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의 여주인공 이진애(유진 분)는 패션회사에서 일한다. 남편은 건축가다. 같은 채널에서 지난해 방영한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여주인공 차강심(김현주 분)은 비서다. 남편은 그룹 서열 2위 후계자다. 

'왕가네 식구들'(2013년 방영, KBS2)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에 따르면 주인공 왕수박(오현경 분)은 "그저 돈 많은 남자 만나 내 몸 하나 예쁘게 건사하면서 사는 게 결혼이라 생각"하고 "명품 옷에 명품 백에,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편 사업이 쫄딱 망하여" 불륜남의 소개로 직업을 얻게 된다. 

KBS 2TV의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형적 문법 안에서 만들어진다. 이에 따른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된 성역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형적 가족극의 틀이 현대사회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KBS 2TV '왕가네 식구들' 화면 갈무리. 사진=KBS
 

가족드라마의 전형성에 대해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3대에 걸친 가족들이 등장해 손자나 손녀들이 말썽을 피우고, 어른들이 균형을 잡아주는 식의 스토리라인과 디귿자 형태의 집에서 모두가 모여 살며 응접실에서 끼니마다 다함께 식사하는 장면 등 1980년대 이전 가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형태나 가족 내의 성역할이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정된 가정의 형태와 성역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남녀주인공과 주변 등장인물의 직업이다. 미디어오늘이 1997년 10월11일 방영된 KBS 2TV 주말드라마 ‘아씨’부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부탁해요, 엄마’까지 총 36편의 연속극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주변인물 175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 등장인물의 직업 가운데 사장(CEO)이 가장 많았고 여성 등장인물의 직업 중에는 주부가 가장 많았다.  

   
▲ KBS 2TV 주말드라마 36편의 등장인물 175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남성 등장인물의 직업은 △사장 △의사 △회사원 △언론인 △자영업 순으로 많았고 여성 등장인물의 직업은 △주부 △회사원 △패션 관련 직종 △학생 혹은 취업준비생 △자영업 순으로 많았다. 인포그래픽=이우림 편집기자.
 

주변인물을 뺀 주인공의 직업만 조사한 결과로 남자주인공은 △의사 △언론인 △사장(CEO) 순으로 많았고, 여자주인공은 △일반 회사원 △학생 혹은 취업준비생 △패션 관련 직종 순이었다. 남성주인공은 상층 엘리트, 고학력 소유자로 드라마의 인물이 구성되고 여성주인공은 남성을 보조하거나 평범한 능력치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 KBS 2TV 주말드라마 총 36편의 주인공 직업을 조사한 결과. 남자주인공은 의사, 여자주인공은 회사원이 가장 많았다. 인포그래픽=이우림 편집기자
 

가족드라마에서 남녀의 직업이 고정되는 이유는 우선 KBS라는 ‘공영방송’의 ‘가족드라마’라는 형식 때문이다. 이강현 KBS PD는 “가족드라마에 성별에 따라 직업이 어느 정도 고정돼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그 이유로 “실험적이고 과감한 사회상 반영이 용이한 장르와 달리 전통가족극인 공영방송의 주말 연속극은 조금 더 보편적이고 관습적 역할들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강현 PD는 “전체적으로 보면 직업군이 성별에 따라 고정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성역할이 역전된 모습도 나오고 있다”며 “최근의 ‘부탁해요 엄마’와 같은 경우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성 CEO로 나오고, 자영업을 하는 부부의 모습에도 고정된 성역할과는 역전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이유는 KBS 2TV의 주말 가족극의 주시청층이 중장년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장년층의 TV시청 습관과도 관련이 있다. KBS 2TV의 주말연속극은 1987년 3월7일부터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7시55분에 시작한다. 주말 저녁 가족과 앉아 주말드라마를 보는 시청습관이 거의 30년째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드라마의 전통적 구도에서 드러내는 선입견에 대해 김교석 평론가는 “드라마를 만드는 조직내부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 KBS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온가족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지향한다고 말한다”라며 “하지만 KBS가 말하는 ‘온가족’은 가족 모두라기보다 가족 안의 장년층에 맞춰져 있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족 안의 어르신에 맞춰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말드라마의 직업선정이 고정관념 때문이라기보다 PPL(제품 간접 광고)에 따라 정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유선주 TV평론가는 “드라마 속 직업들이 당대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를 제작 지원하는 곳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며 “여성의 직업군에 패션관련업이 많고 남녀를 떠나 자영업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PPL로 의류업체가나 프랜차이즈 업체가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유선주 평론가는 “이는 어느 정도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다”라며 “PPL업체로 몇가지 업체가 몰린다는 것은 실제로 특정 업체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KBS 2TV의 가족극이 전통적 가족의 모습과 전형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틀 안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박지은 작가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이다. 

   
▲ KBS 2TV에서 2012년 방영된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화면 갈무리. 사진=KBS
 

‘넝쿨당’은 드라마 PD인 여주인공 차윤희(김남주 분)과 외과 의사인 남주인공 방귀남(유준상 분)이 만나며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중점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다. ‘넝쿨당’은 갈등관계로만 그려지던 며느리와 시집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묘사하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드라마는 한국여성민우회의 ‘2012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에서 성평등적 시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드라마로 꼽히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BS 주말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지금까지 다뤘던 가족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드라마인 것은 사실이다”며 “틀을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똑같이 반복한 것은 아니고 시대상을 반영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틀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부모의 입장에 자식이 따라주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내 딸 서영이’와 같은 작품은 자식의 입장을 집중해서 보여줬고, ‘넝쿨당’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에서 며느리가 관계를 주도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같은 틀 안에서도 의미 있는 변주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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