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영화 '미션스쿨'은 헌법 20조를 계속해서 읊조린다. 영화 내내 이 헌법 조문은 주인공을 보며 '왜 저렇게 까지 할까'라고 생각하는 영화 속 주변인물에게, 관객에게, 사회에게 ‘옳을 수밖에 없는 것'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미션스쿨에 다니는 바울(이바울 분)은 '뺑뺑이'로 들어온 고등학교에서 수업시작 전에 예배를 드리고, 음악시간에 찬송가로 실기평가를 보는 행태에 분노한다. 학생에게 종교의 선택권을 주지 않는 학교에 '오늘부터 예배를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단식을 하고 1인 시위를 한다. 친구들은 바울을 '고3인데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시끄러운 아이'로 취급한다. 바울의 책상에는 '나대지 마라'는 낙서들이 가득하다. 

바울이 선생님들과 자신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국회에서 1인 시위를 할 때도, 지하철에서 호소발언을 할 때도 심지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도 헌법 20조가 나온다. 학생회장을 하며 그대로 학교를 다니면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는 바울이 하는 싸움에 의문을 품는 이에게 영화는 헌법조문으로 답을 대신한다. 

   
▲ 영화 '미션스쿨' 포스터. 사진=영화 '미션스쿨' 스틸컷.
 

이 영화는 감독인 강의석씨의 실제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했다. 2004년 대광고등학교(개신교에서 설립한 미션스쿨)의 학생회장이었던 강의석씨가 종교 자유 투쟁을 하며 46일간의 단식을 한 사건이 기반이다. 강의석씨는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몸을 갉아먹으면서 정의를 외치는 일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옳은 것을 주장하기란 어렵다. 의무교육 기간에 배운 교과서 속 정의(justice)는 교과서 안에서 박제된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왜 정치 같은 것에 관심을 두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모난 돌로 찍힌다. 강 감독의 말대로 자신을 갉아먹을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만큼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영화에서 계속해 헌법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처럼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옳음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다. 바울의 입장을 이해하는 학교 목사는 "네 생각은 맞지만"이라며 타협을 제시한다. 바울은 거의 유일한 자신의 아군에게 도리어 "생각이 맞는데 왜 행동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냐"며 화를 낸다. 종종 원칙주의자의 싸움은 혼자만의 싸움이 된다. 

   
▲ 사진=영화 '미션스쿨' 스틸컷.
 

바울은 함께하는 행동에 익숙하지 못하다. 1인 시위를 하거나 방송실을 점거해 1인 방송을 하는 등의 단독행동에 익숙하지만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친구들과 토론하거나 함께 하는 행동에는 어설프다. 바울의 싸움이 옳음에도 동지 없는 혼자만의 싸움이 되는 이유다.

영화 속에서 바울을 지지하는 거의 유일한 동급생 윤선아(윤금선아 분)의 도움을 몇 번 받긴 하지만 함께 싸우는 정도는 아니다. 그의 싸움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다. 그와 싸움을 함께하는 것은 단식 후 걷지 못하는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엄마뿐이다. 영화 속 바울은 수백 명의 학생이 같은 처지임에도 몇 명의 동지도 만들지 못한다. 

실제 강의석씨는 '스스로를 이슈화하기 위해 관심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그는 누드시위를 하거나 매우 도발적인 글(대학내일 '태환아 너도 군대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가 제기하는 이슈보다 강의석 개인이 돋보이는 방식이었다. 10년 전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도 개인을 돋보이는 형식이긴 마찬가지다. 그의 싸움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고독해 보인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필을 하고 영향력을 얻는 게 왜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뜨고 싶어서 그런 거면 또 어떤가. 기회를 잘만 활용한다면 사회에 담론의 장을 마련하게 되는 거고,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수백 혹은 수천 명의 학생들이 종교의 강요를 당하는 사회의 문제를 주인공 바울만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식의 관점은 오히려 ‘왜 다른 친구들은 바울과 함께 싸우지 않았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바울은 ‘옳음’이 무엇인지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이렇게까지 하니’라는 의문에 헌법 조문을 외치는 바울의 모습보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학교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문제를 헤쳐나가는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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