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선거구 획정 문제를 놓고 헤어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합의해놓고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고 줄이는 문제에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도 초과 의석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했던 국회의원 정수가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 일괄타결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29일 광복 70년 한중 일제침략만행 사진 광화문 특별전에서 "정개특위에서 가능한 한 합의될 수 있도록 협상을 더 해보고 그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결국 당 지도부들이 만나 일괄타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좋은 이야기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라면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은 접점이 없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은 자기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당 지도부의 전략 실패로 인한 책임 문제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지역구의 인구편차를 최대 3배까지 허용하고 있던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조정하라고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헌재의 결정은 유권자가 30만명과 10만명인 지역구에서 현재 유권자의 인구편차에 따른 투표 가치가 최대 3배까지 허용되고 있지만 편차가 크기 때문에 2대1까지 낮추라는 것이다. 

헌재의 안을 적용하면 수도권 지역의 의원은 늘어나고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의 의원의 의석수는 통폐합돼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현행 수도권 지역 의원은 121석인데 헌재의 안을 적용하면 157석으로 늘어나게 되고 증가분에 따라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 의 의석수는 줄어들게 된다. 

새누리당은 인구비례만을 반영한 표의 등가성을 따졌을 때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지역구 의원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와 농어촌의 개발은 격차는 크게 벌어진 상태인데 인구편차에 따른 표의 등가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농어촌 지역의 의석수를 통페합해 줄이는 것은 지방죽이기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도 국회의원 300명 정원 중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것을 반대하고 비례대표를 축소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농어촌 지역구 의원의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지방 죽이기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현법재판소의 제시안을 현실성 있게 반영해서 나온 것이 비례대표 확대 방안이다. 선관위는 지역구 의석수를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54석에서 100석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지역 대표성을 살리면서도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현행 300석의 의석수를 늘리는 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지역구 의석수 246석는 그대로 두고 54석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역구 의석수 절반인 123석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사표방지, 소수자 대표성 등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지역 대표성은 현행과 같이 유지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 여론의 저항이 거세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고정시키는데 합의하면서 결국 "지금 국민의 뜻은 의원정수가 증가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인데 그와 함께 비례대표를 줄여서도 안된다는 것"(문재인 대표)이라는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 버린 것이다. 

문 대표는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거꾸로 줄이는 것은 국민의 뜻과 배치되고 정치개혁이 가야할 방향에도 역행된다"고 했지만 사실상 문 대표의 말은 현행 유지가 최선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 정수(300명)가 고정된 상황에서 비례대표를 늘리면 지역구 의석수가 줄어들면서 당내 반발에 직면하게 되고 그렇다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면 헌재의 판단을 거스르며 선거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 대표가 딜레마를 풀겠다며 내놓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도 국회의원 정수를 고정해놓고는 고도의 방정식이 필요하다. 

문 대표는 31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역에서 줄어드는 지역구 의석을 권역별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중앙선관위 제안대로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배분 2대 1이 바람직하지만 의석 배분을 다르게 운용할 수도 있다. 우리 당은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면 의석 배분은 협상을 통해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 모두 줄이지 않을 수 있는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를 마치 '요술방망이' 처럼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의 반발이 거셀게 뻔하고 실제 제도 도입 후 의석수 조정 문제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마나한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 완화라는 취지에 따라 전국을 모두 6개 권역을 나눈 뒤 유권자 비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정하는 방안이다. 기존 전국 정당 득표를 합산해 전국구로 비례대표를 순번으로 매기는 방식이 아니라 권역별로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정하는 것이다. 

헌재의 제안대로라면 유권자 비율에 따라 서울 권역의 의석수는 61석으로 배정되고 지역구 의석과 비레대표 의석은 2대1로 조정돼 서울 지역구 의석수는 41석, 서울 비례대표 의석수는 20석이 된다. 

이 같은 방식은 지역별 유권자 비율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명분이 있지만 반대로 권역을 대표하는 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수가 굳어지면서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초과 의석수가 생길 수 있어 300명으로 고정된 국회의원 정수를 풀지 않고서는 도입도 어렵다. 

일례로 국회의원 300석 중 부산울산 권역을 50석으로 배정하고 이중 지역구 의석수를 30석으로하고 20석을 비례대표 의석수라고 했을 때 새누리당이 50%를 득표하면 25석을 얻어야 하지만 지역구에서 30석을 모두 가져가면 5석을 늘려야 한다. 

문재인 대표의 말처럼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배분 2대1이 바람직하지만 의석 배분을 다르게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지만 권역별로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수 배분을 달리할 것인지 아니면 일괄적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따라 지역 반발과 함께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새누리당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9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새누리당은 호남권에서 4석을 얻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대구경북 5석, 부산울산경남에서 14석을 얻는 결과로 나타났다. 

개혁진보진영내에서 추진했던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걸었다면 해볼만한 싸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가져가는 명쾌한 논리 때문에 국민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나라 제1당의 정당 득표율은 40% 내외인데 득표율대로 계산하면 제1당의 의석수는 120석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런데 약 20석이 많은 160석을 제1당이 가져가는 구조로 돼 있다.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제1당의 기득권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대한 저항이 상상 이상으로 거센 것도 기득권 타파에 확실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입까지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헌재의 판결이 나온 마당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개혁 의제를 선점하고 국민 여론을 설득시키려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선명야당 재건본부 대표 김병로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당 득표율만큼 국회의원 의석을 가져가자’ ‘정당 득표율=국회 의석’, ‘국회 의석은 정당 득표율만’이라고 단순하게 주장하라. 그래야 국민들이 ‘그러면 지금은 정당 득표율만큼 국회의원 의석수를 가져가는 거 아니었어?’하고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할 것이고 공감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쓸데없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니 석패율 제도니 x짖는 소리 꺼내서 국민을 질리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하기 빼기 겨우 하는 놈이 구구단을 할 생각을 해야지 인수분해하겠다고 덤비면 어떡하나"라고 꼬집었다.

황종섭 정치발전연구소 실행위원은 "300명 국회의원 정수를 풀면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살려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것도 합의가 가능한데 정수를 막아놓고 새정치가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황 실행위원은 "선관위에서 제안한대로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 비율을 2대1로 고정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역구를 채우고 추가 당선돼 초과 의석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문재인 대표가 300석 정원을 합의해놓고 권역별 비례 대표제를 제안한 것은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다른 비례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건데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 실행위원은 "권역별 비례대표를 한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타파되는 것도 아니다. 명분도 약하다"며 "국회의원 정수를 고정시키면서 사실상 스스로 발목을 잡았고 패착이 됐다. 전략 자체가 없다. 새정치가 향후 가장 잘 협상한 최종안은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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