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양첸하오 BBC 월드서비스 중국어판·대만공공방송(PTS) 객원 서울특파원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양첸하오는 지난 1월 BBC 중국어판에 "한국방송국 MBC, 자사 비판한 PD 해고 파장"이라는 기사를 게재해 MBC 권성민 PD 해고 소식을 중국에 알린 바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 현장과 미디어 산업, 특히 방송의 공공성 이슈에 관심이 많은 양첸하오는 지난 5월 미디어오늘에 "외신기자가 바라본 MBC 파업과 그 이후" 라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양첸하오 칼럼은 한국과 대만을 넘나들면서 언론 현장의 고민을 담아내는 기획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국 언론사들이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기사를 써준다는 미디어오늘의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한국 정부가 뉴스를 ‘매매’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만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했다.

중국어로는 ‘置入性行銷’(치입형행소, ‘뉴스에 마케팅을 넣다’는 뜻)나 ‘業配新聞’(업배신문, ‘업무협동식 뉴스’)과 같이 표현하고, 영어는 ‘Place marketing’,  한국에서는 ‘Product Placement’(PPL)로 부른다. 이 PPL은 이미 대만에서는 매우 효율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무서운 시스템이 돼 버렸다.

2000년 민주진보당의 첸쉐이볜(陳水扁)은 대만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총통에 당선됐다. 당시 다수 언론들은 국민당이 지배하거나 국민당에 우호적이었다. 

민진당은 야당 시절 언론의 자유를 호소하면서 국민당의 언론 개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언론은 민진당 정권에 비우호적이었다. 그러던 2003년 민진당 정권 내각이 국민 세금인 PPL 예산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80회(2014년 11월 21일 방송) 한 장면. 이날 방송은 고용노동부의 스마트워크 정책을 간접 홍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지면이나 방송 시간을 구입했고, 이를 통해 정책 홍보나 정부 실적을 국민에게 알렸다. 이러한 내용은 ‘광고’라고 표기되지 않았으며 직접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이 시기는 대만 언론 시장에 큰 변화가 나타나던 때였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 기사와 함께 전면 컬러 인쇄를 추진한 홍콩 ‘넥스미디어그룹’(壹傳媒)이 대만 시장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발매한 ‘넥스매거진’(壹週刊)과 ‘에이플데일리’(蘋果日報, 사과일보)가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면서 대만 언론에 충격을 줬다. 현지 신문과 잡지사들이 경영난을 겪게 됐고 일부는 파산하기 시작했다. 

또 1993년 정부가 무분별하게 케이블 방송 시장을 개방한 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시청률 경쟁이 극심해졌다. 전체 TV 광고량과 수익은 해마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언론이 PPL을 선호하게 된  이유가 됐다. 

PPL 도입 후 몇 년이 지나자 PPL은 생계를 위한 시스템으로 정착했다. 도입 초기 대만 언론들은 PPL 뉴스를 경영 부문에 맡기는 등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문사 편집국이나 방송사 보도본부의 기자가 직접 나서서 취재와 제작을 담당한다. 

대만 PPL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부 각 부문의 근무 성과 및 이에 대한 낯 뜨거운 찬양, 지자체 관계자들의 이미지 제고, 정부의 특정 정책에 대한 옹호, 그리고 정부 입장만 쏟아진다. 

심지어 대만전력공사가 방송뉴스 시간을 구입해 방사성 폐기물 처리소의 장점과 무해성을 선전하면서 시민들과 환경보호단체들의 반대 여론을 왜곡하는 일도 발생했다.

   
'넥스미디어그룹(壹傳媒)'이 발간하는 '넥스트매거진(壹週刊, 왼쪽)'과 '에이플데일리(蘋果日報)'가 선정성 경쟁을 벌이면서 대만의 언론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민진당 집권시절, 중앙정부가 매년 평균 배분한 PPL 예산은 11.5억여 만웬(약 402.5억원)에 달했다. 보통 방송사 데일리뉴스 PPL은 보도당 7만~15만웬(245만~525만원) 수준이다. 10분짜리의 프로젝트 기획은 보도당 15만~20만웬(525만~700만원)이다. 방송시간과 편성 순서도 논의될 수 있다. 

방송사는 1+1, 방송시간 보너스 등 패키지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보도채널 화면 아래에 위치한 마르키자막(marquee)도 매매 대상이다. 신문이라면 기사 2개와 사진 한장의 PPL는 10만웬(350만원), 지면 한 페이지에 실리면 60만웬(2100만원)을 받는다.

   
대만 언론에서 PPL의 만성화는 언론인들의 영혼까지 잠식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의 PPL도 광고인지 아닌지 쉽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보통 한 매체의 하루 PPL 기사 수는 5개 이상이다. 하루 PPL 뉴스를 통해 1300만원 이상의 이윤을 얻고 한 달간 3.9억원을 벌 수 있다. 시청률을 통해 광고 수익을 버는 것보다 PPL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수지 맞는 장사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본 뉴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광고였다는 사실을 알기가 쉽지 않다. 

“시청률보다 PPL뉴스가 돈 벌기 훨씬 더 쉽다.” 전직 지상파방송사 부사장이었던 이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대만 공영방송(公視,PTS)를 제외한 모든 상업 방송사 모두가 PPL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대만의 현실이다.

뉴스가 매매 상품이 되면, 언론의 독립성은 필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래 역할도 제대로 다할 수 없다. ‘PPL 의 지배’는 민진당 집권시절부터 나타나 2008년 국민당이 집권한 후 더욱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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