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승합차에 싣고 간 것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119가 왔다가 되돌아간 사실까지 알고 나서는 어이가 없었어요.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봐 고의로 죽인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이놈들이 죽였구나.” 얼마 전 산재로 처남을 잃은 민경욱씨의 말이다. 처남 이아무개(34)씨는 지난 7월 29일 작업 중 지게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회사는 현장으로 출동한 119를 돌려보내고 이씨를 회사 승합차에 태웠다. 이씨는 회사 ‘지정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아 다시 근처 종합병원으로 가야했다. 사고 발생 90분이 지나서야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그는 결국 숨졌다. 복합 골절과 장 파열 등에 따른 복부 내 과다출혈이었다. 유족은 회사 대표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청주지검에 고발했다.

산재를 숨기기 위해 119를 부르지 않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강문대 변호사 등은 지난 1일 해당 업체와 대표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며 “우리 사회에서 산재 문제는 매우 심각한데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바로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실제 사고 직후 응급처치를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종종 목숨을 잃는다.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지난 해 12월 산재사망규탄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사내하청지회 홈페이지
 

바다에 빠져도 119 신고 않고 사내잠수부만 기다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건강연대 등에 의해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현대중공업에서도 119에 신고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진 경우가 있었다. 지난 2012년 9월 숨진 황아무개씨(48)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다 탈의실에서 쓰러졌다. 동료들이 이를 업체에 알렸지만 황씨가 119 응급차가 아닌 회사의 1톤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사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이었다. 신속한 응급조치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3월 25일 오전 9시 20분께 작업대 위에서 발판 해체 작업을 하고 있던 하청노동자 3명이 바다에 빠졌다. 최아무개(34)씨와 전아무개(47)씨는 동료들에 의해 곧바로 구조됐지만 김아무개(50)씨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회사는 사내 잠수부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1시간 가량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숨진 채로 바다에서 나왔다.  

지난 해 12월 제2롯데월드에서는 추락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제2롯데월드 콘서트홀 8층에서 김아무개(63)씨가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 경찰은 그가 비계에 오르다 떨어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건물이다. 하지만 롯데 측은 119가 아닌 지정병원에 먼저 연락했다. 지정병원은 119보다 사고현장에서 약 1km가량 멀리 떨어져있었다. 

올해 2월 10일에는 부산시 해운대구 신세계 센텀시티 증축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조아무개씨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건물 외벽에서 작업을 하던 조씨는 바람이 불면서 떨어졌다. 하지만 업체는 119가 아닌 지정병원에 신고했다. 사고현장에서 지정병원까지 거리는 2.5km, 사고현장과 119까지 거리는 400m였다. 비슷한 시간 119에도 신고가 접수됐는데, 조씨가 방치된 것을 본 행인이 신고한 것이었다.  

 

   
▲ 건설사와 노동자 사이의 합의서. 사진=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사용자의 거짓말, 산재은폐 ‘매뉴얼’ 존재

산재 은폐가 들통날 때마다 사업자들은 “지정병원은 그동안 함께 재난 훈련을 실시하는 등 현장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합하다고 판단내린 것으로 보인다”(롯데건설), “지정병원인지 119라든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어디 누구서든지 와가지도 빨리 이분을 데려가는 게 중요한거지. 119가 뭐가 중요합니까?” (신세계 센텀시티 공사 현장 안전팀장. YTN인터뷰) 등의 해명을 했다.

하지만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2013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산재은폐는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삼성물산의 2010년 ‘재해근로자 공상처리 절차’ 내부문건에는 “경상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2일 이상 병원처리 안된다” “안전팀에 통보하지 않고 개인이 병원진료를 받을 경우에는 공상처리를 해주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 있다. 공상처리는 산재보험 대신 회사가 치료비 등을 임의적으로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2012년 창원 힐스테이트공사에서 현대건설이 하청업체들에게 산재 노동자들을 공상처리할 것을 지시한 문건도 발견됐다. 하청업체 중 한 곳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와 “(치료비 등을) 수령하고 근로복지공단 재해 신청 및 민형사상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에는 “산재처리가 될 경우에 본합의서는 무효가 되며 (노동자는) 합의금 200%을 위약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실제 민주노총이 조사한 산재보험 처리 결과를 보면 다친 노동자 중 산재 처리를 받는 이는 평균 20%를 넘지 않는다. 지난 2012년 울산지역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 1350명 중 산재로 처리 받았다고 응답한 이는 16%수준이었고, 올해 공단지역(구로, 경남 녹산, 울산 매곡, 대구 성서) 중소사업장 노동자 751명 중 산재 처리를 받았다고 응답한 이는 19.1% 수준이었다. 심지어 지난 해 학교급식 조리사 200명 중에 산재로 처리받은 이는 2.1%라는 통계도 있다. 

 

   
▲ 제2롯데월드 노동자 추락사고 현장.사진=민중의소리
 

대기업의 산재보험료 감면액 6114억 

노동자는 업무 중 사고를 당하면 산재와 공상 처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산재 비중이 낮은걸까. 산재로 처리될 경우 기업은 작업 환경 개선 등의 요구를 받을 수 있으며 산재보험료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산재율이 낮아야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실제 이로 인해 기업들이 받는 혜택은 적지 않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상시인원 1000명 이상, 건설업은 공사수주 금액 2000억원)이 지난 2013년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6114억원에 이른다. 

그리고 산재로 처리하지 않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는 것이다. 신고할 경우 사고 기록이 남아 이후 노동부 감독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업자들이 다친 노동자를 트럭이나 승합차에 싣고 지정병원으로 향하는 이유다. 병원 입장에서도 이는 나쁘지 않은 장사다. 꾸준히 환자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병원은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진료기록을 만들어준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작업복을 입고 있어도 집에서 다쳤다고 진료기록을 써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119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관련 법안도 발의된 상황이다. 한정애 의원은 올해 초 사업장에서 구조를 요하는 위급 상황이나 응급환자 발생 시 사업주가 119에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사고발생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를 대피시키는 등의 의무는 있지만 신고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청주에서 사망한 이씨의 매형은 “예전에도 처남이 다쳤을 때 119가 아닌 승합차를 타고 지정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119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죽고 나니까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관련 법안이 통과됐으면 좋겠고 최소한 처남이 일하던 사업장에서라도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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