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선수가 국제경기단체와 국내경기단체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선수로서는 선수 자격이나 활동에 제한을 가하는 징계를 받으면 바로 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징계의 당부를 다투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를 각오하여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내외 경기단체와 선수의 관계는 이른바 ‘갑’과 ‘을’의 관계에 있기 마련이다. 선수 측이 억울하다고 생각해도 경기단체의 ‘힘’에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올해 초 국제복싱연맹(AIBA)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금메달리스트 신종훈 선수(인천시 소속)에게 내린 18개월의 ‘모든 복싱활동 금지’ 징계와 관련하여 AIBA 징계절차와 최근의 국내 법원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신 선수를 대리했던 나로서는 신 선수가 어떻게 국내외 경기단체로부터 가혹한 처분을 받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지난 4월 30일경 AIBA로부터 징계를 받고 급기야 국가대표 은퇴까지 한 신 선수가 법원의 결정으로 다행히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어 선수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사정을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신 선수, AIBA, 대한복싱협회 사이에 엇갈리는 주장을 빼고 다툼이 없는 사실관계부터 알아보자. 작년 5월 20일경 전지훈련차 독일에 있던 신 선수에게 AIBA 측 직원이 찾아와 AIBA 프로복싱(APB) 대회 출전에 관한 영문 계약서를 제시하며 서명을 요구하였다. 신 선수는 10월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실패시 병역문제가 있고 계약서 내용이 영문으로만 되어 있어 계약서 서명을 주저했으나 거듭 된 AIBA 측 직원의 요구와 우선 신 선수 서명만 받는 것이라는 말에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AIBA 측 직원은 영문계약서 사본도 신 선수에게 주지 않았다.

   
▲ 2014년 10월 인천 선학체육관에서 열린 2014 아시안게임 복싱 남자 라이트 플라이급(-49kg) 결승전에서 한국 신종훈이 카자흐스탄의 자크포브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스
 

계약서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런 대회 출전 통보를 받은 신 선수,
중징계 받을 만큼 잘못했나?

작년 10월 3일경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지만 그 때까지도 신 선수는 체결된 계약서를 받지 못했다(계약 당사자는 신 선수, APB 대회 마케팅회사, 대한복싱협회 3자이다). 신 선수가 11월 3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참가 준비 중인 10월 17일경 대한복싱협회는 AIBA로부터 받은 11월 1일의 APB 대회 일정 등이 담긴 이메일을 신 선수에게 전달하면서 전국체전에 참가하고 APB 대회에 불참하면 징계를 받을 것이라며 APB 대회 출전을 종용하였다.

신 선수는 11월 3일 전국체전에 참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11월 7일 구미시 자택에 휴가차 머물렀는데, 대한복싱협회가 11월 6일 우편 발송한 3자 서명날인한 계약서를 그때서야 받게 되었다. AIBA는 11월 11일경 제주도에서 열린 ‘APB 집행위원회’에서 계약 위반을 이유로 선수활동 금지 임시처분을 내렸고, 2015년 2월 17일 AIBA 징계위원회는 APB 집행위원회의 징계 신청으로 징계절차를 개시하여 지난 4월 30일경 18개월의 모든 선수활동 금지 징계를 내렸다.

나는 징계절차에서 계약서에 마케팅회사는 늦어도 APB 대회 1개월 전에 신 선수에게 직접 대회 일정 등을 통지하도록 한 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신 선수가 APB 대회에 참가할 계약상 의무가 없으므로 계약 위반이 될 수 없으며, 계약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징계규정상 규정위반이  될 수 없고 체결된 계약서를 APB 대회 종료 이후에야 받은 사정 등을 고려하면 징계규정상 징계사유인 ‘중대한’ 규정위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징계위원회는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18개월 모든 선수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던 것이다.

징계절차 중에서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를 보기도 했다. 관련 규정상 징계절차 관련 당사자의 서면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되어 있으나, 대한복싱협회가 징계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을 나는 대한복싱협회 뿐 아니라 징계위원회를 통해 받지 못했다. 나는 대한복싱협회가 서면을 제출하지 않은 줄 알았으나 나중에 결정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해 당사자이자 신 선수와 갈등관계에 있는 대한복싱협회가 어떤 내용의 서면을 제출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 선수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 우리는 반박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AIBA와 대한복싱협회, 신 선수에 대한 부당한 징계를 풀고 올림픽 출전의 기회 주어야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과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신 선수가 18개월의 모든 선수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을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는가? 신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서명했고 다른 당사자들도 서명했던 계약서를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것도 계약서에 마케팅회사가 늦어도 1개월 전에 알리도록 되어 있는데 대회 보름 정도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대한복싱협회가 알리고 APB 대회 참가를 종용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정에서신 선수의 APB대회 불참에 대한 다른 당사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은데, 신 선수에게 그런 중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더군다나 계약서에 올림픽, 아시안게임, APB 대회 외에는 일체 국내외 대회를 참가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1년간 APB 대회가 4개 정도이고 그에 대한 개런티가 1000만 원도 되지 않은 사정으로, 신 선수가 다른 국내 선수처럼 APB 대회에 지장이 없는 국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요청하였으나 대한복싱협회 측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심지어는 대한복싱협회 측은 신 선수에게 AIBA 측과 협의해 APB 대회에만 출전할 것을 조건으로 징계를 해제할 수 있다고 ‘굴복’을 요구하였다. ‘징계’가 다른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인한 것이 아닌가. APB 대회에 관하여는 AIBA와 대한복싱협회의 이해관계가 맞았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번 일에 있어서 AIBA와 대한복싱협회는 한통속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다행히 법원의 전국체전 참가 가처분 결정으로 신 선수는 복싱 글러브를 벗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못한다. 신 선수에 대한 ‘괘씸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신 선수가 복싱을 하게 만든 ‘올림픽’ 메달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주는 것, AIBA와 대한복싱협회의 착한 ‘한통속’이 있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의 변호사이다.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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