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간의 정상회담, 그리고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여를 두고 “한‧중 밀월시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등의 표현을 써가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질서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의미할 수도 있다.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오른쪽 두 번째 자리에 앉아서 열병식을 참관했다.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6자 회담이 조속한 재개, 한국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 등에 의견을 모았다.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 주석 옆자리에서 열병식을 함께 바라봤다는 점, 나아가 북한을 대표해 참석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오른쪽 끝자리로 밀려났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 전승 70주년 기념대회 참석에 앞서 시진핑 주석,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기념촬영 중인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동아일보는 “60여년 전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마오쩌둥 주석과 성루에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며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으며 현재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도 “박 대통령이 텐안문 성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한 것은 한‧중 관계의 질적 도약과 변화된 북‧중 관계, 나아가 동북아의 역동적인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언론들은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손님 가운데 한 분이다. 박 대통령을 잘 모셔라”는 지시를 실무진에게 수차례 하달했다는 청와대의 말을 빌려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극진한 대우를 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중국 측은 박 대통령을 시 주석 부부 바로 옆 자리에 배치하고 박 대통령을 위한 전용 대기실도 마련했다”며 “전날 박 대통령이 시 주석, 리커창 총리와 연쇄 회담을 하고 시 주석과 별도의 단독 특별오찬을 가진 것도 각별한 예우 차원이라는 게 청와대 설명”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이 강조하는 ‘동북아 新질서’란 동북아의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가 깨진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에는 중국이 한국을 극진하게 대접했다는 사실만 있고, ‘왜’에 대한 해석은 별로 없다. 중국이 박근혜 대통령을 극진 대우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일 <CBS 시사자키>와 인터뷰에서 “열병식을 할 때 제일 좋은 자리에 세운다는 것, 더구나 단독오찬을 했다는 것. 그거 공짜 아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원하는 것이 ‘사드’라고 관측했다. 그는 “사드배치 이거 하지 말아 달라. 작년 6월에 시진핑 주석이 와서 직접 얘기를 했고, 그 이후에 주한 중국대사가 얘기를 했고. 금년 4월에 중국 국방부장이 와서도 얘기를 했다”며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논의가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전에 뭔가 쐐기를 박아놓으려고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을 융숭하게 대접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보수언론의 불편함은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은 중국이 박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4면 기사에서 “방중 성과를 바탕으로 미‧일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에 대해 제기된 일각의 우려를 씻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고 밝혔다.

   
▲ 동아일보 1면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국가의 제재를 받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력시위를 지켜보는 장면을 미국이 곱게 바라보기는 어렵다”며 “박 대통령이 당장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 외교와 안보의 초석은 한미 동맹이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더 나아갔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우리가 6.25전쟁에서 끝내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은 중공군의 참전 때문”이라며 “박 대통령의 전승 행사 참석이 한미 동맹을 비롯한 이 나라 외교의 곳곳에 적잖은 그늘과 부담을 안겼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즉 보수언론의 불편함은 박 대통령이 중국의 극진한 대우에 취해 한미동맹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초조함에 가깝다. 

보수언론은 또한 중국이 그간 북핵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입장에 비해 이번 회담에서 진전된 점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보수언론에게 중국이 중요한 이유는 ‘북핵’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에게 요구했을 지도 모르는, 한미동맹을 해칠 수 있는 사드 배치 거부 등에 휘말리지 말고 중국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박 대통령은 앞으로 삼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우선 경제적 필요성과 북핵문제 해결 때문에 중국을 만나야 하지만 국내 보수세력들은 북핵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며 한미동맹에 어긋나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고 압박할 것이다. 또 미국과의 관계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전승절 참석으로 아슬아슬한 균형추 위에 서게 됐다. 우려되는 점은 중국 열병식에도 참석해줬으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떡고물을 하나 줘야겠다는 식의 ‘균형’이다. 중국이 반발하는 떡고물일 경우 그간의 밀월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진짜 균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때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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