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 때 할인 가격보다는 제 값을 주고, 불편하게 사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달 27일 장기 연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 설립을 주도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주빌리은행 이사)다.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사무실에서 제윤경 대표를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한다. 인간이 언제나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거래를 한다고 가정한다. 장기 연체의 책임을 채무자들이 져야한다는 논리도 이 가정에서 나온다. 채무자가 돈을 빌릴 때도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돈을 빌렸으니 못 갚은 것은 오로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제 대표는 “우리 마음안의 비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에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을 인용했다. 

“맛있는 음식, 멋진 옷 등 유혹이 넘쳐나지만 가질 수 없는 경우, 욕망은 줄어들지 않는데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제해야 하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이런 유혹을 피하려고 내리는 결정에 뇌는 많은 수고를 한다. 이런 수고가 반복되면 의지력은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태를 ‘자아고갈’이라고 한다.” 

   
▲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사진=채널예스 제공.
 

실제로 서민들이 갚지도 못할 돈을 빌린 것은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정이 아니다. 매달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회사가 카드발급을 남발하고 대출을 유혹하면 ‘자아고갈’ 상태에서 생활비를 빌려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제 대표의 주장이다. 제 대표는 “상환능력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빚 갚지 말자는 게 아니라 못 갚을 권리도 있다는 것”)

그는 지난 2007년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를 설립했다. 에듀머니는 서민들에게 현명한 소비를 교육한다. 이는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인간 감정에 있는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소비를 하자고 가르친다. 

불편하게, 제값주고 사자 

제 대표는 대기업의 할인 마케팅에 대해 지적했다. “신경학자나 행동경제학자들이 입증을 한 사실인데 할인 상품은 뇌를 자극해 사고 싶게 만든다. (할인상품을 보면 도파민이라는 흥분물질이 분비된다.) 하지만 싸다고 대형마트를 이용해 골목상권을 죽이게 되면 소비자는 선택권이 사라진다. 결국 소비자가 이익을 보게되지 않는다.” 

할인한다는 이유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다보면 결국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제 대표는 “예전에 농담처럼 된장찌개 끓이다가 마늘 없으면 차 끌고 대형마트 간다고 말했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됐다”며 “대형마트에 가면 과소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행동경제학에서 증명한 것처럼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손실을 회피하는 쪽으로 소비를 하게 되고 할인물품을 놓치지 않으려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뜻이다.

소비가 많아지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제 대표는 “소비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맞춰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일이 힘들어도 과소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든 노동을 견뎌야만 한다. 견뎌야만 하는 노동에서 자아실현은 존재할 수 없다.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한다”고 말했다.

   
▲ 사진=pixabay.
 

더 큰 문제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분리하는 것이다. 제 대표는 “소비자라는 존재하지 않는 계급이 생겼다”며 “사실 우리는 생산자면서 동시에 소비자인데 이게 분리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자신들도 직장에 가면 직원(생산자)이 된다. 소비자일 때 직원에게 친절을 강요하지만 자신도 직원으로 일할 때는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사실 같은 계급인데 이게 분리되면서 노동의 가치도 떨어지게 됐다. 제 대표는 “노동의 즐거움이라는 게 있나? 노동의 가치가 실종됐다”며 “노동을 선택하거나 판단할 때 임금 수준만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 값주고 사야 삶의 질도 올라간다 

제 대표는 이런 비유를 든다. “어떤 사람이 파 한 단을 4000원이나 주고 샀다고 하자. 비싸게 샀으니 아까워서 파 뿌리까지 다 먹었다고 한다.” 제 대표는 “제 값을 주고 사면 물건과 주인 사이의 애착관계가 생긴다”며 “하지만 할인해서 산 물건은 애착이 생기지도 않고, 소비의 만족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의 만족도가 떨어지면 자주 소비를 해야 한다”며 “할인 제품이 보일 때마다 사야하는데 못 사면 괴로워진다”고 말했다. 결국 삶의 만족도까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충동 소비가 줄어들면 덜 불행해진다. 제 대표는 “어차피 원 없이 사지도 못하는데 물건을 사고 나서 후회하는 죄책감까지 드는 불만족이 든다”며 “물건을 제값주고 사 소비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높아지면 소비하는 물건의 양은 줄어들고, 삶의 질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생각을 많이 하자, 이 물건은 필요한가? 

현명한 소비는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는 게 제윤경 대표의 설명이다. “감정은 비합리적이다. 다만 이성이 실수하지 않도록 우리의 선택을 가이드 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즉각적인 감정을 의심하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물건을 보는 순간 절실하게 사고 싶었는데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면 별로 필요 없다는 판단이 들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