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 고영주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쏟아낸 ‘보컬 테러(입으로 하는 테러)’에 관한 뉴스를 보고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시기에도 그 어떤 언론사 경영자나 언론 관련 공공단체의 책임자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고영주처럼 ‘보컬 테러’를 태연히 자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고영주가 국회에서 펼친 ‘보컬 테러 시리즈’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장병완의 질문이 시발점이었다. “2013년 1월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적화되는 것을 확신한다’고 발언했느냐”는 물음에 고영주는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2013년 1월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한 달 전이었다. 문재인은 그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고영주를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고영주는 같은 당 의원 홍의락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문재인이 왜 공산주의자인지에 관해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저는 부림사건 재판 당시 (담당 검사였는데) 문재인 변호사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노무현 자서전인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에 노무현이 문재인이랑 무료 변론했다(고 나온다). 두산백과사전에도 똑같은 내용이 있다. (···) 또 네이버 블로그 중의 부림사건에도 ‘인권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이렇게 나와 있다.”

그리고 고영주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문병호가 같은 취지의 질문을 하자 “초안만 준비한 게 12쪽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하려고 같이 애쓰셨고 한미연합사 해체하는 데 관여하셨고, 연방제통일을 지지하셨다”고 대답했다. 문재인이 그랬는지 사실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인 사람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라는 뜻이다.

   
▲ 지난 2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9월 부산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한 뒤 기소된 ‘용공조작 사건’으로 1천만 명 이상이 본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었다. 부산지법은 재심을 청구한 5명에 대해 2014년 2월 무죄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무죄를 확정했다. 그런데 당시 담당검사였으며, 서울남부지청 검사장을 지내고  변호사 개업을 한 고영주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노무현이 문재인이랑 무료 변론했다’는 이유로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단정한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는가? 부림사건의 피고인들이 어떤 사상을 가졌건 간에, 그리고 그들이 고문당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변론을 맡은 사실만으로 ‘공산주의자’가 된다면 앞으로 그 어느 변호사가 두려움 없이 법정에 설 수 있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홍의락이 국감장에서 “문재인이 무료변론 했다고 해서 공산주의자인가?”라고 고영주를 힐난하면서 “같이 활동하고 밥 먹고 가족이 같이 자고 밥 먹고 그러면 공산주의자가 되나”라고 물을 지경이었다.

고영주는 국감장에서 융단폭격 같은 ‘보컬 테러’를 계속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3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뒤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한 바 있는 그는 서울시장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 김근태, 서울대 교수 조국을 비롯해서 우상호·이인영·오영식을 그 인명사전에 올린 이유에 대해 “선정 작업에 관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거라, 과거에 (친북)행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자’ 또는 ‘친북행위자’라는 낙인이 찍힌 정치인들이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고영주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단순한 추정을 바탕으로 그런 주장을 태연히 했다.

국회에서 고영주의 ‘보컬 테러’는 전 대통령 박정희에 관한 우상호의 질문에서 묘한 ‘반전’을 보였다. “문재인 대표를 부림사건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규정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여순 반란사건 등을 보면 공산주의자 아니었나”라는 물음에 대해 고영주는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이후 전향했다”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확언했다. 그렇다면 문재인도 ‘전향’을 해야 면책 받을 수 있다는 뜻인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고영주의 공언이 공정함과 균형감각에 바탕을 둔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2년 5월 10일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당시 국회의원 박근혜(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의 행적을 살펴보기로 하자. 객관성을 담보하려면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 초판 15쇄, 2012년 1월 13일)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방북, 김정일위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베이징 도착 이튿날,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평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 대기실에 머무는 중, 일행 한 명이 급하게 들어오며 소식을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특별기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걸 타고 오시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196쪽)

“5월 13일 저녁 공식일정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곧이어 김정일 위원장이 내가 머물고 있는 백화원영빈관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화원영빈관 내 별도의 회의실에서 한 시간 동안 단독 면담을 할 것이라고 했다.
 속기사 한 명이 배석한 상태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198쪽)

김정일은 남측의 대통령도 아닌 국회의원 박근혜를 그렇게 파격적으로 대접했다. 그렇다면 고영주의 눈에는 박근혜가 당연히 ‘친북행위자’로 보일 것 아닌가? 단순한 추정으로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모는 사람이니 말이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고영주는 국감장에서 자신이 방문진 이사장이 된 데 대해 “이사장을 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고 시켜달라고 누구한테 부탁한 적도 없다. 우연한 기회에 맡게 됐는데, 제게 맡기신 분은 의미와 목적이 있어서겠죠. 맡은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방문진 이사장이 ‘청와대 낙하산’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기자들은 그 말을 ‘박근혜 정권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해석하고 보도했다.

고영주는 “국사학자 90% 이상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편향”이라는 ‘판정’까지 내렸다. 1950년 2월 미국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연설을 통해 “국무부가 온통 공산주의자의 첩자들로 가득하다”고 폭탄선언을 한 뒤 미국사회를 휩쓴 매카시즘과 일맥상통하는 ‘한국판 매카시즘’이다. 매카시는 한동안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터무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다가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방송문화진흥회는 MBC 주식 70%(박근혜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정수장학회가 30%)를 보유하고 그 방송사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이다. 그렇게 중요한 조직의 책임자가 가뜩이나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MBC를 ‘공정한 방송, 자유로운 언론’으로 되살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의 ‘보컬 테러’를 이유로 고영주에게 사퇴를 요구한다고 해도 그는 요지부동일 것이다. 앞으로 민주체제가 세워져 MBC의 지배구조를 합리적으로 혁신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