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와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만명 수준이다. 노동계는 850만명에서 900만명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취업자 수는 2500만명에 이르며 이 중 임금노동자는 1900만명 수준이다.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의 지난 달 30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305만원이었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128만원이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문하는 이유다. 하지만 노동계는 ‘구조개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지난 31일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노동시장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연 특별토론회에서 보수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전문가들이 거세게 충돌했다. 이들은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임금피크제, 저성과자 일반해고 도입 등과 관련해서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 지난 31일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노동시장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연 특별토론회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참석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심화”

보수쪽 발표자인 이원덕 이수노동포럼 회장은 “한국은 양적·질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근무 3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2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절반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3년 이내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회장에 따르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는 70% 이상이 3년 이내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여기까지는 진보쪽도 이견이 없다. 

차이를 보이는 건 다음이다. 이 회장은 노동조합이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이 흔들리자 노조는 조합원의 임금과 고용안정에만 주력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은 확산되고 ‘생산성은 낮지만 임금은 높은 정규직’ 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업이 50대 전후 노동자들을 퇴출시키고 싶어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 회장은 “노동자도 기업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노동계가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의 제도화 등을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임금피크제는 임금의 양보냐 아니냐를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노동운동 대의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며 “더 중요한 것은 정년 연장이 60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중장년 이후 임금과 생산성 사이의 괴리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성과자 일반 해고에 대해서도 “일반 해고의 제도화가 무차별적인 해고를 낳는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며 “저성과자는 부여된 일이 잘 맞지 않거나 능력개발의 기회가 없었거나 등등 배치전환이나 훈련 등을 통해 해고하지 않고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즉 저성과자를 해고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더 적합한 직업을 찾도록 해준다는 관점으로의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 7월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물풍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규직 몫 뺏는 걸로 해결 안 된다”

진보쪽 발제자인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고용보호지수를 보면 한국은 정규직 과보호는커녕 해고가 유연한 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2013년 OECD 고용보호지수에서 한국은 22위를 차지했다. 최근 정부가 언급하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한국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다. 하르츠 개혁 이후에도 독일은 한국보다 고용안전성이 높다. 하르츠 개혁은 고용유연성을 핵심으로 한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이다. 

김 연구위원은 ‘고임금 정규직’ 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계속 증가했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미약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1996년부터 지난 2014년까지 노동자 수는 늘어났지만 전체 소득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분배율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점 역시 지적됐다. 김 연구위원은 “고임금 정규직이 아니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많이 뺏기고 그나마 대기업 정규직은 덜 뺏기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234조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기업의 실물투자는 오히려 20조원이 줄었다. 김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초과이윤이 재벌에게 집중돼 있으며 △재벌 기업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강제하지 않는 한 재벌은 투자를 확대하지 않을 것 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따라서 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이라면 다른 것을 개혁하기에 앞서 법만 제대로 지켜도 된다”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이 언급한 것은 최저임금, 파견법, 근로시간 등이다. 그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40만명이고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이 300만명, 최저임 미만 노동자가 226만명”이라고 말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재벌 대기업 주 52시간 근로시간 준수만으로도 2만개의 일자리 순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지난해 2월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비정규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간제 4년되면 기업이 투자한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보수와 진보의 의견은 갈렸다. 보수쪽 토론자로 참석한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 비정규직의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현재의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적자원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2년 동안 단순 업무에 투입했다가 버리는 인력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 교수는 “현실적으로 기간제 사용을 없앨 수 없다면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함으로써 기업과 노동자에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금 교수는 정규직 전환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기업은 4년 동안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를 가능한 계속 고용하려고 할 것 △노동자도 기업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도록 인적자원개발에 투자를 할 것 등을 들었다.

진보쪽 주장은 달랐다. 김유선 연구위원은 “기간제 연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100만 해고대란설을 퍼뜨리며 추진하다가 실패한 안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며 “4년을 사용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이직수당 10%만 지급하면 기간제 노동자를 8년 동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율은 지금보다 낮아진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게 무슨 개혁이냐.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은수미 의원은 재벌개혁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가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직접고용을 기피하는 대기업 관행을 개선하고 불공정거래 등을 규제하면 대기업이 없앤 양질의 일자리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은 의원은 “재벌 대기업 3% 고용할당제면 약 7만개의 일자리가 매년 증가하고 재벌의 법인세 원상회복과 분리과세만으로도 20만개의 일자리 창출 여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사진=노컷뉴스
 

팽팽한 의견차에도 “현 정부 방식은 잘못”

이날 토론회에서 보수와 진보쪽 참석자들이 공통되게 낸 목소리는 “지금 정부의 방식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이원덕 이수노동포럼 회장은 “지난해 말 본격 추진한 노사정 대화는 ‘왜 노동시장 개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의와 명분을 먼저 제공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보다는 쟁점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초반부터 대화를 지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회장은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분명한 목표와 실현 가능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양질의 일자리를 현재 300만개 수준에서 2030년까지 1000만개로 늘린다는 식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킬러주제’에 대해 노동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진보쪽 토론자로 참석한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현 정부의 일방적이며 조급한 개혁추진 방식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노동계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는 노사정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정부정책의 명분을 만들어주는 들러리 절차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안겨주었고, 이 때문에 노사정 합의의 성사에서도 그 실효성에 대한 적지 않은 문제제기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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