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에서 합의된 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경찰과 군대 같은 공권력을 생각한다. 하지만 공권력이 아님에도 국민의 합의로 느슨하게 허용되는 또 하나의 폭력이 있다. 카메라다. 불시에 권력자를 찾아가 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조명하는 카메라는 일종의 폭력이다. 영상 저널리스트는 그 합의된 폭력을 사용해 권력을 감시한다.

흔히 ‘앰부시(ambush)’로 불리는 매복 인터뷰는 대표적인 카메라 폭력이다. 복싱에 비유하자면 예고 없이 쳐들어가는 훅이고 좌우를 예측할 수 없는 잽이다. 잘 단련된 노회한 권력자의 가드를 해제시키고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대중 앞에 폭로하기 위한 공세적 기술이다. 그 기습적인 폭력 앞에서만 권력자는 이미지가 아닌 원본을 드러낸다. 뉴스타파가 앰부시를 즐겨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카메라는 길들인 사냥개처럼 고분고분 명령을 따라 움직인다. 물론 방향을 바꿨을 뿐 이때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위력적인 폭력이다. 무엇을 함으로써 해를 입히는 폭력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권력의 독재와 부패를 부추기는 부작위의 폭력이다. 이때의 카메라는 용역깡패와 합심해 철거민을 치는 경찰들처럼 뒤돌아서 국민을 향해 가르고 들어오는 배신자의 칼날이다.

혹자들은 예고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앰부시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언론윤리에 어긋난다는 점잖은 지적이다. 때에 따라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마키아벨리의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한 행동만을 하고자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의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컷뉴스
 

황우여 교육부장관을 보자. 그는 항상 준비된 상황에서 나타난다. 준비된 상황이란 곧 권력자들이 설계한 상황이다. 길들인 카메라들이 그 기획에 동원된다. 황 장관과 같은 정치가들은 뜻밖의 질문이나 의도치 않은 상황에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늘 웃는 낯으로 여유 있게 정책을 설명하고 기자들과 담소하는 황 장관으로부터, 다수의 대중들은 권위 있고 유머감각 있는 권력자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전달받는다. 

이것은 진실인가. 교육부는 ‘교육역량강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대학에 지원하던 돈을 끊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간섭으로 총장직선제 폐지를 부산대에 압박했다. 명분은 국립대 ‘선진화’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립대 길들이기라고 그 의도를 짐작했다. 결국 압력에 굴복한 부산대 총장이 직선제 폐지 방침을 밝히자, 고 교수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대학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황우여는 그 술책을 선두지휘한 교육부의 수장이었다.

이때 영상 저널리스트는 잘 계획된 이미지들의 홍수에 맞서 교육부의 기만을 직관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장면을 구상해야 한다. 따라서 앰부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사건 이후 우리 방송팀은 교육부 장관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한 앰부시를 기획했다.

   
▲ 지난 19일 국회에 출석한 황우여 교육부장관에게 질문을 건네는 정재원 뉴스타파 기자. 사진=정재원 기자 제공.
 

이윽고 죽음 이틀 후, 카메라는 황우여 장관을 찾아갔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흔한 예의바르고 요지를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그 순간 카메라 폭력이 교육부 장관과 맞부딪혔다. 기습이었다.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교육부의 거짓말을 드러내기 위해 카메라는 황 장관에게 폭력을 가했다. 관리된 이미지만 노출하던 그는 당황했고, 종종 걸음으로 도망치거나 교육부 고위 관료들 뒤로 숨어 가드를 지시했다. 편한 질문만 골라 답변하며 신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온 권력자의 민낯이었다.

죽음 다음 날, 곡소리가 낮게 깔린 고 교수의 빈소에 갔다. 유족의 입장을 인터뷰에 담아보려는 생각이었다. 빈소에 들어섰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삼각대와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때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고인의 딸이 우리를 향해 걸어 나왔다. 혈색이 없고 눈자위가 부어 있었다. 딸은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냐고 물었다. 내밀한 슬픔의 공간에 무차별적으로 들어선 카메라는 테잎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폭력이다. 나는 성급히 그 검은 주먹을 거둬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숨겼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폭력을 악용하지 않으려면 항상 섬세하게 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교육부의 기만을 폭로한 이번 방송이 유족분들께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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