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이인호 이사장의 개인 일정을 공식 업무인 것처럼 꾸며 회사 돈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KBS는 이 이사장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제작비가 없어 무산되자 막대한 재원을 조달해 제작하고 정작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은 1일 발행한 노보에서 “한국전쟁유업재단의 초청을 받아 한국전쟁과 역사학 관련 강연을 한 해외출장이 조대현 사장을 대신한 공식적인 출장이라는 설명은 거짓말이었다”며 이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7월 23일부터 4박5일간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당초 KBS 이사회는 한국전쟁유업재단이 초청한 조대현 사장 대신 ‘영어 강연’이 가능한 이인호 이사장에게 양보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에 따라 이사회 사무국 직원 1명의 의전을 받아 행사에 참석해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을 위한 컨벤션 참석,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참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한 참전 용사 초청 만찬 등 일정을 수행했다. 

   
▲ KBS본부 노보.
 

 

하지만 이사회의 입장은 거짓이었다. 한종우 시라큐스대 교수는 “조대현 사장을 초청한 적이 없다”고 KBS본부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한종우 교수는 “조대현 사장을 잘 모르고 영어를 얼마나 하는지도 몰라서 초청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조대현 사장이 이런 데까지 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전혀 해 본적 없다”고 덧붙였다. 

한종우 교수는 행사를 기획하는 초기단계부터 초청자로 이인호 이사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KBS본부는 한종우 교수가 “이인호 이사장과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할 때도 잘 알고 있었다”, “행사 목적으로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인호 이사장이었다”고 말한 내용을 노보를 통해 밝혔다. 

외주제작사 PD 역시 이인호 이사장 참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초빙된 것”이라는 점을 증언했다. 이 PD는 KBS본부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역사학 교사들을 교육하는 내용이어서 KBS 이사장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 이인호 KBS 이사장의 미국출장(안). 출처=KBS본부 노보
 

 

KBS본부는 “결국 이인호 이사장의 해외 출장은 역사학자로서 친한 후배 교수의 초청을 받아 강연회에 참가한 명백한 ‘개인 일정’이었다”며 “‘대타 출장’설은 이런 속사정을 감추기 위한 사측과 이사회의 고육지책”이라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이어 “차기 사장 선출에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사장은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예산을 자기 돈 마냥 쓸 수 있는 것이냐”며 “조대현 사장은 이 사실을 알고도 ‘노모를 효도관광 보내 드린다’는 마음으로 ‘대타 출장’이라는 이사회의 거짓말에도 눈을 감아줬느냐”고 질타했다. 

이인호 ‘역사 강연 여행’에 KBS 예산 1100만원 지출 
개인 일정 성격이 강한 이번 이인호 이사장의 미국 출장에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KBS 공금 총 1170만원이 지출됐다. 이사회 사무국의 수행 직원을 동행했으며 항공기석은 비즈니석(497만원)이었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회의비로 3차례 150만원, 5일 식비로 100만원이 책정됐다. 

‘공식 업무 출장’으로 처리된 덕에 이인호 이사장은 1일 100달러로 책정된 500달러(당시 환율 58만원)의 일비도 지급 받았다. 

   
▲ KBS <다큐공감>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인호 KBS 이사장.
 

 

KBS본부는 “이사회 규정 제16조(경비 지급 및 예산 집행 등)에 보면 이사장 및 이사에게 필요한 경비 및 업무추진비를 지급하도록 했지만 이사회라고 해도 이사 개인 용무에 대해서는 한푼의 경비를 지급할 수 없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며 감사실의 감사를 촉구했다. 

협찬 없자 수신료 들여 ‘이인호 헌정 다큐’ 제작 
이인호 이사장의 이번 출장은 출장 당시에도 문제가 됐었다. KBS 보도본부 내에서 ‘충성경쟁’하듯 뉴스 프로그램에 이인호 이사장의 강연 장면이 방송돼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같은 이인호 이사장표 ‘방송 사유화’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KBS1TV <다큐공감>은 지난달 1일 방송한 <정전62년 특집, 6·25전쟁 끝나지 않은 역사>에서 이인호 이사장의 이 미국행 ‘출장’ 이유가 된 행사를 주요 주제로 다뤘다. 하지만 한 달 후인 1일 현재 KBS <다큐공감> 홈페이지에서는 이 프로그램 영상을 찾아볼 수 없다.  

   
▲ 왼쪽부터 KBS 이인호 이사장과 조대현 사장. 조대현 사장은 이인호 이사장의 개인 일정 성격이 강한 방미 일정을 KBS의 공식 업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눈감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다큐공감> 프로그램을 보면 5분07초에서 7분까지 약 2분가량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한다. 이인호 이사장은 자막을 통해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로 소개됐으며 영어로 강의하는 모습이 방송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정호준 의원실 관계자는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한 KBS가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서 임의로 삭제하는 것은 세금을 낭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유독 한 편만 삭제됐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은폐하려는 반증이기도 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KBS는 이 다큐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뉴욕발 뉴시스 기사에 따르면 KBS는 당초 이인호 이사장을 초청한 한국전쟁유업재단이 미국에서 추진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기록 작업 등을 다루는 <다큐공감>을 1~2편으로 나눠 6월27일과 8월1일 각각 방송할 예정이었다. 

   
▲지난 7월 27일 KBS <930> 뉴스에 출연한 이인호 이사장. 이인호 이사장의 미국 출장은 당시에도 방송 사유화 논란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다큐는 제작비 문제로 부침을 겪었다. 한종우 이사장은 “저도 시간을 많이 할애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방송돼야 한다고 생각해 강하게 밀어붙이고 싶었는데 협찬 문제가 걸렸다”고 KBS본부측에 밝혔다. 

KBS본부는 제작을 담당한 외주 PD가 “사실 KBS가 협찬을 받아오라고 요구했지만 협찬을 못 받았고 유업재단에서도 협찬이 안 돼 (프로그램 제작이) 완전히 취소됐었다”며 “협력제작국(외주제작 담당)도 포기했던 프로그램”이라고 털어놓은 사실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특집 다큐>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둔갑했다. 하지만 시간대는 목요일 밤 11시에서에서 프라임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7시 <다큐공감> 시간에 방영됐다. 

없던 제작비도 생겨났다. <다큐공감>의 경우 편당 제작비는 기본 3100만원 선이다. 방송 후 시청률에 따라 인센티브 형식으로 제공되는 금액은 최대 5000만원까지다. 하지만 이인호 이사장이 등장한 ‘특집’ 프로그램 제작비는 기본 제작비 두배를 넘는 6790만원이 지급됐다. 

   
▲ KBS 신관.
 

 

<다큐공감> 1~2편을 제작한 외주제작사는 동일한 곳이었고 시청률도 5%대로 비슷하게 기록했지만 ‘특집’ 프로그램에만 유독 두 배 이상 많은 제작비가 지출된 것이다. 

KBS본부는 “<특집 다큐>는 통산 협찬을 통해 제작되는 프로그램임에도 협력제작국은 별도 프로그램 기획안을 편제회의에 상정해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프로그램을 살려낸 편성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과 이인호 이사장의 프로그램 편성 개입 여부를 밝혀야 한다”며 편성 책임자의 법적 책임과 이인호 이사장의 방송법 위반 의혹을 강조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일 KBS 새 이사진에게 공식 임명장을 전수한다. 2일에는 새로 구성된 이사회 이사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여야 7대4 구도 속에서 현 최고령인 이인호 이사장의 유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KBS본부는 “KBS라는 공영방송의 공적인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공적 업무처럼 포장해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얼굴을 비추는 이인호 이사장의 행태는 새로운 이사회 수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며 “이인호 이사장은 이사장직을 고사하고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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