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퇴진’ 12만의 함성, 일본이 살아나고 있다
‘아베 퇴진’ 12만의 함성, 일본이 살아나고 있다
[김종철 칼럼] 광우병 소고기 반대 집회 이후 맥이 끊긴 한국의 민중운동

월요일인 8월31일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 보도된 ‘장대한 평화시위 장면’은 졸린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바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8월 30일 오후 2시 일본 수도 도쿄의 지요다구에 있는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무려 12만여명의 군중이 모여 “아베 정권 즉시 퇴진”, “전쟁은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우렁차게 외친 것이다.

1968년 6월에 일어난 도쿄대 학생들의 ‘야스다 강당 점거 농성 투쟁’이 7개월이나 계속되다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끝장이 난 이래 일본에서는 10만명 이상이 참여한 시위나 농성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일본의 진보진영 또는 좌파는 극우보수파에 비하면 수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열세에 빠지게 되었고, ‘천황 숭배’를 광신적으로 외치면서 ‘재무장’을 요구하는 극우파는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누비면서 난폭한 시위와 선전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일본은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두서너 번째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라는 호칭을 들었지만 장기 불황을 견디지 못한 데다 2011년 3월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정부의 미흡한 수습 때문에 그 위상이 국제적으로 추락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 역사적으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인 한국사회에서는 일본이 그렇게 쇠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당연지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특히 자민당의 아베 신조가 2012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 자리를 차지한 이후, 일본이 1930년대 이래 침략전쟁에서 저지른 야만적 행위를 부정하고 1급 전범들을 ‘모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식화하는가 하면 ‘평화헌법’을 ‘전쟁헌법’으로 바꾸려고 노골적인 작전을 펼치자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그의 ‘신군국주의’와 ‘파렴치한 과거사 물타기’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거세졌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외할아버지의 ‘더러운 피’를 이어받아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린하려고 드는데도 ‘일본의 주권자들은 왜 팔짱만 끼고 있는가’라는 질책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작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기조강연에 나선 아베 일본 총리. 사진=아시히신문
 

아베 정권은 전쟁과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 제9조를 고치기 위해 일본의 해외 파병을 영구화하는 ‘국제평화지원법’, 집단자위권 행사를 보장하는 ‘무력공격·존립위기사태법’, 일본과 인접한 타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위대를 출동하게 할 수 있는 ‘자위대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강공의 배후에는 ‘21세기 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과 유대를 더 굳게 하고 중국에 맞서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8월 30일 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일어난 ‘반 아베, 평화헌법 수호’ 시위는 미국에 대한 간접적 항의 표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민중 주도의 항쟁이나 민주화운동이 한국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황’을 ‘현인신(現人神)’, 곧 ‘살아 있는 신’으로 보는 뿌리 깊은 관념과 미신이 굳게 자리를 잡은데다, 왕권이 약한 시대에도 봉건영주들에 맞서 민중이 봉기를 일으킨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민중·민주운동사는 찬란하게 맥을 이어왔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1919년의 3·1 독립투쟁, 1926년의 6·10 만세운동, 1960년의 4월혁명,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6월항쟁이 명백한 증거들이다.

   
▲ 30일 일본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안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 집회가 국회 의사당을 에워싸는 형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최 측은 12만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 민중의소리
 

그런데 ‘3당 야합체제’의 산물로 1993년에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사회에서 특히 청년학생운동은 1996년 8월의 ‘한총련 사태’ 이래 약화 일로를 걷다가 미흡한 민주체제인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는 존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축되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범국민적 항쟁에 청소년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괄목할 만한 조직적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창의적이고 발랄한 사고와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교육정책과 취업도 결혼도 뜻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각박한 여건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 스스로가 정치·사회·문화적 주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성 안에만 갇혀 있는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 그 성을 깨뜨리고 나와서 집단과 조직의 힘으로 민주화를 향해 투쟁해 나갈 때 빛과 희망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한국보다 후진적이었던 일본에서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넥타이부대, 아줌마들, 고등학생들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아베 퇴진’과 ‘전쟁 반대’를 외치는 모습이 새삼 깊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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