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정 역사교과서가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7일 오전 흥사단 강당에서 이번 2학기부터 사용되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역사)교과서 분석결과를 발표해 국정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교육부는 해당 교과서를 미리 공개하지 않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교과서를 공개했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해당 교과서 180여쪽을 분석해 부정확한 서술, 인식상 오류 등 총 72곳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당 교과서에는 부정확한 사실이 다수 발견됐다. 교과서 133~134쪽에는 ‘한양 둘러보기’라는 제목의 지도가 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조선 초기 궁궐들이 그려져 있는데 창경궁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국정교과서 133~134쪽. 그림에 창경궁이 빠져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해당 쪽에는 보신각에 대해 “조선 시대에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종”이라고 설명이 돼 있다. 이에 이 교수는 “보신각이 종인 것 같이 설명돼 있는데 보신각은 그 종을 보관하는 건물의 이름”이라며 “설명이 좀 더 정확하게 서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 인식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본문 18~29쪽에는 고조선 단원에 이어 삼국과 가야가 등장한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기원이 되고 5세기 후반까지 있었던 부여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학생들이 고조선에 이어 바로 삼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역사 흐름을 이해하게 될 우려가 있는 부분이다.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152쪽에는 사진자료가 하나 등장하고 설명에 “노비문서,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돼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 됐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노비를 면해주는 내용을 담은 속량 문서다. 한자로 된 실제 문서는 “이정명이 70냥을 받고 정만금의 3녀 옥련을 속량”한 내용이다.  

해당 사진은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교과서에도 “돈을 받고 노비를 양인으로 풀어 준 문서”라는 캡션이 달려있다. 이익주 교수는 “노비 관련 문서는 맞지만 이 자체가 노비문서는 아니”라며 “서술과 함께 보면 학생들은 노비문서로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당 교과서는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재인데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115쪽에는 옷 사진과 함께 ‘요선철릭’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해당 사진에는 “고려시대 사람들이 만들어 입었던 겉옷으로 허리에 주름이 있다”는 캡션이 달려있었다. 이 교수는 “비전공자가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 교재를 통해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가르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악순환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맥락이 생략돼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부분도 발견됐다. 교과서 34쪽에는 고구려의 건국 설화인 주몽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른 왕자들이 주몽을 미워해 죽이려고 하자,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졸본에 고구려를 세웠다”고 돼 있다.

   
▲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국정교과서 34쪽. 주몽이 부여 금와왕의 왕자들에게 시샘을 받았다는 내용이 생략돼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에 대해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학생들은 이 부분을 읽고 고구려의 왕자들이 주몽을 미워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예전 교과서에는 주몽이 부여 금와왕의 왕자들과 함께 자랐고 그들이 주몽을 시샘해 줄이려고 하자 남쪽으로 가 고구려를 세웠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사진을 첨부한 경우도 있었다. 85쪽에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배경식 부소장은 “이 그림은 왕건일 수 없는데 이 복장은 신하들이 입는 복장에 가깝고, 사실 이 사진은 처음 본 사진”이라며 “이 책에는 출처도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이라고 말했다. 

   
▲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국정교과서 52쪽. 태조왕건인지 확실하지 않은 사진이 삽입돼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그 외에 역사상 오해를 불러오는 비문도 있었다. 50쪽에 “중국에서 받아들인 불교를 통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학문과 음악, 공예와 건축, 미술과 같은 문화도 함께 전해졌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불교를 통해’가 아니라 ‘불교와 함께’가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는 게 역사교육연대회의의 주장이다. 

이전 교과서를 베낀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배경식 부소장은 “국정교과서이기 때문에 표절 시비가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서는 안 된다”며 “이전 판 교과서에서 그대로 따온 곳이 꽤 많이 발견됐는데 양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몇 개의 문장이 거의 같아 베꼈다는 의혹을 받는 부분은 총 38곳이다. 

이미 지난해 사회과 6-1(6학년1학기) 실험본 교과서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된 바 있다. 해당 교과서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했다’거나 ‘일제가 의병을 소탕했다’는 식으로 일제의 시각에서 서술된 표현이 있어 문제가 됐다. 그럼에도 이번 5-2 교과서에 다수의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이번 초등학교 5-2 국정 역사교과서는 교육부가 2012년 교과서 발행 작업에 착수해 다수의 손을 거쳤다. 연구진에는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 등 8명, 집필진에는 한춘희 부산교대 교수(집필팀장) 등 10명, 심의진에는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 등 21명이 참여했다. 편찬기획에는 교육부에서 4명이 참여했고, 국립국어원과 국사편찬위원회 감수도 거쳤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학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이 만들었는데도 이렇게 엉터리로 만들었다”며 “결국 만드는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잘못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인정 교과서보다 국정교과서가 더 엉망인 상황인데 이 피해는 모두 이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우리도 2주 만에 급하게 검토했는데도 문제점이 이렇게 많이 발견됐는데 앞으로 더 오류가 나올 수도 있다”며 “민간에서 출판된 책이라면 새로 찍어야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에서 혼란스러워 할 상황이기 때문에 교육부는 빠른 시간에 수정사항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방지원 신라대 교수는 “부실한 국정교과서 문제는 이번만 지적된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병폐”라며 “허망한 결과를 가져온 국정화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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