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노사정합의 이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 국회로 넘어왔다. 새누리당은 이미 노사정합의문에서 다뤄지지 않는 내용까지 포괄한 5대 노동입법을 제시했다. 환노위 야당 의원들은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개악’ 반대의 선봉에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노동전문가,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있다. 은 의원은 최근 자체 동영상까지 제작해 SNS를 통해 ‘노동개악’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9월 30일 은수미 의원을 만나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노동개악을 저지할 수 있을까.

“노동개악, 임금피크제와 저성과제 해고가 끝이 아니다”

- 노사정합의문을 두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평가했다, 무슨 뜻인가
“노동자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정부가 노사와 협의한다’고 되어 있는데, 기업들의 의무는 단지 ‘노력한다’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균형을 잃은 셈이다. ‘협의한다’는 문구는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노동개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될 것이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두 가지 행정지침(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도 있다. 법 개정도 없이 지침을 통해 노동현장의 관행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 9월30일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의원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이런 행정지침은 법원 판결 등을 통해 뒤집힐 수도 있지 않나. 
“정부가 이 두 가지 지침에 대해 법제화 용역을 맡긴 것으로 안다. 내년 총선을 전후해서 법제화를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환노위가 여야 구성이 8대 8이라 새누리당의 노동법안을 막을 수 있는데,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환노위 구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 때 이 법들을 막을 수 있을까. 지뢰를 묻어둔 합의문이다”

- 묻어둔 지뢰가 또 있나
“전혀 드러나지 않은 위험한 것들이 있다. 예컨대 합의문에 ‘민간고용서비스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있다. 나는 인신매매라고 부르는데, 이명박 정부 때 등장한 ‘노융산업’이다. 금융이 돈을 사고 파는 거라면 노융은 노동을 사고 파는 것이다. 노래방 도우미를 차에 태우고 다니며 공급하는 ‘사람 공급사업’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 때 ‘민간고용서비스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직업안정법을 전면 개정하려고 했는데 반대가 심해서 안 됐다. 근데 노사정합의문에서 이 이야기가 다시 등장했다. 저성과자 해고가 끝이 아니다. 이런 지뢰들을 묻어놓고 총선에서 이기면 터트릴 셈이다.

- 이처럼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청년일자리’라고 홍보했는데 노사정합의문에는 막상 청년 일자리 이야기가 별로 없다. 임금피크제가 전부다.
“실제로 임금피크제는 청년일자리 대책이 아니다. 정부는 13만개가 생긴다고 하는데, 정부 용역보고서에 근거해 봐도 8천 개가 전부다.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이 너무 적어서 그렇다. 정년퇴직률이 5% 이하인데, 이 사람들 임금을 깎고 만들 수 있는 일자리에 한계가 있다. 

- 그럼 청년일자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청년고용할당제다. 300인 이상 민간대기업에 적용하면 연 7만 늘어난다. 하도 개입이 심하다 해서 한시적으로 하자고 했다. 대기업들 쌓아둔 돈은 많은데 투자할 때 없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 고용에 투자해라. 5년 만 해도 35만 명이다. 또한 정부 일자리가 있다. 세수 제대로 받아서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늘리자는 거다. 50만개, 60만개 창출여력이 있다. 나아가 중소기업 일자리 지원하고 대기업과 불공정관계 바로잡으면 중소기업에도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일자리가 모자라면 일자리 정책을 펼쳐야지 고용안정이 목적인 임금피크제로 일자리 늘릴 생각해선 안 된다. 독약을 먹었으면 해독제를 써야지 팔을 짜르자고 하면 되나”

- 일자리 늘리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지 않나 

“주 52시간까지 줄이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새누리당의 노동 법안은 주60시간인데, 우리나라 과로사 기준 중 하나가 주 60시간 노동인데 왜 60시간으로 하나. 정부여당의 노동 법안으로는 일자리 못 만든다. 근로시간 연장법이고 반청년법이다. 기업의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도 있는데, 이 경우 신규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기존 일자리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주 48시간까지 줄이면 100만개~110만개 일자리가 늘어난다. 실제로는 50만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저성과자 해고, 정규직은 값싸게 비정규직은 중도에 해고”

- 합의문이 공개된 이후엔 청년일자리 대신 저성과자 해고가 부각되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를 도입한 이유가 뭘까
“비용 때문이다. 30대 재벌도 평균근속년수가 10년이다. 고용보험 통계상으로 한해 180만 명이 해고된다. 지금도 해고가 너무 쉽고 많다. 이런 해고는 비용이 드는 해고다. 대부분 회사 책임이 50% 이상이라 위로금도 줘야하고 퇴직금도 줘야한다. 만약 저성과자로 찍어서 해고할 수 있다면 상시적으로 돈을 안 들이고 해고할 수 있다. 나아가 비정규직의 경우 근로계약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중도해고’가 있다. 근로계약이 2-3년인데 어렵다는 이유로 6-8개월 만에 해고한다. 저성과자 해고는 비정규직에게 중도해고, 정규직에게 값싼 해고를 선사한다”

   
▲ 9월15일 노사정합의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정부여당은 저성과자 해고가 ‘쉬운 해고’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조선일보에는 <해고가 쉬워졌다는 주장은 선동이다>는 칼럼이 실렸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저성과자 해고를 도입해도 공정한 인사평가, 재교육, 업무재배치를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은수미 의원은 “절차성과 정당성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KT 사례가 있다. KT에서 업무재배치를 했다. 사무직 텔레마케팅을 하던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 전봇대를 타게 한다. 업무특성상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부서로 보낸다. 근로기준법은 정당하지 않으면 해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는데, ‘정당성’은 절차적으로 공정했느냐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번 저성과자 해고는 ‘절차성’만 있으면 된다. 절차만 잘 지키면 텔레마케터가 전봇대를 타도 된다는 거다. 이는 명백히 헌법과 노동법 위반이다. 절차적 정당성 말고도 인권적 정당성, 헌법적 정당성도 있다”

“노동개악, 새정치민주연합의 화력이 약했다”

이처럼 노사정합의문도 문제투성이인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노사정합의문에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까지 적시한 5대 법안(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 근로법 및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은수미 의원은 “환노위에서 막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5대 법안이 합의된 사안이라는데 한국노총은 합의한 바 없다고 한다. 진실을 따지는 것과 무관하게 막아야한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정부여당이 드라이브를 걸 것이고 환노위 차원에서 막겠다는 것이 환노위 야당 의원들의 생각이다”

- 새누리당은 5대 법안에 대한 패키지(일괄) 처리를 주장한다.
“그러면 통과 못 시키는 거다. 법안에 대해 이미 야당 의원들은 논의를 했고 결론이 났다. 주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여야하는 판에 6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비정규직도 확대하고, 실업급여는 문턱을 높이고 액수도 줄였다. 이런 법안 통과 못 시킨다. 법안을 다 읽어봤는데 출퇴근 중 벌어진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자는 조항 정도? 이거 빼고는 안 된다. 패키지가 아니라 조항별로 하나하나 심사할 것이다”

- 원내지도부가 합의를 해줄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런 우려가 굉장히 많더라. 여러차례 원내지도부에 (환노위 위원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원내지도부에선 (그럴 일은) 없다고 답했다. 내가 당 지도부와 싸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와 싸우고 싶다. 같은 편하고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 당 지도부가 통과시키려 한다면 싸우겠다는 뜻인가
“나로서는 노동개악은 양보할 여지가 없다. 물론 나도 당에서 공천을 받아야한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자기이익과 당의 이익, 그리고 국민의 이익이 배치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공천을 받는 처지에서 당의 이익 편에 서야 하지만 이미 나의 판단은 끝났다. 나에게 굉장한 불이익이 있더라도 당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노동개악에 동의할 수 없다”

   
▲ 9월30일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의원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새정치연합이 결국 노동개악에 동의할 것이라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보여준 태도다. 김대중 정부 때 정리해고를 도입하고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법 만들었는데 야당이 노동개악 하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냐는 것.

“그런 우려는 사실과 다른 면이 있다. 정리해고와 파견제법은 96년 김영삼 정부가 노동개악을 하면서 도입한 뒤 유예시킨 것이다. 이미 들어와 있는 법안이었고 민주노총도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망한다니까 합의해준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은 효과와 공(功) 측면에서 (지금과) 달랐다. 비정규직법 다 없애자 그러면 양대노총 중 오케이하는 데 없을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청년일자리’ 프레임으로 치고 들어왔는데, 야당과 노동계는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지 못하고 말려든 것 아닌가.
“말린 건 아니다. 재벌개혁 이슈를 위해 두 달 간 노력했고 재벌개혁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단, 화력이 약했다. 저쪽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원포인트로 공격한다. 우리 당은 안 그런다. 은수미 같은 사람이 대응하다보니 화력 차이가 난다. 조중동과 온갖 언론이 달려들고 정부는 40억 들여서 광고를 하는데 나는 동영상 만들어서 배포했다. 당의 화력이 약했다는 점에선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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