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시리즈 인터뷰, 논(論)과 쟁(爭)을 연재합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시작으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 릴레이 인터뷰는 도서출판 답과 함께 진행하고 향후 인터뷰 전문은 따로 책으로 묶어 출간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이철희 - 제가 2000년 총선의 경험과 2002년 대선의 경험을 여쭤 본 이유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인적 혁신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시 이회창 총재는 리더십이 확실했잖아요.

윤여준 - 그렇죠. 총선 때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총재였고, 대선 때에는 차기 대통령 당선이 확실하다는 카리스마가 있었죠.

이철희 - 그런데 야당의 문재인 대표는 그만한 권한도 없고, 대중적 지지기반도 얕아요. 그렇다면 인적 쇄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여준 - 공천개혁 하는 데 당내를 설득하긴 어려워요. 계파이익이 있고, 개인 이익이 있으니까요. 누가 순순히 승복 하겠어요? 그러면 국민이 납득하는 걸 해야죠. 그래서 국민이 지지해주면 그 힘으로 내부를 돌파할 수밖에 없죠. 다른 힘이 뭐가 있어요? 공천 개혁을 하더라도 무슨 원칙이나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맨날 계파를 초월한다는 말만 골백번 해봤자 의미 없어요. 믿는 사람도 없고. 당이 뭘 하고자 하는지를 국민한테 제시해야죠. 국가 현실이 이렇고, 정치가 이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 이러 이러한 인재를 국회에 진출하겠다는 게 있어야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당이 하고자 하는 일에 국민적 동의를 얻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포진시키겠다 하면 국민이 인정해 줄 거 아니겠습니까. 국민의 지지가 확실하게 있으면 당내에서 반대하기도 쉽지 않죠.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인가, 여섯 번째 아닌가요. 어느 분은 당의 이름을 혁신당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합디다.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있어요. 맨날 뼈를 깎는 혁신을 하겠다니까 아예 당 이름을 혁신당으로 바꾸라는 거예요.

이철희 - 대중이 동의할 만한 과감한 개혁을 하면, 탈당 등의 일부 출혈이 있더라도 상관없다?

윤여준 - 네. 있어도 이깁니다. 선거 이겨요.

이철희 - 대세엔 지장 없다?

윤여준 - 그럼요.

이철희 - 과거 이회창 총재는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본인이 최종 결단을 내려서 개혁적 선택을 한 거잖아요. 그만큼 대표 리더십이 중요한 거죠.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려도 리더십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윤여준 - 문재인 대표의 행보를 지켜보면 안전한 길을 모색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그 사람 앞에 안전한 길은 없어요. 백범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낭떠러지에서 풀포기를 잡고 매달려 있어도 이걸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떨어져 죽어야 된다는 게 아니잖아요. 충무공이 이야기하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국민한테 호소해야죠. 그러면 국민이 밀어줍니다. 자꾸만 안전한 길을 모색하려고 하면 죽어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사진 = 도서출판 답 제공.
 

이철희 - 지금 이 상태를 전제로 보면 내년 총선 전망을 어떻게 보세요?

윤여준 - 이 상태로? 민주당은 궤멸적 타격을 입을 겁니다.

이철희 - 궤멸적 타격이라, 지금의 130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윤여준 - 어림도 없어요.

이철희 - 많이 깨진다.

윤여준 - 지금 민심이 아주 심각해요.

이철희 - 그렇다고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윤여준 - 그래도 더 나쁘니까 야당이.

이철희 - 비유하자면,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보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거죠.

윤여준 - 더 커요. 훨씬 커요. 더 보기 싫다는데 뭐.

이철희 - 투표율이 낮으면 새누리당이 이득을 보는 점도 있구요.

윤여준 - 물론이죠.

이철희 - 그렇다면 20대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선전하거나 이기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요?

윤여준 -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한다고 저렇게 진통을 겪고 있지만 아무도 기대를 안해요. 제가 만나는 열 명 중에 열 명 모두 다 관심이 없거나 안 될 거라고 보더라구요. 국민적 인식이 이렇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면 지금까지 여러 차례 거듭됐던 혁신으론 안 돼요. 뭘 내놔도 언론의 평가는 재탕이라고 할 겁니다. 이런 수준의 혁신안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당이 뭘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한테 분명하게 제시하고, 동의를 받아야 해요

이철희 - 대표의 몫은요?

윤여준 - 가장 큰 책임은 대표에게 있는 거겠죠. 한국 정치를 정치의 변동이라는 차원에서만 보면, 권력은 이 세력 이 세력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나 그게 사회 변혁을 가져오진 않았어요. 집권 세력은 교체됐으나 사회가 변화된 건 별로 없어요.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더군다나 지금은 엄청난 전환기이기 때문에 사회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 가야만 돼요.

경제, 지금 이대로 갈 수 있습니까?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이대로 갈 수 있겠어요? 지금 대의제도는 파탄에 와 있어요. 이거 그대로 갈 수 있어요?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 욕구를 수용할 겁니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와야 해요. 그러려면 정치권이 이걸 선도해야 되잖아요. 나름 진단하고, 이거 이거를 우리가 하겠다고 하고, 후보를 거기에 맞는 사람을 내면 야권 분열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늘 야권 분열론을 앞세워서 깨지면 안 된다 이런 식이잖아요. 식상하죠.

이철희 - 언제나 닥치고 통합이었죠. 저는 연대나 단일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그것만이 유일한 전략인 건 단연코 아니라고 봅니다.

윤여준 -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안 깨지고 간다고 쳐요. 누가 조여 줄 겁니까? 전 깨지는 게 능사라는 게 아닙니다. 늘 그걸 앞세웠듯이 이번에도 통합만 유지하고 가고자 한다면 궤멸적 타격을 받을 거란 얘기에요. 국민이 인정해주는 어떤 개혁적인 것을 제시하면 안 깨질 겁니다. 국민이 지지하는 당을 왜 나가겠습니까?

이철희 - 국민이 지지하는지 안 하는지를 뭐로 확인합니까. 여론조사, 정당지지율?

윤여준 - 그거야 여러 가지 있죠.

이철희 - 야당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정책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고, 새누리당과 다른 것도 있는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언론이 안 받아 준다고 그래요.

윤여준 - 부분별 정책으로 가면 그런 경향이 있죠. 언론이 정책정당을 지향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정책을 내놓으면 안 써줘요. 우리 언론의 큰 병폐입니다.

이철희 - 게다가 메이저 언론은 보수 편향성을 갖고 있잖아요.

윤여준 - 그런 점도 있죠. 부분별 정책에서 크게 차별화된 것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미세한 차이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미세한 차이를 보고 선택을 해야 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거기까진 안 돼요. 그러니까 그 점에서 승부가 나진 않아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의 문제를 제시하라는 거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사진 = 도서출판 답 제공.
 

이철희 - 예컨대 시대정신이나 시대 담론, 이런 게 될 수 있나요

윤여준 - 우리나라가 지금 어떤 현실에 있느냐 진단해야죠. 보세요, 전자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잖아요.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 자기 분야의 변화를 예측해서 쓴 것을 보면 10~30년 사이에 일어날 변화를 이야기해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에요. 하지만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가치관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꿀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행동양식이 바뀌어요. 우리만 피할 수가 없어요. 이미 현대자동차가 5년 안에 무인 자동차를 상용화한다고 그랬어요. 그런 변화가 10년 이내에 온다면 금방이에요. 지도자는 그걸 내다보고 이야기를 해야죠. 그러면서 우리 당을 어떻게 바꾸겠다, 바꿔서 이렇게 하겠다,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철희 - 어떻게 보면 답은 뻔한데, 왜 안 되는 걸까요?

윤여준 - 못하고, 안 해서 그렇죠. 의지의 문제고, 능력의 문제죠. 못하더라도 의지가 있으면 남의 지혜를 빌릴 수 있어요. 의지가 없으니까 안 빌리는 겁니다.

이철희 - 국정이 이 모양인 것과 야당이 헤매는 것, 듣고 보니 같은 이유네요.

윤여준 - 그렇죠. 지금 민주당이 맡으면 지금 정부가 하는 것보다 나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이철희 - 그래도 선의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요? (웃음)

윤여준 - 그럼 낫다고 해둡시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운영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에 비춰보면, 국가운영을 맡았을 때 어떨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국민이 알기 때문에 안 찍어 주는 겁니다.

이철희 - 권력이 10년마다 교체된다는 10년 주기설이 있잖아요.

윤여준 - 그건 일반론적인 얘기죠. 근데 일반론이 반드시 맞으라는 법 있어요?

이철희 - 맞습니다. 10년 주기설은 허구죠.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건 민주정부 10년 후 새누리당이 권력을 다시 잡았을 때 한 번뿐이니까요. 반복된 패턴도 아닌데, 그걸 믿는 건 엉터리예요. 그래도 야당이 다분히 낙관적인 견해를 갖는 근거 중에 하나는 후보가 앞서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요?

윤여준 - 후보? 어떤 부분에서 앞선다는 거예요.

이철희 - 인지도도 앞서고,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한 때 1~3등이 다 야권에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만.

윤여준 - 합치면 표가 많다?

이철희 - 네.

윤여준 - 산술적으로 보면 그렇죠. 근데 이걸 알아야 돼요. 지금 여권은 지배연합입니다. 선거에서 새누리당하고만 싸운다고 봐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죠. 새누리당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에요. 지배연합과 싸우는 겁니다.

이철희 - 좋은 지적이시네요.

윤여준 - 그 지배연합이 한국 사회의 물적 기반을 다 가지고 있어요. 후보 개인은 야당보다 열세인 후보가 있을지 몰라도 여권에겐 그걸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어요. 새정치민주연합은 없어요. 새정치민주연합은 후보 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선거를 치르겠죠. 여권의 지배연합이 갖고 있는 역량의 총체는 어마어마한 거라구요. 가볍게 보면 안 돼요.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구요. 이대로 가면 선거 또 지죠.

이철희 - 그러니까 야권의 후보역량, 예컨대 인지도 등의 측면에서 앞선다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새누리당 앞에서는 허망한 변수, 제약적 변수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윤여준 - 아, 그럼요. 여권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능력이 있어요.

이철희 - 여당은 여당대로 고민이 있는 거 같아요. 고민 안 할 수 없겠죠?

윤여준 - 당연히 하겠죠. 왜 안하겠어요?

이철희 - 그 시대랑 딱 맞아 떨어지면서도 보수에 부합하는 섹시한 후보가 아직은 눈에 안 띄니까, 그런 고민이 있겠죠? 유승민 전 대표는 대선 후보로 성장할 될 수 있을까요?

윤여준 - 2017년에? 그건 빠를지 모르죠. 그런데 대통령이 유승민 전 대표를 찍어냈지만 되레 그를 크게 키워주는 결과를 낳았잖아요. 유승민 전 대표가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국회에서 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내용적으로 굉장히 좋다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연설 보고 저는 새정치민주연합 큰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새누리당이 이렇게 가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 못 이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새누리당이 살길은 유승민 전 대표가 그 연설에 밝힌 방향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승민 전 대표를 몰아냈으니 그 길로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두고 봐야죠. 유승민 전 대표의 약점은 아직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겁니다. 사실 리더의 이미지를 그간 심을 겨를이 없었다는 게 맞겠죠. 그런 핸디캡이 있긴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앞으로의 리더는 테크노크라트적인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철희 - 현재 여권의 대권주자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유승민 전 대표에게 주목하는 점도 있겠죠?

윤여준 - 그럼요, 당연히 있겠죠.

이철희 - 김무성 당 대표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윤여준 - 여당의 대권주자는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거든요. 아무리 지지도가 낮고 퇴임하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제도적인 권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국회법 파동에서 보듯이 김무성 대표에게서는 무지 무지 고민하는 게 보이잖아요. 그러면서 자기 목소리도 내야 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처럼 곤혹스런 처지라는 걸 감안하고 보면 그런대로 처신 잘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런 점을 국민, 특히 여권 지지층에서 평가해 주는 거 같더라구요. 정치력이 있다는 거죠.

이철희 - 나눌 줄도 아는 거 같아요. 중국어로 따거(大哥), 형님 리더십이라 할 수 있잖아요.

윤여준 - 그런 이미지가 있죠. 동양에선 그런 게 먹히는 측면이 있어요.

이철희 - 지금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정치 스타일이 대범하기보다는 좀 잘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김무성 대표는 성큼성큼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니깐 박수받는 거 아닐까요?

윤여준 - 그럼요. 상대적으로 돋보이니까요. 사실이 뭐든 통이 큰 것 같고, 덩치도 크고, 보폭도 크고, 목소리도 중후하고, 여러 가지로 그런 게 있잖아요. 사람이 커 보이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상대적으로 국민에게 좋게 비치고 있는 거 같아요.

이철희 - 근데 야권에선 여전히 김무성 경시론 같은 게 있어요. 폄훼론이랄까, 별거 없다며 하찮게 보던데요?

윤여준 - 옛날얘기 하나 해드리죠. 3당 합당하고 나서 민정계가 YS를 얼마나 깔봤는데요. 3당 합당 작업 할 때 실무적인 심부름은 정무비서관인 제가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좀 알아요. 저는 기자로서 DJ나 YS를 겪어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민정계는 YS를 굉장히 깔봤어요. 그래서 내가 경고했거든요. ‘YS를 깔봤다간 큰 코다친다.’ 그것과 똑같은 경우는 아니죠. 김무성 대표가 YS와 같은 급은 아니기도 하구요. 그러나 상대방의 그 대표를 깔보고 경시하면 당해요. 경적필패(輕敵必敗)란 말이 있잖아요. (웃음)

이철희 - 대개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능의 발로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경쟁을 할 때엔 오히려 상대를 크게 봐주는 게 맞잖아요.

윤여준 - 그렇죠.

이철희 - 특히 선거는.

윤여준 - 그럼요.

이철희 -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변수를 거론할 때 지역, 세대, 계층, 이념을 말하곤 하는데,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 어느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할까요?

윤여준 - 아직은 지역적 요소가 클 걸요. 2017년까지는 도리 없지 싶어요.

이철희 - 지역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면 지역 크기나 덩치에서 작은 쪽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 되잖아요?

윤여준 - 예. 불리할수록 격렬해지죠.

이철희 - 그러면 지역이라는 프레임으로 했을 때 소수파가 불가피하다면 아예 다른 프레임으로 대체해야 다수파가 될 수 있잖아요. 비유하자면 샅바 싸움부터 잘해야 되는데요.

윤여준 - 다수파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하죠. 지역구도처럼 유리한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는 영역에서 소수파를 강하게 자극하죠. 당연히 소수파가 격렬한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러면 소수의 격렬한 반응이 다시 다수를 자극해서 다수를 결속하기 쉬워요. 이걸 이용해요. 그러니까 지역감정을 철폐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계속 이용하잖아요.

이철희 - 다수파가 소수파를 자극하는 전략을 쓰는군요.

윤여준 - 아니 지금 모른 척 시치미 떼는 거예요.

이철희 - 아닙니다. (웃음) 최근에 그렇게 볼 예가 있을까요?

윤여준 - 지난 5월, 보훈처장이 광주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해서 그쪽에서 격렬하게 반응했잖아요. 내가 광주의 어느 지식인분께 그랬어요. 그걸 왜 격렬하게 반응하냐, 100% 말려드는 거라구요.

이철희 - 일부러 자극하는 것이다?

윤여준 - 나는 증거가 없으니 확언 할 수 없으나….

이철희 - (웃음) 추론이라는 말씀으로 피할 틈을 만드시네요.

윤여준 - 그걸 왜 격렬하게 반응합니까, 그랬더니 여기선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철희 - 그게 일종의 마이너리티 콤플렉스(minority complex)일 수 있죠.

윤여준 - 그런 것일 수도 있죠. 특히 호남은 더군다나 그렇죠. 보훈처장이 그런 목적으로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호남이 격렬하게 반응을 했잖아요. 그런데 최근 호남이나 광주에 무슨 분위기가 있느냐 하면,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광주가 망월동으로 대표되는 거는 바람직스럽지 않다, 외부 세력이 우리를 고립시키려고 해서 우리가 격렬하게 저항한 거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고립시킨 면도 있다, 이제 이걸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광주도 호남도 미래로 가자,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그랬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반 시민의 감정이라는 게 누군가 격발을 하면 폭발하는 거죠.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철희 - 그런 게임을 잘 풀려면 정치세력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야당이 잘해야 되겠네요.

윤여준 - 네, 여당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유혹이나 충동을 느낄 수 있지만 정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선 그래선 안 되죠.

이철희 - 정치세력으로서 또는 정치 분파로서 친박과 친노는 서로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친박과 친노는 서로 편한 상대로 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윤여준 - 적대적 공생인가? 그럴지도 모르죠.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방공간에서부터 극좌와 극우가 중도파를 공격함으로써 적대적 공생 관계를 했다는 거 아니에요.

이철희 - 서로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 또는 악마화하고 부정하는 게임에 빠져들죠. 이렇게 되면 정치가 하향 평준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윤여준 - 그렇습니다. 정치권이 공멸하는 길로 가는 거죠. 정치가 국가를 통치하는 역할을 전혀 못 하면 이건 여야의 문제가 아니에요. 여야를 싸잡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철희 - 정치가 공멸하면 그 피해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서민들한테 가는 거죠?

윤여준 - 물론이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철희 - 긴 시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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