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감옥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지낸다는 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샤르(32·가명)는 그곳을 Prison(감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경기도 화성의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난 1년6개월간 구금돼 있었다. 한국 정부는 ‘보호’라고 하지만 유엔난민기구는 “자유의 박탈이나 폐쇄된 장소에 갇혀 자의로 떠나는 게 허락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교도소나 특별한 의도로 건설된 구금센터, 폐쇄적 시설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바샤르의 고향은 카슈미르다. 카슈미르는 인도 서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에 위치해 만년 설산을 볼 수 있다.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이다. 고급 의류 소재로 쓰이는 캐미시어가 바로 카슈미르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카슈미르는 분쟁지역으로도 유명하다. 70년째 준전시상황이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 인도 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됐는데 카슈미르 지역 역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편입됐다. 해방 이후 소련과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한반도를 떠올리면 쉽다. 카슈미르는 한국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두 차례나 겪었으며 소규모 분쟁은 일상이 됐다. 그리고 소규모 분쟁의 가운데 독립운동이 있다. 

 

   
▲ 바샤르(가명)씨에게 발부된 파키스탄 정부의 체포영장. 사진=이하늬 기자
 

“단 하루도 감옥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바샤르는 카슈미르해방전선(JKLF) 당원이다. 이들은 인도도, 파키스탄도 아닌 카슈미르 자체의 분리독립을 요구한다. 바샤르는 이에 대해 “카슈미르만의 민주적 국가이며 종족, 종교의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주의적인 국가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샤르가 카슈미르해방전선에 가입한 건 지난 2001년이다. 그는 2008년부터는 해방전선의 지역본부에서 회장으로 일했다. 

<민족21> 2008년 10월호에 따르면 이들은 각 지역에서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고 게릴라 전을 벌여온 무장세력으로 유명하다. 파키스탄과 인도 정부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바샤르가 활동했던 지역은 파키스탄에 속한다. 한국일보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양국 정부가 이들은 탄압하는 과정에서 카슈미르 주민 7만여 명이 사망했고 17만5000명 이상의 난민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바샤르도 탄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진행된 바샤르의 난민 면접조서 기록을 보면 바샤르는 2009년 6월에 3일간 납치됐다. 그는 자신을 납치한 이들이 파키스탄 정보국 ISI라고 주장했다. “3일 동안 고문실에서 다른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왜 파키스탄을 반대하느냐. 활동을 계속하면 너도 이곳으로 올 수 있으니 카슈미르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바샤르는 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두 차례 더 연행됐고, 지난 2013년 6월에는 그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그는 체포영장 발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활동이 국가의 독립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많이 느낍니다. 한국과 달리 독립운동은 살인죄 정도로 취급됩니다. 잡히면 저를 죽이거나 평생 감옥에 가둘 것입니다.” 실제 동료 두 명이 정보국에 끌려간 이후 주검으로 돌아왔다고 바샤르는 강조했다. 

 

   
▲ 바샤르씨가 변호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변호인과 당사자의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정보국에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온 동료

바샤르는 카슈미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미 여러 동료들이 해외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호주를 목적지로 잡았다. 호주로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우디 국적의 위조 여권을 만들었다. 사우디 국적 여권은 비자없이도 호주로 입국이 가능하다. 그에게 한국은 ‘거쳐가는 곳’ 이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주로 가는 날 인천공항, 위조여권이 적발됐다. 바샤르는 호주행 비행기가 아닌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로 가야했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는 바샤르에게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 “인천공항에서 잡혔을 때 난민신청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변호사를 선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으나 모두 묵살당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제 63조에 따르면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여권 미소지 등의 사유로 즉시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없으면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 바샤르가 화성보호소로 보내진 근거다. 화성보호소에서 바샤르는 12명에서 18명이 수용된 방에서 지냈다. 방에는 공중전화와 TV, 개인사물함, 침구보관용선반 등이 있다. 

“왜 내가 여기에 오게 됐는지,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 난민신청은 언제 할 수 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3일째에 담당 공무원이 왔는데 한다는 말이 ‘난민인정 되는 건 굉장히 어렵다. 3년이고 4년이고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라. 여권 어디있나’ 였습니다. 여권이 있었으면 저를 출국시켰을 겁니다.”

   
▲ 바샤르(가명)씨가 난민 신청을 위해 한국 정부에 제출한 자료. 사진=이하늬 기자
 

          
난민 신청자에게 “돌아가라, 여권 어디있냐”고 묻는 나라

카슈미르에서 싸우던 그는 한국에서도 싸워야했다. 카슈미르에서는 독립이 싸움의 이유였다면, 한국에서는 깨끗한 음식의 제공, 영어신문 구독, 하루 1시간 운동시간 보장 등을 위해 싸웠다. 외국인보호소 규정에 따르면 난동·폭행 등 보호시설의 안전이나 질서유지를 해치는 행위를 하거나, 담당공무원의 직무집행이나 명령에 따르지 아니했을 때 당사자는 독방에 보내진다. 그는 수차례 독방에 갇혔다. 

“난민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복사를 하겠다고 항의 하니까 저를 독방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첫 번째 독방 구금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구금된 건 카레가 식판에 아무렇게나 부어져 나온 것에 항의했을 때였습니다.” 바샤르는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얻기 위해 큰 소리를 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독방에 갈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난민신청자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화성보호소 독방은 약 2.8평이다. 방 한쪽 끝에는 변기와 수도꼭지가 있는 화장실이 있고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높이의 시멘트 턱’이 생활공간과 화장실 사이에 있다. 천장에는 CCTV가 1대와 형광등이 있다. 창문과 환기시설, 난방장치는 없다. 바샤르는 “독방은 겨울에 에어컨을 튼다”고 말했다. 바샤르의 변호사는 “에어컨을 틀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추워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샤르는 이같은 화성보호소 생활을 1년 6개월째 하고 있다. 난민 인정 심사와 이의신청에 따른 2차 심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샤르는 파키스탄 정보국으로부터 발부받은 체포영장 사본과 이미 해외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동료들의 진술, 그가 속한 카슈미르해방전선에 대한 탄압 사례가 서술된 국제 보고서 등을 제출했다. 바샤르 변호사는 “다른 난민 신청자에 비해 바샤르의 증거는 상당히 풍부하며 진술도 구체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체포 하루, 이틀 후에 석방된 것을 보면 이로 인해 박해받을 가능성은 소멸됐다 △약 3일 만에 (납치에서) 풀려났으며, 심한 고문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고 (납치) 이후 5년이 경과돼 이로 인한 박해의 공포가 충분하지 않다△체포영장 발부는 합법적 절차로 보이며 신청인은 재판을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박해가 있다고 해도 신청인의 나이와 지위 등을 고려할 때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바샤르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난민신청 현황. 사진=난민인권센터
 

“1년 6개월 구금, 난민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난민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건 바샤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난민신청이 곧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법무부의 ‘난민업무 처리현황’ 자료를 보면, 1994년부터 올해 5월까지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은 모두 1만 1172명이다.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492명이 전부다. 100명 중에 4명만 인정받는 셈이다. 때문에 대다수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신청-이의신청-소송의 단계를 거친다. 바샤르 역시 소송중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바샤르가 화성보호소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이다. 출입국관리법은 이들을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고만 규정해놓았지 ‘언제까지’ 에 대해서는 정해놓지 않았다. 3개월이 넘는 경우 3개월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부인데, 사실상 특별한 절차없이 법무부장관의 승인이 이뤄지고 있다. 보호소에서 장기 체류하는 난민들이 생기는 이유다. 

바샤르는 이같은 문제에 항의하며 지난 4월 14일부터 6월 10일까지 57일간 밥을 먹지 않았다. 난민에 대한 구금이 부당하다는 이의신청서도 제출했다.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83Kg이던 몸무게는 61kg까지 줄었다. 단식이 계속되자 화성보호소는 3개월간 구금을 일시해제했다. “화성보호소에는 3년 2개월째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3년 징역형을 살 범죄인가요?”

해외의 경우 난민신청자를 ‘구금’ 하더라도 최대 기간을 정해둔다. 대한변협 보고서에 따르면 가령 뉴질랜드는 6개월이 넘는 구금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보안구금의 최대치를 12개월로 두고 있다. 12개월이 되면 예외를 두지 않고 석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구금이 더 필요한 이유는 국가가 입증해야 하며,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일정 거주지를 지정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보호 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바샤르는 인터뷰 마지막에 “사실 난민신청자에게 이런 인터뷰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응하는 중요한 이유는 ‘보호소’에 대해 알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지낸다는 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라는 걸 한국 정부는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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