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는 새로운 재도약과 기약 없는 정체 사이의 분수령에 서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노사정합의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노사정 위원회는 이 합의문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통합을 공고히 하며 청년과 미래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청사진으로 그려냈다. 

지난 4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서는 ‘9.13 노사정합의의 주요내용 검토’라는 법률 강좌를 통해 위의 ‘청사진’과는 달리, 노사정합의문이 노동자의 권리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오히려 근로기준법이나 비정규직법 등 기존 법률을 충실히 해석한 것보다도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킨 합의안이라는 것이다. 

이날 강의를 맡은 노동법률원 새날의 김기덕 변호사는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문제가 된 지점을 △법정근로시간 연장 △통상임금 △정년연장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으로 꼽았다.

법정근로시간 늘려놓고 ‘근로시간단축’ 합의?

김기덕 변호사는 이번 합의가 주 40시간, 1일 8시간이라고 규정된 근로기준법 제50조를 무시하고 주 52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못박은 것에서 더 나아가 여기에 추가근무까지 가능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 의하면 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53조에는 여기에 더해 1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김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명시된 주 40시간이 기준근로시간이며, 12시간의 근무시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제53조는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예외적 상황의 연장근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제한을 두고, 이 범위 내에서 근로시간에 대한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라는 것이 50조의 취지다. 40시간 이상으로도 합의가 가능하다는 53조의 해석을 넓게 해버리면 주 40시간이라는 근로시간을 제한한 50조가 사실상 무의미한 조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노사정 합의는 주 40시간이 아닌 52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늘려놨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또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4년에 걸쳐 주 52시간 근로시간에 1주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까지 허용한 것이다. 단, 이는 4년 후 일몰되는 조항으로 지속여부는 4년 후 재검토하기로 했다. 

해석 여지 넓은 통상임금은 ‘고정’

이번 합의의 문제점은 통상임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합의문을 통해 노사정위원회가 통상임금의 기준을 고정한 것은 이후 통상임금 확대 해석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통상임금은 법정 외 근로를 했을 경우 지급될 수당의 기준이 된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김 변호사에 의하면 현재 법 해석에 의해 전체 근로자 임금 중 평균적으로 3분의 2정도의 금액만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법정근로시간 외 수당으로 통상임금에 50%를 가산한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법정근로를 해서 받는 수당과 시간 당 수당은 비슷해진다. 

현재 통상임금 규정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에 마련돼 있다. 다만 현재 근로기준법에서 시행령을 위임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었고, 여러 판결들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판례에 따른 해석의 여지 역시 넓어지는 추세다. 이번 합의는 근로기준법에서 시행령의 기준을 위임하면서 추후 통상임금이 더 넓게 해석될 여지를 닫은 셈이다. 

김 변호사는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 이상의 추가 근무는 당연히 법정근로를 해서 받는 금액보다 더 많아야 한다. 법정 근로 시간과 그 외 시간의 임금이 같은 수준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수준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6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물풍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시장 개혁 1차 추진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1차 추진방안은 내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앞두고 노사의 핵심 현안이 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빛좋은 개살구 정년연장 “또다른 비정규직 양산”

김 변호사는 정년연장이 마치 노동자들을 위한 ‘배려’로 비춰지는 것은 이번 합의의 ‘꼼수’라고 분석했다. 정년 자체가 법이 정한 바 없는 또 다른 기간제 근로자를 양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근로계약의 종류는 기간에 2년 내의 계약직과 기간에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만 나뉜다. 그래서 정년이라는 제도는 사실상 또 다른 계약직 근로자를 만드는 셈이다. 정년이 60세라면 만약 48세에 채용된 근로자는 사실상 12년의 기간제 근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단체협상에서 65세 정년을 둔 조항이 무효라는 연방노동법원에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65세에서 70세 등으로 정년이 연장됐다가 아예 정년자체가 폐지됐다. 해외에서는 정년이라는 것 자체를 폐지하는 추세라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정상적으로 노무 제공이 가능한 근로자에 대해서도 나이만을 기준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하는 일각에서는 초임 임금과 최고 연봉 간 차이가 3배라며, 연봉급제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호봉제 하의 임금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도 아니다. 그 말은 최저 수준을 받는 초임 임금이 세계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정말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상위 수준의 임금만을 보고 깎자고 하는 것은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도 결국 정부·사용자 맘대로

이번 합의에서 논란이 됐던 일반해고, 취업규칙 완화 등에서는 사실상 노동자들이 추후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해당 합의 항목에 의하면 노사정은 노사 및 관련 전문가의 참여 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제도개선 전 까지의 분쟁예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공정한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근로계약 체결과 해지의 기준, 절차 등을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하도록 했다. 

김 변호사는 “합의문에 의하면 해당 내용에서 노조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번 합의에서 정부가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고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시행하도록 했지만 한국노총이 반대해도 의견 수렴은 했다며 밀어붙일 수 있다. 입법화 과정이 가능하도록 노동계가 합의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김 변호사는 이번 노사정합의는 정부 등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청년실업 해결에 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낭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된다.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200시간에 달한다. 여기서 주당 40시간에 휴가와 공휴일 모두 쉬면 1800시간이 안 될 것이다. 1500만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남은 400시간을 따지면 300만명 정도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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