순이라는 관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뉴스유케이에서 일하는 기자들조차 브룩스가 도청과 무관하다는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도청 취재 구속으로 해고된 굿먼은 신문사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기고한 바 있다. “신문사 내부에서 도청 취재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했다.” 이런 광범위한 논의를 최고 수장인 브룩스가 몰랐을까?

브룩스는 괜히 머독의 ‘양딸’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과거 대규모 정리해고, 문어발식 언론사 확장 등  ‘목표를 결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으로 머독이 글로벌 언론제국을 쌓아올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기자 시절 호텔 청소부로 위장해 취재에 나설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최근 머독이 21세기 폭스사 CEO직에서 물러나 은퇴 수순을 밝을 거란 얘기가 나오지만, 브룩스는 머독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인사 중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머독도 브룩스를 일러 “우리 신문이 영국 공영방송 BBC 등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해줄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진화하는 탐사 저널리즘

영국 학계에서 더 선과 뉴스오브더월드의 보도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전형으로 분류된다. 더 선이든 뉴스오브더월드든 지면에 여성 상반신 누드 사진을 반드시 실으라고 지시한 머독은 타블로이의 저널리즘의 세를 불린 언론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맞은편에 탐사 저널리즘이 있다. 특히 가디언의 전화 도청 보도는 권력형 비리 및 범죄를 까발린 21세기의 대표적인 탐사 저널리즘으로 영미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1970년대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탐사 보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영국 상원 의회협회에서 2012년 출간한 책 ‘탐사 저널리즘 보도의 미래 -  3번째 보도’를 보면 탐사 저널리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익을 추구하는 감시견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탐사 저널리즘이 옳고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은 그르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영국 학자들은 머독 신문이 추구한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에 대해 지난 반세기 저널리즘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 분야로 받아들여 연구하고 있다.

다만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이 남긴 사회적 폐해를 도려내는 핵심 방안으로 여전히 탐사 저널리즘이 지목된다. 탐사 저널리즘은 디지털 전환기를 맞은 현재 동영상과 인포그래픽, 내러티브 방식의 기사 전개 등을 선보이며 진화하고 있다. 브룩스는 머독의 지근거리에 위치해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부흥을 주도한 인물이다. 브룩스의 복귀를 바라보는 가디언 기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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