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활동가들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의 사회활동은 지속가능한가. 

5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활동가 네트워크 파티인 ‘인디안 썸머 : 겨울을 앞두고 봄을 준비하다’에서는 사회 활동가들이 모여 활동의 ‘내일’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스스로의 활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라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좀 더 혹독하게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차원에서다. 

이날 첫 번째 주제 토론에서 활동가들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봤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하여’라는 주제 토론회에서 활동가들의 삶 자체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열악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활동가들이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했다. 실제로 인권재단에서 76명의 인권 활동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급여는 107만 원에 그쳤다. 한 달에 100만원 이하의 활동비만 받고 생활하는 이들도 9명이나 됐다. 

젊은 활동가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특히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 문제까지 감당하면서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결국 세대를 뛰어넘은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활동가들 스스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동행'을 대안 모델로 언급했다. 

동행은 2010년 녹색교통의 한 활동가가 저녁 야근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시민사회 공익활동가들이 겪는 생활 전반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한 협동조합이다. 이들은 △조합원 대상 소액 대출이나 상호부조 사업 △공익활동가 재활 지원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자녀 학자금 지원 △건강검진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 5일 오후 서울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2015 활동가 네트워크 파티 인디언 썸머’ 토론에서 사회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사회활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다른 조건으로 교육을 꼽았다. 재교육을 통해 활동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염 사무총자은 “현재 사단법인 시민을 통해 활동가 교육 지원을 주로 하고 있다. 활동가들의 영역과 특성이 다양해서 활동가들의 참여가 부족하다. 여기서 더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기관에 대해 관심 갖고 힘을 모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종합토론 두 번째 주제는 ‘무지개 콜라보레이션’으로, 사회운동 간의 연결과 시너지 효과를 제안했다. 사회운동의 연결 사례로 희망연대노조가 소개됐다. 희망연대노조는 사회운동과 지역기반 운동이 만나는 ‘생활연대’를 지향한다. 희망연대노조 C&M지부는 단체협약을 통하여 사회공헌사업기금의 일부를 노동조합의 사회연대기금으로 조성했다. 이 기금으로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집수리를 하거나 아동·청소년의 교육을 도왔다.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조사무실을 카페처럼 바꾸기도 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사회운동의 과정에서 중요한 건 조합원이 우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사회공헌기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활동가들 간의) 관계망이 서로를 돕고 돕는 선순환 구조로 거듭나는 좋은 사례다”고 말했다. 
 
이어 박진 활동가는 “사회운동 하위의제들이 만나서 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장애인 문제와 주거권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모여서 ‘장애인의 주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와 같은 협업을 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역에도 많은 사례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례를 취합 해봐도 좋겠다”며 후속모임을 제안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해 좀 더 색다른 방법은 없을까. 세 번째 주제 토론에서는 ‘현실의 재해석, 운동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2세대 사회운동의 방법론을 모색했다.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민주주의 광장 밖의 시민에도 관심을 가질 때”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중심의 노동운동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다층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운동 세력들이 관성적으로 반복해온 피켓팅과 집회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우리는 피켓 하나를 만들어도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몇 시간씩 고민하며 만든다”며 “같은 구호를 반복하는 데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실천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식 변호사역시 “과거의 계급동맹식의 사회운동에서 벗어나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치와 권리 중심으로 사회운동 재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종합토론에서 발언 중인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사진=손가영 기자.

이날 종합토론에서는 사회운동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있었다. ‘은폐된 갈등, 삭제된 갈등’ 이라는 주제 토론에서는 활동가들이 정작 사회운동 진영 내부 차별이나 불평등 문제는 묵인하거나 방관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조끼논쟁’을 통해 이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이른바 ‘조끼 논쟁’은 사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집회를 참여할 때 조끼를 입고 깃발을 드는 ‘전통적 활동가’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에서 촉발됐다. 전체 주제발표 전 소모임 토론과정에서 한 발표자가 ‘집회 참가자들의 복장이 각자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여성들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거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나오는 식’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일부 토론 참석자들은 여성의 정체성을 치마와 하이힐로 규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각자의 정체성을 살린 복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논란을 일축했지만, 이 또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활동가들의 묵인을 강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한 참석자는 “이번 주제 토론을 통해 ‘마인드 프리즘 사태’와 같은 사회운동 내의 갈등에 대해 논의했어야 했지만 정작 다른 논쟁거리 때문에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마인드 프리즘 사태는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가 설립한 심리치유기업 ‘마인드 프리즘’이 노동자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설립취지와는 달리 정작 기업 내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해고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일을 말한다. (관련기사: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왜 마인드프리즘을 버렸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034) 

계절이 바뀌고 또 다시 여름이 다가오면 우리는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방법역시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을 표했다. 이날 이어진 여러 주제 토론으로 머리를 맞대고 나눈 고민도 실천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진짜 인디언 썸머로 끝나지 말았으면 한다. 소박한 수준에서라도 어떤 것이 옳은지에 대한 모델을 기획해야 한다. 또 만나서 똑같이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서의 도돌이표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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