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의 박원순 비판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정 전반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철저하게 보수 개신교의 입장에서 몇 가지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15일 국민일보 종교면에는 <서울시 앱 로고, 범성애 상징과 유사 논란>이라는 기사를 통해 “동성애 옹호가 의심 된다”는 주장이 실렸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개설한 앱 ‘내 손안에 서울’의 배경이 다홍색, 노란색, 진한 하늘색으로 돼 있는데 이것이 범성애 디자인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 지난 15일 국민일보 종교면
 

사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것이 범성애를 상징하든 그렇지 않든 이를 해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한 보수단체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성소수자를 옹호·지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며 마치 성적 취향이 잘못된 이념 내지는 범죄인 듯한 뉘앙스를 나타냈다.

보수단체 대표는 이어 “서울시는 동성애자들에게 서울광장을 내주고 광란의 파티를 하도록 내버려 둔 전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진행된 ‘퀴어문화축제’를 뜻하는 것이다. 같은 기사에서 양병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은 “서울시청에서 동성애 관련 물품이 전시·판매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며 “전임시장 때 상상도 못했던 충격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3일 퀴어문화축제에 관해 일방적으로 보도했던 6월 2일자, 4일자, 5일자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반론보도문을 실었다. 국민일보는 관련기사에서 박 시장이 “한국 최초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아시아 국가가 되길 희망했다”고 했다고 보도했고, 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 허용은 조례위반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광장 사용 관련 조례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국민일보가 사실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일보가 지속적으로 박 시장을 공격하는 이유를 반론보도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3일 반론보도문에 따르면 서울시는 국민일보 기사에 대해 박 시장이 최초로 동성 결혼 합법화할 의사를 표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동성애와 관련한 박 시장의 입장에 대해 일방적인 보도를 통해서라도 끊임없이 보수 개신교계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의 박 시장 공격은 동성애 이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지난 2월 10일 종교면을 통해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명에 불교계 조직적 개입>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40여건의 기사와 칼럼를 통해 9호선 봉은사역이 코엑스역으로 개정돼야 하며 박 시장이 불교계 편을 들어 종교편향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엑스는 2호선 삼성역에서부터 9호선 봉은사역까지의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봉은사는 코엑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개신교계는 봉은사역 명칭에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25일 국민일보에 따르면 한국교회연합은 ‘봉은사역명 철폐 긴급 토론회’를 열어 입장을 공유하고 서울시민을 상대로 1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국민일보가 이토록 집요하게 보수 개신교 입장에서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주류 개신교 입장에서는 “서울을 봉헌하겠다”고 한 이명박 전임 서울시장이나 비슷한 성향을 가졌던 오세훈 전임 시장에 비해 박 시장에 대한 선호가 떨어질 수 있다. 

   
▲ 지난 5월 25일 국민일보 종교면.
 

다른 이유는 없을까? 지난 11일 국민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에서 만든 약 4분짜리 동영상의 제목은 ‘한국교회여 동성애 STOP을 외쳐라’다. 

영상을 통해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동성애가 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죄악시 하며 “동성애 문화가 급격하게 밀려오고 있다”거나 “과거에 역사에도 동성애가 존재했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을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적군이 밀려오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영국의 변호사 안드레아 윌리엄스는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차별금지법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크리스천의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법 제정에 반대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가정과 나라를 복음으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보수 개신교계 주장에 대한 비판은 다양하다. 성서 레위기 18장 및 20장에는 동성애를 ‘가증한 일’이라는 표현했다. 하지만 이 표현이 그 당시의 도덕적 기준으로 볼때 비도덕적이라는 뜻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성서 레위기에는 일부다처제 허용·여러가지 천을 섞은 옷을 입는 것 금지·돼지고기 섭취 금지 등의 내용도 있다. 왜 동성애에 대해서만 금지하고 다른 성서의 내용은 지키지 않느냐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동성애 혐오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상황에서 이런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영상에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 본부장 소강석 목사는 “동정의식은 가져야 되겠지만, 긍휼한 마음은 가져야 되겠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강조했고,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 전문위원장 이용희 교수는 “동성애 이슈가 나올 때마다 올바른 요점을 가지고 분명히 일깨워 줘야 된다”며 개신교인의 우월의식을 드러냈다.  

이어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 교육원장 김성로 목사는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면 동성애를 막을 줄 믿는다”고 말했다. 결국 동성애 이슈를 근거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단결을 꾀하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가 공개한 '동성애 STOP' 영상 화면 갈무리.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개신교는 급격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10년마다 벌이는 인구조사 결과 1985년부터 1995년까지 가톨릭은 108만여명, 불교는 226만여명, 개신교는 227만여명이 늘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가장 많은 성장을 보였던 종교는 개신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5년부터 2005년 사이 결과는 달라졌다. 불교는 이 기간에 40만명의 신도가 늘었지만 개신교는 14만명이나 줄었다. 반면 가톨릭은 같은 기간 219만여명이 늘어 올해 조사에서는 가톨릭 인구가 개신교 인구를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개신교 인구 감소의 원인을 배타적인 태도로 꼽고 있다. 

동성애자나 동성애를 비판하지 않는 박 시장에 대해 차별하면서 개신교인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나치 시절 아리안 우월주의를 떠올린다. 

결국 최근 이어지는 국민일보의 집요한 박 시장과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찍기식 보도는 개신교의 이해관계에 불과할 뿐, 권력에 대한 감시라고 보기 힘들다. 국민일보를 소유하고 있는 국민문화재단의 이사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이영훈 목사 뿐 아니라 조 목사의 차남 조민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 본부장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등 개신교 인사들로 이루어져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일보 홈페이지에 게시된 영상은 “한국교회여 함께 힘을 모아 일어납시다”라는 멘트와 함께 “동성애 STOP”이라는 화면으로 마친다. 적어도 박 시장과 동성애 관련 보도를 보면 국민일보 종교면에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약한 자를 위해 희생하던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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