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새누리당 연찬회 당시 했던 총선 필승 건배사에 대해 사과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탄핵소추안 발의를 검토하기로 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조사의뢰를 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문제의 발언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관심을 모은다. 이번 사안은 과거 다른 당적을 가진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해 적용했던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와 비교해서도 형평성 논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28일 의원워크숍에서 "정 장관의 발언은 위법성이 뚜렷하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국민에게 명확히 위법성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미 문제의 발언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위법성 발언으로 판단을 내리고 정치적 결단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탄핵소추발의안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를 얻어 재적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된다.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 재적 과반수(159명)를 넘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반대를 하면 탄핵소추발의안이 부결된다. 

하지만 부결이 되도 야당 입장에선 정치적 선전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에 밑져도 남는 장사다. 새누리당 반대로 부결이 되면 자당의 총선 승리를 외친 정부 공무원을 비호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선거 중립을 위반했다는 정부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어떤 법적인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7일 정종섭 장관과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 의뢰했다.

두 장관 발언에 대한 조사는 중앙선관위 조사 1과가 맡고 있다. 조사1과 관계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 당사자가 선관위에 방문하거나 서면으로 소명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장관 발언을 인용해 보도한 현장 취재 기자와 발언을 들었던 참석자에 대해서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당사자 소명, 발언 경위, 행사 참석 배경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사무처 직원이 결정하지만 파장이 크거나 논란이 있는 사안의 경우 중앙선관위 위원 9명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의결을 한다. 정종섭 장관 발언도 정치적 파장이 큰 만큼 위원회를 열어 최종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정 장관의 발언 중 '주어'가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는데 이에 대해서도 선관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관계자는 "기존 사례로 놓고 보면 새누리당의 주장도 선거법 위반 판단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전체적인 사안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최경환 장관의 "당의 총선일정에 맞춰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최 장관이 이 같은 내용으로 동향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고 선거법 위반 여부를 따져 하는데 일정부분만 인용돼 보도가 되면서 그걸 가지고는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종섭 장관이 이날 발표한 공식 사과문이 선관위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정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평소 술을 잘하지 않는 저로서 갑작스런 건배사 제의를 받고 건배사가 익숙하지 않아 마침 연찬회 브로슈어에 있는 표현을 그대로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선거 개입 의도가 없었고 발언을 인용한 원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해명으로 보인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정 장관은 "행정자치부는 선거지원 사무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거중립을 엄정히 준수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따라 공무원 적용 범위가 다른데 선거 중립 의무 조항이 9조에는 정종섭 장관도 공무원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선관위가 선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총선 필승' 발언에 대해 공직선거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할 경우 법적 판단의 정당성과 별개로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 발언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선관위라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해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통과됐고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경고를 내렸다. 

선관위는 또한 지난 2007년 6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에서의 한 발언과 관련해 "다수인이 참석하고 일부 인터넷방송을 통해 중계된 집회에서 차기 대선에서 특정정당 집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하는 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에 속한 단순한 의견개진의 범위를 벗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해 선거중립 의무를 준수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반면, 선관위는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여당 원내사령탑"이라는 말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목하고 "선거 심판"을 해달라고 한 취지의 발언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정치권의 국회법 개정안 등 일련의 법안처리 과정을 비판하면서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정 인사를 지목해서 선거에서 심판하라는 발언도 정치문화를 비판하는 와중에 나온 정치적 의견이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달 16일 경제인 사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회동한 모습.
 

 

새누리당은 두 장관 발언을 비호하고 있지만 과거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던 반대편의 인사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위반을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의 발언을 문제 삼아 선거법 위반 내용을 질의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7월 25일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지난 7월 4일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원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제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금지), 제86조(공무원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제255조(부정선거운동죄) 규정 등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 4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김영주 경제정책수석의 '좋은 도시 만들기' 보고를 듣고 ▲적정한 시점이 되면 당에서 주도하는 모양이 되도록 할 것 ▲컨셉을 잘 살려서 내년 지자체 선거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대통령 보고회에 당의 인사들도 참여시켜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당으로 이관되는 방안을 검토하라. 지방자치 선거과정에서 좋은 공약으로 제기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 ▲청와대가 선도적으로 정책을 개발해 당·정협의 때 자연스럽게 당에 토스해 당의 지방선거전략에 맞춰 당에서 발표하는 방식을 취하도록 하라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선거의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 신분의 대통령이 소속 정당의 선거승리를 위하여 청와대가 마련 중인 주요 정책을 열린우리당 지방선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것을 지시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한달 뒤인 8월 30일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동시에 정당정치 제도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담당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당원이라는 이중적 지위에 있는 점, 국가정책의 개발과 집행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행한 발언이라는 점, 대통령 발언이 일반 공무원이나 국민들이 아닌 자신의 비서진들을 대상으로 한 행위라는 점, 선거가 임박해 있지 않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대통령에게 허용되는 정치활동과 정당 활동의 한계를 넘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잣대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정종섭 장관의 총선 필승 발언, 최 장관의 "당의 총선일정에 맞춰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발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선관위가 대통령과 공무원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을 내리면서도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선 엄격했다는 평가도 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9월 19일 당시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은 '경부운하저지 국민행동'이 결성되고 한반도 대운하 공약 반대 활동을 벌인 것에 대해 "규탄대회, 정책철회운동, 서명운동 등의 활동이 특정 후보으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볼 수 있느냐"고 질의했고 이에 선관위는 "일반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그 선거공약을 반대하거나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개최하거나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 107조, 제254조, 위반"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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