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시리즈 인터뷰, 논(論)과 쟁(爭)을 연재합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 릴레이 인터뷰는 도서출판 답과 함께 진행하고 향후 인터뷰 전문은 따로 책으로 묶어 출간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이철희 - 그나저나 총선 전망 어떻게 하세요?

강준만 - 별생각 없어요. 진짜로 그래요. 거칠게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평소에 개판 치다가 일 닥쳐서 뭘 한다고 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는 태도가 지금의 야당을 골병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희망, 희망 얘기하는 데 좌절도 끝까지 겪어봐야 새로운 뭐가 나오죠. 좌절을 막 시작하려는 차에 갑자기 희망을 얘기를 하면 안 되죠. 제대로 망가져야 뭔가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근데,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해왔어요. 근데 그때그때 워낙 급했고, 불가피했다고 말하겠지만 시간대를 몇 년이 아니라 십수 년 정도로 늘여보면 그게 아니에요. 세상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예요? 지금 이게 몇 번째죠? 혁신위가 여섯 번째인가요? 비대위는 또 몇 번이나 있었어요? 유권자들이 모를까요? 그 당시로는 절박하고 시급했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달라요.

예를 들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급하다고 추진했다가 정부를 내놓고 나서 바꾼 게 어디 한두 개 입니까? 전부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 신뢰가 안 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나가게 된 이유가 뭐냐? 당장 급하다는 거 아니에요, 당장. 이런 생각이 망가뜨리는 겁니다. 물론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왜 바깥의 시민사회에서조차, 아니 시민사회가 오히려 더 성화를 부리고 난리를 칩니까? 총선이 급하다, 대선이 급하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그동안 내내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내내 탱탱 놀던 애가 이제 수능 시험이 임박했다고 갑자기 벼락공부해서 하자는 거 아닙니까? 벼락공부하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데에 신경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철희 - 사실 선거에 임박해서 선거 승리만 외친다고 해서, 그것도 낡고 식상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이기려고 하면 더 이길 수 없죠. 선거의 역설 같은 겁니다. 샤츠 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말처럼 선거 승리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죠. 그러나 그람시(G. Gramsci)의 지적도 있습니다. 선거 성패는 긴 과정의 마지막 세리머니(ceremony)라는 거예요. 매번 상대를 욕만 해대고, 그걸로 자신의 무능을 숨기려 하면 집권하기 어렵죠. 요행히 집권하더라도 해보려는 뭔가가 없거나, 있더라도 그걸 해볼 수 있는 힘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강준만 - 제가 장담하는 건 이런 거예요. 정당은 아예 문을 닫고 있고, 현실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선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죠.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답이 없을 때 없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답이 없는데 왜 자꾸 있는 것처럼 속여요? 아니 병에 걸렸는데 한 1년 정도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에요. 그걸 어떻게 그걸 한 달 만에 낫게 할 수 있다고 합니까? 사기죠.

이철희 - 선거의 필요성, 선거 현실, 이런 논리들은 혁신을 기피하는 알리바이(alibi)에 다름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활용됐죠. 선거 때가 되면 이런 논리가 횡행해요. 선거는 현실이고 당선되고 이겨야 하는 데, 이상만 추구할 거냐?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 논리가 실제 혁신을 막고, 실력을 기르지 않고 말로 때우고 몸으로 버텨도 되게끔 만든 건 사실이죠.

강준만 - 문제는 정당만 그런 게 아니라 민심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민심도 보면, 평소엔 다 비판해 놓고 총선이나 대선이 다가오면 밀어줘요. 왜 그게 모순된다는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철희 - 동의합니다. 다만, 약간 다르게 볼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정당의 진화라고 할까요, 정당이나 정치가 좋아지는 과정이란 게 또박또박 조금씩 좋아지지 않거든요. 간헐적인 선거 승리의 경험이나 또는 선거 과정에서 괜찮은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계기들에 의해 어느 순간 성큼성큼 좋아질 수 있어요. 권력을 가지면서 대중과 결속하고, 그러면서 정당이나 정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 기능성은 항상 열어 두시는 거죠?

강준만 - 열어두죠. 아까 언급한 청년유니온 친구들…,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요. 아마 알린 스킨 학습을 제대로 한 거 같아요. 작은 승리의 경험, 그거 정말 와 닿는 얘기거든요. 지역에서도 보면요, 작지만 한 번 이겨보세요. 아, 엄청난 겁니다.

그런데 진보에는 어떤 정서가 있느냐? 심하게 말하면 자학하면서 비장미를 즐겨요. 비장미, 위대한 패배라는 거죠. 우리가 옳은 일에 도전했다가 좌절당했지만 패배한 건 아니다. 명백한 실패이고 패배인데도 자꾸 절반의 승리라고 부르짖어요. 여태까지 진보 쪽 얘기를 들어보면 절반의 승리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패배에요. 졌으면 그 패배를 인정해야 해요. 왜 절반의 승리라고 우깁니까? 그러니까 작은 승리 자체를 작다고 무시하고, 그 작은 승리의 경험이라도 없으면 패배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심리학에도 나옵디다. 패배를 내면화하다 보니까 큰 것에 의해, 그야말로 한 번에 되찾으려고 해요. 한 번에 되찾으려고 과정이나 작은 승리를 소홀히 하는 건 잘못이죠.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온테이블
 

이철희 - 한 번에 모든 것을 되찾으려 하는 것과 관련해 일규주의(一揆主義)란 걸 지적하고 싶어요. 주·객관적인 조건이 변화했는데도 과거의 생각만 기계적으로 고집하는 것인데요, 한 번 생각을 정하거나 원칙을 잡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개 차근차근 변화를 일구기보다 한탕주의에 빠지기 마련이죠. 새정치민주연합이 바로 일규주의에 빠져 있어요. 낡은 인물들이 식상한 전략, 익숙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거죠. 창조적 기획, 상상력이 없어요.

강준만 - 저도 승리를 통한 진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죠. 그런 승리를 통해서 전진하고, 성찰도 크게 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다 한 방을 말하니까 문제죠.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총선·대선이 뭐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기이고, 또 저들이 이기면 나라 망한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 총선 두 번 연거푸 지고, MB(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두 번을 겪고 있는데 뭘 또 망해요? 이번에도 총선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면 일단 그런 방향으로 가보라 이거에요. 저는 조용히 지켜보겠다는 겁니다.

이철희 - 그게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죠. 보수정권 10년이 15년 가고, 20년 가면 나라가 절단 난다, 우리는 다 죽는다는 건 공포 마케팅이에요. 선거란 게 약간의 공포 마케팅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패배론이 갖는 폐해를 지적하신 것에 대해 저는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저도 강연 가면 대한민국에선 개혁은 실패하는 게 마치 정상이고 정당한 것처럼 보는 시각이 대세라는 걸 지적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제 나름대로 그 근원을 쭉 올라가서 찾다 보니 정암 조광조 선생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조광조 모델을 무지 싫어한다.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뤘습니다만, 조광조의 개혁을 보면 백성들의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개혁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다가 무너진 거거든요. 소격서 혁파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뭐 이런 것들을 들이댔다가 3년 만에 장렬하게 산화했잖아요. 그래서 개혁이라고 하면 강렬하게 주장하다 장렬하게 쓰러지는 그림이 당연하고 멋있는 걸로 받아들여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조광조 개혁 때문에 사림의 집권이 50년가량 늦어졌다는 비판에 주목해야 합니다.

강준만 - 사실 우리 역사가 그래요.

이철희 - 그런데 성공한 개혁 사례가 없지 않아요, 있습니다. 예컨대 김육의 대동법이 그렇죠. 김육은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대동법을 추진해 나갑니다. 멋진 비장미는 없지만 백성들이 도움을 받은 건 대동법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박수 안쳐줘요. 저는 요란한 개혁의 조광조 모델보다는 해내는 개혁의 김육 모델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강준만 -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김구 선생이잖아요. 정말 존경할 만한 삶을 사신 분이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승만에게 패배하신 분이에요. 김구 선생은 이겼어야죠. 우리에게 비장미 이데올로기가 있다니까요. 안될 거 그냥 부딪쳐서 깨지고, 그럼에도 우리가 옳았고 정의의 편이었다고 자위하죠. 왜 그래요? 작은 거라도 이겨서 가야지.

이철희 - 자칫하면 사쿠라 되지요. (웃음) 간디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강준만 - 비현실적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정치인들이, 이 문제는 50년 묵은 문제라 한방에 해결 안 됩니다, 10년~ 20년 걸립니다, 하지만 방향은 이쪽으로 틀어서 출발해 봅시다, 성과가 금방 안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정치인 보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그게 정치인이 할 소리냐고 야단치실 분도 있겠죠. 하지만 여태까지 이런 말에 속아왔잖아요.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이 리얼하게 보여 줬잖아요. 공약을 어디 지켜요? 국민들이 귀신같이 다 알아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야죠, 정치인들이. ‘이거 쉽지 않다. 5년이나 4년 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향은 바꿔서 이렇게 가보겠다. 유권자들도 인내 주셔야 한다. 쉽지 않고, 오래 걸린다.’ 이러면 먹힐 수 있어요. 물론 한방에 해결하고자 하는 심리가 정치권에만 있는 건 아니죠. 유권자들에게도 있긴 있어요.

이철희 - 저는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말하는 사람들이 어차피 그렇게 안 될 걸 알면서 그렇게 말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풀어낼 실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심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무능을 위장하기 위해, 내부의 손가락질이 무서워서 그렇게 과격하게 말한다고 봅니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제가 어렵게 내린 결론입니다.

강준만 -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잖아요. 정치인을 지켜보고 심판해야 할 유권자들의 경우에도 한방을 찾는 심리가 있어요. 우리가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한다고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도 해요. 뭔가 화끈한 얘기를 해주기를 바라잖아요. 선거 나온 놈이 세상에다 대고 인내하라고 하면 이 새끼가 미친 수작한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죠. 그게 먹히겠어요?

이철희 - 편이 안 생기죠. 그렇게 뜨뜻미지근하면 되레 안티만 생기겠죠. (웃음)

강준만 - 아까 책 얘기했잖아요. 책도요, 빠들이 열광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팔려요. 그거 없이, 이거 아니다나 우리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 안 팔려요.

이철희 - 여담입니다만, 팟캐스트 ‘이이제이’ 하는 이동형 작가라고 있습니다. 그 친구와 인터뷰 중에 팬클럽 얘기가 나왔어요. 회원 수가 얼마냐고 묻기에 제가 한 3천 명쯤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자기는 2만 명이래요. 책도 내면 몇 만권씩 나간대요. 그래서 편을 확실히 해야 빠도 생기고 책도 많이 나간다, 뜨뜻미지근하게 하니까 빠들이 없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근데 그게 시작은 좋을지 모르나 어느 순간 권력관계가 바뀌게 돼요. 제가 따라가게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을 제가 추종해야 하는 걸로 바뀌는 겁니다. 빠현상의 역전이 일어나는 셈이죠. 전, 그건 싫어요. 누구라도 저를 추종하는 것도, 제가 누굴 추종하는 것도 싫습니다.

강준만 -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지식인들은 졸(卒)이 되었는가? 저는 예전에 스스로 무지 똑똑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김대중 이야기하고 노무현 이야기할 때 내가 그래도 사람들을 앞서간다는 생각했어요. 엄청난 착각에 빠졌던 거죠. 아, 근데 분당(分黨) 때 한 번 겪어 보니 제가 졸이었다는 걸, 치어리더에 불과했다는 걸 알겠습디다.

어제 야구장에 가서 한화 게임을 봤어요. 운동장에서 치어리더의 역할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원초적으로. 지든 이기든 열심히 응원하도록 독려하는 거죠. 한화의 치어리더가 한화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해서 상대팀인 기아를 응원할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한화를 깔 수도 없는 거고요.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노무현을 지지했기 때문인데 네가 감히 노무현에게 그거 아니라면서 대들어? 그러면 아웃(out)이죠. 치어리더의 본분을 잊은 게 되니까요. 끌려갔던 것이지, 제가 끌었던 게 아닙니다. 그걸 제가 뒤늦게 깨달았다죠. 사실 한겨레도 잡혔죠.

이철희 - 그렇게 보면 조선일보도 잡힌 거죠. (웃음)

강준만 - 그런데 잡힌 정도가 조금 달라요. 한겨레를 구독하는 동기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동기가 다른 거죠. 조선 구독자 중에는 문재인 지지자들도 많아요. 실리를 목적으로 구독을 하니까, 잡힌 부분도 있지만, 한결 자유로워요. 한겨레는 작고, 잘못하면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어요. 가령, 유시민처럼 ‘관 장사’란 표현 때문에 절독 운동하겠다고 하자 편집국장이 1면에 사과해야 했어요.

저는 그거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세상에 말이 됩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1면에 사과문을 싣는 신문이 어디에 있어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잡힌 거죠. 다른 이야기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특정 인물 중심의 무슨 무슨 사모들은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돼요. 그러니까 참여를 얘기할 때 분명하게 선을 긋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청년들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그런데 ‘○○사모’할 거면 절대 하지 마라, 이슈 가지고 싸우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철희 - ‘노사모’처럼 정치인 이름의 앞 글자에 사모를 붙이는 형태의 사모 말이죠? 자랑 같습니다만, 제 팬클럽은 그래서 이름이 ‘이철희와 함께 가는 사람들’, 줄여서 이함사라고 합니다. 착하죠. (웃음)

강준만 - 사모, 그거는 하지 마라, 차라리 그 마음으로 이슈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철희 - 사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돼야죠. 정치의 본령은 누가 좋아서가 아니라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거죠.

강준만 - 인물 중심의 정치 속성이 과연 달라질지에 대해 저는 비관적으로 봤는데, 요즘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청년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조성주의 말도 예전 같았으면 별거 아니었어요. 관심 갖지 않고 다들 그냥 넘어갔겠죠. 그런데 조성주 개인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조성주가 던진 출마의 변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래서 화제가 된 거잖아요. 그래서 전 틈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슈 중심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철희 - 보수는 그 척박한 토양에서 그래도 보수의 업그레이드(upgrade)된 버전인 유승민을 내놨잖아요. 기존의 보수와 많이 다르죠. 얼마나 성장하고, 마침내 결실을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튀어 나왔잖아요. 진보를 표방한 정의당에서도 기존의 진보랑 다른, 업그레이든 된 버전인 조성주가 나왔어요. 유승민과 조성주를 수평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자기 진영의 혁신을 부르짖으면 등장한 건 둘의 공통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그런 새 흐름이 없어요. 계파 간 갈등으로 시끄럽기는 하지만 낡음을 깨고 새로움이 탄생하는 창조의 진통은 없어요. 저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기초단체장들, 특히 수도권의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해 정당 밖이잖아요.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왜 이런 게 없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586이라고 불러야 할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친구, 선후배들이긴 하지만 참 무능해요. 무능한데 겸손하지도 않아요. 자신을 던져 민주화에 헌신했던 이들이 도대체 왜 이럴까요?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왼쪽)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온테이블
 

강준만 - 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요. “80년대에 뭐 했어?”

이철희 - 자신의 과거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말씀이죠?

강준만 -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에 대한 엄청난 긍지가 있는 거죠. 우리가 목숨 내놓고 피땀 흘려서 투쟁했다. 그런데 안철수처럼 갑자기 등장한 사람을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우습게 보는 거죠. 그들에게 안철수는 말이 안 되죠. 저는 그걸 일찍 느꼈어요. 예전에 '김대중 죽이기'란 책을 내놓고 진보 쪽하고 논쟁이 붙었어요. 그때 그분들이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가 그겁니다. 너는 80년대에 미국 유학 갔던 새끼가 뭐 할 말 있느냐? 논쟁은 그걸로 끝나요. (웃음) 게임 끝입니다.

사실은 저도 어려운 시절에 유학 간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하죠. 하지만 논쟁에서 그걸 가지고 따지면 안 되잖아요. 설사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조금 세련되고 교양 있게 표현하거나 위장을 해야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정서는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자신감, 자부심,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성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하면 상황이 달라진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럼 우리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야죠. 그걸 못 해요. 근데, 보수는 이런 점에서 훨씬 유연해요.

이철희 - 20대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열심히 투쟁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보상해야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이 그걸로 인해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것도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도덕적 우월감이면 지금의 청년세대에 의해 천덕꾸러기나 꼰대로 취급받는 걸 쪽팔려 해야죠. 이 친구들에게 쪽팔리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해야 진정한 도덕적 우월의식이라 할 수 있잖아요. 과거의 경험이 특권은 아니잖아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 중에 이동학이라는 젊은 친구가 586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인영 의원에게 서울을 떠나 고향인 충주에서 도전하라고 했어요. 어려운 데 가서 붙으란 얘기죠. 저는 이인영 의원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근데요, 안 가겠다는 논리가 좀 구차해요. 이동학에게 쓴 답장을 보면 길기만 하고 요점이 없어요. 이러면 안 되죠.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당의 작풍을 바꾸는 흐름으로 발전시켰어야죠. 그래야 이인영답잖아요. 우상호 의원의 반론도 좀 엉성해요. 서울 지역구의 김영춘이 부산으로 옮겼더니 그 빈자리를 김한길이라는 기성 정치인이 차지하더라, 우리가 비운다고 해서 좋은 사람 온다는 보장이 없다, 이게 우상호 의원의 논리예요. 부산으로 간 김영춘, 대구로 간 김부겸의 결단을 따르면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빈자리를 새로운 신진들로 채우자고 해야 맞죠.

강준만 - 에릭 호퍼의 책이 '맹신자'들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 책을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깊어지더라고요. 그 책을 운동하는 분들이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물어요. 운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 이타심을 갖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자기를 바쳤던 분들이 상황이 달라지고 나서는 왜 자꾸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 주나? 인간의 한계예요. 그때의 그것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분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한계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이고, 세대교체가 필요한 것이지요. 시대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은 정말 드물지요. 그러면 위대한 겁니다. 쉽지 않죠.

이철희 - 그것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네요. 그러면 이렇게 묻죠. 지금의 꼰대가 되기 전에는 그럼 제 몫을 다 했나요? 집권했을 때 국가보안법의 개·폐도 못했고, 사학법도 못 바꿨고, 정치관계법은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악됐고, 비정규직의 확대도 못 막았잖아요.

강준만 - 이 소장은 전략공천을 지지하시는 거죠?

이철희 - 네, 저는 전략공천이라는 제도 자체를 지지합니다. 사실 정당의 공천은 그 방법을 막론하고 다 전략공천이 본질이죠.

강준만 - 전략공천이 계파 싸움의 온상인데….

이철희 - 계파끼리 나눠먹는 건 전략공천이 아니고 담합공천이죠.

전략공천은 기준 없이 적당히 안배하라는 게 아니고, 당의 정체성이나 대표성 그리고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책임 공천하라는 겁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전략공천이 되려면 강한 리더십이 존재해야 하고, 당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공천의 절차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어야죠. 공천은 당의 노선과 정체성 등에서 수용 가능한지 여부(acceptability)와 승리할 수 있는지 여부(electability)가 핵심이죠. 개인적으로 얼마나 유명한지, 매력적이냐는 부차적이라고 봅니다.

강준만 - 상향식 비례대표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철희 - 비례대표 후보들의 순번을 정할 때 개방형으로 하는 건 좋습니다.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필요하죠. 다만 어떤 인물들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울 것인지는 대표나 지도부가 정하지만, 그 순번을 정할 때는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그런 논의는 해야죠. 누군가 한 사람이 낙점하거나 계파별로 나눠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근데 이렇게 하는 것도 사실은 전략공천인거죠. 후보직 자체가 경선에 의해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좋은 공천을 하려면 좋은 대표를 뽑아야 하지만, 그것도 대표의 권한이 세져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상당한 권한과 시간(lead time)을 줘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한 다음에 냉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권한과 시간을 주지도 않았으면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만하라고 하니 누가 버틸 수 있겠어요. 아무도 못 버팁니다.

정치는 리얼리티(reality)로 이해해야 합니다. 전 세계 어느 정당도 공천 과정을 100 % 투명하게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소위 당내 민주화가 아무리 잘 된 정당이라도 해도 차마 밝히지 못하는 속 사정이 있는 거예요. 투명성이 민주성을 가능하면 보장하되, 그것 때문에 약한 정당이 되는 건 잘못입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학자들이 주장하는 거예요. 민주주의는 당 안(in parties)이 아니라 당 사이(between parties)에 있다는 명제가 대표적이죠. 민주정당이라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져야 하지만, 그 권리를 언제나 똑같이 누릴 수는 없어요. 그건 환상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매사를 국민이 결정하는 건 아닌 것과 같은 원리죠. 누구나 똑같은 권한을 언제 어디서나 누려야 한다는 건 수평주의라 할 수 있어요.

강준만 - 어쨌든 공천 제도가 중요한데, 이게 너무 자주 바뀌는 거 문제잖아요.

이철희 - 그럼요. 공천 제도는 어떤 게 좋다 나쁘다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선택이죠. 다만, 어떤 제도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때 그때 바꾸지 말고, 내가 4년 뒤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싶다면 지금의 룰(rule)에 따라 준비해도 손해가 가지 않게 해야죠.

지금은 선거 때만 되면 바뀌기 때문에 현행 룰을 아무도 안 쳐다봅니다. 그러다 보니 바닥에서 준비하기보다는 룰과 상관없이 공천권을 쥔 사람에게 줄 대는 게 현명한 선택이죠. 천박한 계파주의가 득세하게 되는 거죠. 그나저나 싸가지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싸가지를 가지는 게 최후의 집권전략이라고 하셨으니까, 어떻게 하면 싸가지를 가질 수 있나요?

강준만 - 오픈 프라이머리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강경파들이 선호하는 인물이 된다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저는 대한민국 정치의 참여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꾸 정치권만 쳐다보고, 거길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데요. 그게 저는 반쪽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유권자들 쪽도 봐야죠.

정치권의 어떤 제도나 뭘 바꾼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절대 될 수가 없어요. 따라서 유권자 쪽의 기존 문화를 그대로 두고 가면 사상누각이에요. 오래 세월 형성된 것이라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런 시도를 얼마나 해봤는지를 따져야죠. 지금 정치하는 분들이 정치 안 할 때는 다들 멋있는 말을 돌아가면서 했어요. 그런데 정치권에 들어가면 실천을 안 해요. 그러니 지금 대한민국의 어디든 정당 근처에 가거나 당원이 되면 어떻게 봅니까? 어떤 사람들로 보냐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치는 ‘메르스’(Mers)에요. 사실 정당은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게 우리 정치 문화고, 참여 문화예요.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왼쪽)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온테이블
 

이철희 - 정치하기 전과 후가 너무 달라지니 사람들이 정치 불신을 넘어 정치혐오를 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어느 정도 달라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너무 쉽게 구태와 악습에 물들어 버리죠.

강준만 -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정치화(over-politicizing) 되고 열성적인 젊은 익명의 네티즌들만 죽어라 싸가지 없음 경쟁을 하고 있어요. 보통의 다수는 정치를 외면하고, 싸가지 없는 극소수만 참여하는 정치문화인 거죠.

아니 미국에서 왜 부동산 재벌에 막말하는 트럼프가 인기를 얻어요? 행동하는 특정그룹에 먹히는 겁니다. 우리의 싸가지라는 것도 이런 참여 구조의 문화적 반영이잖아요. 당장 내가 싸가지 없는 말을 했더니 열화와 같은 환호를 보내고, 잘한다고 박수를 쳐요. 당장 와 닿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잖아요. 돈을 내줘도 이 사람들이 내줍니다. 수많은 일반 유권자들은 나중에 볼 사람들이니까요. 이 문화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그러니까 싸가지 없음을 생산하는 참여 구조와 문화가 있는데, 비록 오래 걸리겠지만 좀 더 평균적이고 보통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시도 없이 어떻게 극복하고 가느냐 하는 게 제 문제의식입니다.

이철희 -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그나저나 저희 같은 사람들이야 날카롭게 지적해주시면 도움을 많이 받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드시지 않으세요?

강준만 - 어떤 게 힘들어요?

이철희 - 평생을 송곳처럼 지적하고 아프도록 꼬집어 주면서 살아오셨잖아요. 그런 삶이 힘들지 않은가 해서요.

강준만 - 허, 반대로 말씀하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해주니 진짜 고맙네요. 네가 주둥아리로만 떠드는 거라고 씹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웃음)

이철희 - 절대로 아닙니다. 전 싸가지 있거든요.

강준만 - 그렇게 봐주니 감격스럽네요. 제가 가진 낭만이랄까 이상적인 꿈이 있는데 별거 아닙니다. 정치인이 존경받는 사회예요.

이철희 - 꿈이 너무 크시군요? (웃음)

강준만 - 어쩌다 힘들게 다니는 국회의원을 보게 되면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리고 싶고, 정말 고생 많다고 격려해주고 싶은 정치의 시대, 정말 힘들까요?

이철희 - 저도 그 꿈이 있습니다. 정치가 좋아져야 보통 사람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강준만 - 그럼, 그렇게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철희 - 그렇게 가야죠. 장시간 동안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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