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국제방송원(아리랑TV)이 부당 해고로 다툼중인 해고자에게 돌연 ‘출근명령서’를 발송했다. 해당자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피하기 위한 꼼수 출근장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캐나다 교포 출신 A씨는 지난 26일 아리랑TV에서 ‘출근명령서’를 받았다. 내용은 8월 31일부터 출근하라는 것과 지난해 12월 모집공고에 기재된 업무를 맡길 예정으로 “월 150만원 상당의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통보였다. (관련기사: “프리랜서지만 수습교육 받았다”, 아리랑TV 부당해고 논란)

급여액은 동일했지만 업무는 2014년 모집공고에 적시된 내용으로 한정됐고 없던 근무 예정 기간도 생겼다. 아리랑TV가 보낸 출근 통보를 보면 “출근일부터 2016년 3월 뉴스센터 봄 개편까지”를 근무 기간으로 제시했다. “업무 성과에 따라 연장 또는 추가 업무 부여가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현실화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정규직으로 채용됐다고 주장하는 A씨에게 6개월 시한의 비정규직 프리랜서 업무를 받아들이라는 통보장인 셈이다. 

A씨는 “처음 채용 합격 통보를 받을 때도 6개월 동안 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며 “무엇보다도 이번주 재심을 앞두고 부랴부랴 출근명령서를 보내는 것은 정말 진정성이 없는 행동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날 출근시간인 오후 3시, 아리랑TV가 정한 출근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A씨와 아리랑TV는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건으로 재심 판정 중이다. 다음달 2일 재심 판정이 나올 예정이다. 앞선 지방노동위원회는 아리랑TV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회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아리랑TV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시점은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A씨와 그를 대리한 노무사는 아리랑TV가 중노위에 제출한 증거에 대해 위증·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리랑TV가 낸 자료는 A씨를 비롯해 지난해 12월 채용공고에 따라 채용된 이들에 대한 평가표였다. 

   
아리랑국제방송(아리랑TV)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A씨에게 보낸 출근명령서(왼쪽)과 A씨 노무사에게 보낸 출근명령서 송부 통보.
 

또 사측이 지노위에서 “평가자 4명의 점수를 평균했다”고 증언했으나 중노위에 제출된 자료에는 평가자가 2명으로 줄었다. 사측의 말과 자료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조작이거나 위증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A씨는 “아리랑TV가 지노위 심판회의 때에는 ‘노트북 고장’으로 삭제돼 제출할 수 없다던 자료를 2개월 만에 제출한 것도 의문이지만 기사 작성을 하지 않았던 1월29일에도 기사를 써서 평가를 받은 것처럼 점수가 기록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평가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A씨는 “노무사가 평가서의 오류 내용을 정리해 아리랑TV에 서면으로 보냈더니 이틀 만에 ‘출근명령서’가 왔다”며 “출근 명령을 직원 아닌 사람에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출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굳혔다. 그는 “이런식으로 화해할 수는 없다”며 “급여도 같고 하는 일도 같은데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달았고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A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문영섭 노무사는 “아리랑TV가 A씨를 은근슬쩍 프리랜서로 회사에 들이는 대신 중노위 사건을 각하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보통 출근명령 통보를 하게 되면 노동위에선 원직복직 됐다고 보는 시각에 기대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영섭 노무사는 “기본적으로 아리랑TV에서 주장하는 ‘프리랜서’라면 출근명령을 이행할 의무가 없는데도 출근명령서를 보낸 것도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문영섭 노무사는 또 “A씨와 노무사에게 통보를 보낸 아리랑TV 사측 책임자도 뉴스센터장과 경영지원팀장으로 다르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리랑TV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A씨는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가서 한국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 아버지 말씀을 듣고 한국에 취업해 왔는데 반년 동안 남은 건 짧은 취업의 행복과 긴 해고였다”며 “지금도 너무 기가 막히고 막막하고 어쩔 줄 모르겠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은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 기준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직접 당해보니까 한국 노동자의 비참하고 참담한 노동 현실과 노동 인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 중에 “회사의 갑질이 너무 심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갑질’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처음 들었다”며 “꿈을 가지고 일을 하러 한국에 왔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지금은 혼자 이렇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중노위 판정은 9월 2일 나올 예정이다. 

이에 대해 아리랑TV는 “평가서 자료가 조작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1월5일부터 30일까지 평가는 채점자 4명이 했지만 2월12일에는 종합 채점자가 2명이었을 뿐이고 1월29일 평가는 착오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해당 자료는 지노위 심판회의 당시에도 5월20일 조사관에게 e-mail로 제출했지만 쟁점 사항이 아니라 다뤄지지 않았고 공식서류에도 첨부가 안 된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출근명령서 발송 이유에 대해서는 아리랑TV는 “지노위와 중노위를 거치면서 이어진 여러차례의 화해 시도 중 하나였다”며 “갑자기가 아니라 8월 중에도 한차례 제안된 화해 시도의 또 다른 버전일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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