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New Right)가 내건 기치는 ‘새로운 보수’였다. 독재 개발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로 무장한 올드 라이트(Old Right․구보수)와 달리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뉴라이트는 200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MB정부의 우군을 자처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념 운동을 넘어서 한나라당과 정부를 통해 현실 정치에 진입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뉴라이트도 동반 몰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뉴라이트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교육, 방송, 문화 분야에서 뉴라이트 완장은 권력 요직으로 가는 ‘하이패스’로 인식되고 있다. 

반공주의 선 긋고 ‘자유’ 주창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다. 16년 만에 탄생한 여대야소 국회였다. 더 이상 집권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보수 세력의 변화를 요구했다.

뉴라이트 운동의 한 축인 자유주의연대는 그해 11월 탄생했다. 2005년 1월에는 교과서포럼이 문을 열었고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같은 해 11월 창설됐다. 이듬해 4월에는 뉴라이트재단이, 9월에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출범했다. 특히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년 만에 회원수가 17만 명으로 늘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 2006년 11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 1주년 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 박근혜 대통령, 신국환 전 국회의원, 강재섭 새누리당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중앙일보가 2005년 동아시아연구원과 공동으로 ‘영향력 있는 조직’을 꼽은 결과 뉴라이트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19위였다. 신뢰도에서도 12위로 기존 제도권 정당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MB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에는 영향력 23위, 신뢰도 23위로 곤두박질쳤다.)

뉴라이트는 기존 보수를 ‘구(舊) 세력’으로 규정했다. 당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기존 우파가 과거회귀적인 데 비해 우리는 미래지향적”, “올드라이트가 개발독재를 실시했다면, 뉴라이트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우익은 냉전적 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통해서 보수의 철학을 확립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변화의 유인이 없었다. 전향한 386 우파 세력과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중심이었던 새 보수 세력은 자유주의를 핵심 가치로 표방하며 기존 우익과 선을 그었다. 동아일보는 2004년 이들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집단”, “합리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범보수‧중도그룹”으로 추켜세웠다. 

뉴라이트 인사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는 “1997년 이전의 보수는 대북 관계, 체제 질서 등 안보에 중심을 뒀다”며 “2000년대 중반의 뉴라이트는 자유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한 운동이었다. 기업과 시장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을 좇다 몰락한 ‘하이에나’

이명박 정부 하에서 뉴라이트는 정치권에 대거 입성한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박영모 전국연합 조직국장, 한오섭 전국연합 기획실장은 각각 인권대사,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청와대 언론1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됐다. 

김성회 뉴라이트경기안보연합 대표, 장제원 뉴라이트부산연합 대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등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보수의 혁신을 말하던 이들이 정권에 직접 개입‧참여하자 운동의 동력은 떨어졌다.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들은 쇠락해갔다. 자유주의연대는 2008년 4월 뉴라이트재단과 통합을 결의하고 10월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을 주축으로 했던 뉴라이트네트워크는 2008년 말 유명무실해졌다. 뉴라이트전국연합도 대선 이후 회원 수가 급감했다. ‘MB의 절친’으로 알려진 김진홍 목사를 포함한 핵심세력들은 이탈했다. 

   
▲ 지난 2006년 5월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회원들과 함께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대 총선에서는 신지호, 조전혁 등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창당한 ‘국민생각’도 총선에서 실패했다. 정형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전 한나라당 의원)은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5,000만원을 받아 벌금 800만원과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도덕성에도 흠집이 난 것이다.

칼럼니스트 한윤형은 자신의 책 ‘뉴라이트 사용후기’에서 “뉴라이트는 정권 비판 인사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했고, 보수 정권의 탄생으로 더 이상 이념이 필요 없어져 우익의 통합적 정체성을 채우려는 의도가 좌절됐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장은 “뉴라이트는 정체성으로 유지됐던 것이 아니라 이권으로 뭉쳤다. 이념 운동이라면 이념의 전파자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지적인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데, 민주정권의 반동으로 일어선 그들의 철학과 지식은 빈곤했다”며 “이권이라는 깃발에 하이에나들이 모였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뉴라이트 스스로도 실패를 인정했다. 뉴라이트 성향 계간지 <시대정신>의 홍진표 편집인은 2009년 “촛불정국이 뉴라이트 추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며 “MB정권의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그 지원세력으로 간주된 뉴라이트 또한 동반 추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유주의연대의 핵심 인사였던 신지호 전 의원은 뉴라이트 운동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수차례 “지금은 말하기가 어렵다”며 언급을 꺼려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뉴라이트로 분류하곤 하는데 이는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선을 그은 뒤 “뉴라이트가 노무현 정부 시기 종북 좌파 등 올드 레프트를 견제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 인사들이 MB정부에 들어가면서 운동성이 약화됐다. 보수의 자기 혁신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수논객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뉴라이트는 지금 시점에서 의미가 없다”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일정 지분이 있었으나 현재 관련 운동은 다 사라졌고, 이미 제사까지 다 치렀다”고 말했다. 언론이 규정하는 뉴라이트 인사 대부분은 조직적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전략통으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와는 전혀 다르다. 평가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 (왼쪽부터) 이인호 KBS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 연합뉴스
 

박근혜가 벌인 역사 전쟁의 ‘전위대’

뉴라이트는 대학, 언론, 출판, 문화 등 문화 권력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빼앗아오려 했다. 보수의 재건은 학계와 출판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현대사 재해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받았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교학서 교과서’는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 보수(올드 라이트)로 분류되는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은 근대화‧산업화 업적을 강조하는 이들의 사관(史觀)을 수용하고 사회 전 방위로 확산시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 때 ‘건국 67주년’ 등을 언급하고, 김 대표가 ‘이승만 국부론’을 띄우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실제 교육, 방송, 문화 분야는 뉴라이트 인사나 이들의 역사관과 유사한 인식을 지닌 이들이 포진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9월 유영익 전 한동대 석좌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앉혔다. 올 초 국사편찬위원장을 사임한 유 교수는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한국현대사학회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박상증 목사와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해 각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사에 임명됐는데, 이들 역시 뉴라이트로 분류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경우 올해 초 인사청문회에서 뉴라이트 활동 의혹이 일었다. 그는 “합리적 보수를 표방한 학자모임을 만들자는 취지에 따라 뉴라이트싱크넷 참여의사를 밝혔었는데 실질적으로 뉴라이트와 구분이 잘 안 가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방송계에서는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 등이 뉴라이트 인사로 꼽힌다. 박 위원장은 교과서포럼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5‧16을 ‘혁명’으로 미화했고, 2008년에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필자로 참여했다. 박 위원장은 뉴라이트를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이 있어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감수를 맡았다. KBS가 지난 6월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발발 직후 일본망명을 추진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자 그는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보도에 적극 개입했다. 

강규형 KBS 이사도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 운영위원 출신이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한 한국현대사학회의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받았던 교학사 교과서를 “가장 안전한 교과서”라고 평했다. 

차기환 KBS이사는 2004년 설립된 뉴라이트 계열 단체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내며 보수 진영을 결속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바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수구 세력에 남은 것은 반공주의 이외엔 없었는데 뉴라이트는 단순한 권력뿐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을 그들에게 만들어줬다”며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영원한 승리이자 완성이라고 보고 대한민국을 성공한 국가로 평가한다.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극복하는 세계관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실장은 “뉴라이트에는 ‘뉴’도, ‘라이트’도 없다”라며 “일제 식민지 사관을 바탕으로 이승만을 국부로 내세우고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근대 혁명가로 내세움으로써 역사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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