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주말 드라마 <여자를 울려>처럼 초반의 이야기와 많이 달라진 드라마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겠다. 애초에 형사 출신의 여주인공(김정은)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고등학교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학교 폭력에 맞서는 내용이 그려졌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녀를 둔 시청자에게는 감정이입을 할만 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삶의 전선에서 분투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학교 폭력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자 교사(송창의)와 사랑을 키워가고, 마침내 재혼을 이루는 과정도 긍정적인 흥미를 자아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방영초기에 다수의 언론매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어느새 이들의 애환과 분투는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패륜드라마의 전개였다. 여기에서 막장 드라마라는 말 대신, 패륜 드라마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있다. 막장은 신성한 노동의 공간이라는 점을 일단 인정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을 남용하는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과분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막장 대신에 패륜 드라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패륜이란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일을 말한다. 특히 패륜드라마는 가족이나 형제, 부부간에 하지 말아야할 짓을 밥 먹듯이 등장시킨다. 보통 상식적으로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는 물론 미풍양속도 개의치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 나은수(하희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각종 계략으로 가족을 곤경에 빠뜨리는가하면, 협박과 위해를 가한다. 자신이 재벌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악녀의 본격 등장이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조차 성립할 수 없고 모두 정략이거나 이해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남편은 25년간 사라졌으며, 아들은 절망에 자살 기도가 빈번하고, 시부는 며느리를 쫓아낼 궁리만 한다. 올케와 시누이는 서로 모략에 음해하고 몰아낼 궁리만 한다. 동생은 형수를 사랑한다. 가족관계는 이익을 두고 경쟁과 전쟁을 벌이는 관계이다. 특히 시부 강태환(이순재)에게 복수를 시행한다.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맹활약을 했던 연민정 같은 악녀 캐릭터가 다시 부활한 듯싶다. 똑같지는 않지만 결국 나은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재미를 그대로 다시 한 번 누린 셈이다. 배우 김정은은 시청자를 낚는 미끼가 된 셈이다.

   
▲ MBC 드라마 <여자를 울려>
 

드라마 <여자를 울려>는 여자를 울린 것이 아니라 많은 시청자를 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청자를 우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애초의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드라마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를 울려>는 좀 더 교묘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요즘 방송 프로그램 제작 행태를 강화하고 있다. 초반에는 기획의도를 살려 드라마를 전개하다가 점차 패륜드라마로 흘러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설정과 사건의 구성은 어느새 애초의 기획의도를 망각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달리 전환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일까. 처음에 패륜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으면 아예 시청자 유입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뒤에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보통 드라마의 시청행태는 관습적이다. 관습적이라 함은 습관화됨을 의미한다.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계속 보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번 익숙해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그 연속성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시청행위를 유지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해당 방송 프로그램을 충성도 있게 소비하는 것과는 별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청률에서는 이러한 내면적인 측면은 반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한 번 보기 시작한 드라마를 계속 보는 행태를 악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특징을 시청자의 탓으로만 돌리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정 시청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메커니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렇게 한번 본 드라마를 계속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특정 드라마의 시청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잘 보지 않거나 아예 보지 않던 드라마를 새롭게 보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특히 배경과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려면 에너지가 들어간다. 따라서 만약 지금까지 보던 드라마가 마음에 안 들어도 다른 드라마로 바꾸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현상이 일어난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 계속 보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에너지 체계의 흐름인 셈이다. 그 흐름을 끊거나 전환하려면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투여한 노력과 시간을 포기해야한다. 이른바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이 '여자를 울려'와 같은 패륜 드라마의 시청행태에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는 발언은 무책임하고 책임을 시청자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자신이 애초에 기대했던 장면이나 결말을 기대하면서 시청행태를 이어간다. 하지만 대부분 그러한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MBC 드라마 <여자를 울려>
 

보통 과장광고와 홍보는 처벌을 받는다. 애초에 광고와 홍보를 통해서 알렸던 것과 실제 내용물이 달랐을 때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소비자에게 져야 한다.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은 이에 대해서 자유롭다. 처음에 알렸던 기획 의도나 홍보와 달라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기획의도와 홍보의 내용과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다른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그것을 문제 삼는 일 자체가 이상한 일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각각의 장면들이 현행 방송심의법에 저촉되는가일 뿐이다.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관습적인 시청행태를 악용하는 방송프로그램 행태는 적절하게 제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청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신뢰보호가 확립될 필요가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 메커니즘에 바탕을 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단체에서도 애초의 약속과 달라지는 프로그램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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