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시리즈 인터뷰, 논(論)과 쟁(爭)을 연재합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시작으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 릴레이 인터뷰는 도서출판 답과 함께 진행하고 향후 인터뷰 전문은 따로 책으로 묶어 출간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정치권을 대표하는 전략가(strategist)로 불린다. 청와대(비서관, 수석), 행정부(장관), 의회(국회의원)를 두루 경험한 보기 드문 인사이기도 하다. 2000년 총선 때에는 한나라당(신한국당)의 총선기획단장으로 개혁공천을 주도했다. 윤 전 장관은 열린 보수, 합리적 보수로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2012년에는 야권의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윤 전 장관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안철수 의원이다. 안 의원의 멘토 역할을 하다 2015년 안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 때 헤어졌다.

이철희 - 윤여준이란 이름 석 자를 거론할 때엔 흔히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전략가라고 하잖아요. 마음에 드세요?

윤여준 - 아니, 그거 잘못된 거예요. 언론이 그렇게 포장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일 뿐, 제가 무슨 전략가예요 전략가는.

이철희 - 아무튼 한국을 대표하는 전략가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잖아요.

윤여준 - 전략가는 이철희 소장이죠.

이철희 -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웃음)

윤여준 - 오죽 전문가면 정치전략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운영하시겠어요. 이 소장 같은 사람이 전략가이지, 내가 무슨….

이철희 - 저는 못하니깐 연구 좀 해보려고 그런 이름을 지은 게 전부입니다. 이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예컨대 선거를 치를 때 약한 쪽이 더 치열하게 절실하게 움직여야 되잖아요. 근데 현실은 안 그런 거 같아요.

윤여준 - 안 그렇죠. 요즘 많은 국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집권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거에요.

이철희 - 그래요?

윤여준 - 그냥 당권만 가지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들에겐 집권보다 당권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당권만 쥐고 있으면 제1 야당으로 있는 게 훨씬 좋다, 그러니 굳이 집권하겠다는 의지를 안 갖는다, 이렇게 보는 국민이 많아요.      

이철희 - 집권 의지라….

윤여준 - 그게 없다는 거예요. 있으면 저렇게 할 수는 없다는 거죠.

이철희 - 왜 없을까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배출해 봤으나 국회의원으로서는 별로 득 보는 거나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것일까요?

윤여준 - 여당 돼 보니 안 좋다는 거죠. 국정에 책임은 져야 되니까 골치 아프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 선거 어려워지잖아요. 우리나라는 여당이 되면 선거가 더 어려워지는 점이 분명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선 좀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점진적 하락이란 대세는 피할 수 없어요. 반면에 야당일 때엔 늘 집권 세력에게 반대하고 저항만 해도 기본 점수는 따는 것이니 쉽잖아요.

이철희 - 국회의원으로 집권보다 재선에 더 목을 맨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죠.

윤여준 - 굳이 집권하려고 애쓸 필요가 뭐가 있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얘기 많이 들어요. ‘민주당은 집권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철희 - 새정치민주연합이 집권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진단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내부를 좀 따져보면 당원들이나 지지층들은 집권 열망이 매우 큰 데 반해 소속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툭하면 개헌을 얘기하고, 시도 때도 없이 공천권을 놓고 계파 싸움에 몰두할 뿐 집권 준비는 뒷전인 게 대표적인 예죠.

윤여준 - 저도 그런 생각입니다. 특히 호남 유권자들은 정권 교체를 정말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열망에 부응해야 할 의원들이 영 딴판이라는 거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아요. 다시 재선이 돼서 국회의원을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하지, 집권을 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본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이철희 - 주로 청와대를 비롯해 행정부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가 2000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가셨는데, 그때는 한나라당 시절이었죠?

윤여준 - 예, 한나라당입니다.

이철희 - 그때 한나라당의 변화라고 해야 할까요, 인적 혁신을 주도 하셨잖아요?

윤여준 - 아…, 제가 주도했나요. 건의를 했을 따름이죠. 주도가 아니라 건의예요. 당시엔 당의 대표를 총재로 불렀는데요, 이회창 총재에게 제가 건의하고, 그 양반이 받아들였으니까 이 총재가 혁신한 거죠.

이철희 -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는 윤여준의 작품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윤여준 - 아니 그럼 안 되죠. (웃음)

이철희 - 정치의 가장 추한 모습이 드러날 때가 후보 공천 때라고들 합니다. 총선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다 똑같지만 특히나 현역 국회의원들은 거의 죽기 살기로 매달리기 마련인데요. 그때 공천 개혁하기 쉽지 않았죠?

윤여준 - 그렇죠. 이 총재가 당초에 총선기획단장을 맡으라 했을 때 저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자리는 선거 프로가 맡는 건데 저는 제 선거도 치러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거 망칩니다. 못 합니다.” 그랬더니 이 총재가 다른 사람을 천거해 보래요. 조건이 뭐냐고 물었죠. “100% 개혁적이어야 하고, 100%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더러 천거하래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가만히 있었죠. 그러니까 당신 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 아니냐, 잔말 말고 맡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맡았습니다.

이철희 - 총선기획단장은 총선을 치르는 사실상의 전략 사령탑이니 뜻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요. 왜 그처럼 한사코 안 맡으려고 하신 겁니까?

윤여준 - 제가 왜 안 맡으려고 했냐? 이 총재가 정치에 들어올 때 국민에게 약속한 게 있어요. 3김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 들어간다고 그랬어요. 이제 총선 공천권을 쥔 총재가 됐으니 그 약속을 지킬 기회가 온 거잖아요. 그런데 3김식 정치를 청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김식 정치를 상징하는 사람을 바꿔야 해요. 그러려면 속된 말로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맡기 싫은 게 당연하죠. 그런데 할 수 없이 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날 집사람한테 그랬어요. “나는 얼마 있다 집으로 올 거다. 내 소신대로 하면 당이 난리가 나서 그 책임을 지고 내가 떠나게 될 것이고, 내 소신이 안 받아들여지면 난 그날로 집어 던지고 올 거다.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당당하게 난 집에 올 거야.” 그랬더니 집사람이 웃으면서 아주 좋아해요. 왜냐하면 집사람은 제가 정치하는 것을 굉장히 반대했거든요. 그러니 뭐 관두고 온다니 집사람은 대환영일 수밖에요. (웃음)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철희 - 개혁공천의 과정에 숱한 고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윤여준 - 그때 제가 이 총재에게 가서 그랬죠. “자, 이제 개혁 공천을 해야 합니다.” 그땐 언론이나 시민사회에서 공천개혁을 엄청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때 낙천운동이 펼쳐질 정도였으니까 물갈이 압박이 상당히 강했죠. 그래서 내가 이 총재한테 약속은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개혁공천을 해야 하는데, 야당의 입장에서는 자칫하다간 당이 깨지니 양적인 개혁을 못 하니 질적 개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질적인 개혁은 어떻게 하는 건지 묻더군요. 그래서 소수의 상징성이 강한 인물을 바꾸는 거라고 대답했죠. 그게 누구냐고 되묻기에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명했죠. 제가 김윤환, 이기택, 황낙주까지 언급하니깐 이 총재가 말을 자르면서 “당신 미쳤구만” 이래요. (웃음) “아니 이 사람아, 지금 우리 당은 김윤환 사단과 이기택 사단이라는 양대 산맥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금 그 양대 산맥의 보스 목을 쳐.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냐?”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다시 드렸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만요. “당신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못 한다. 왜냐하면 내가 비록 정치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그 어려운 기간 동안 내가 가장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이 허주(김윤환의 호)와 이기택 씨야. 그런데 어떻게 목을 치나. 난 인간적으로 못 한다.”

이철희 - 정치적 필요성을 떠나 당의 리더로서 그만한 인간적 고뇌는 당연히 해야죠.

윤여준 - 저도 인간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그런 개인적인 인연으로 따지면 제가 더 괴롭습니다. 허주가 대통령 비서실장할 때 제가 비서관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정무1장관으로 갈 때도 저를 차관으로 데리고 간 사이입니다. 또 이기택 씨는 기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치면 제가 훨씬 더 괴롭습니다. 지금은 총재님이 국민과 역사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이 더 무거우냐, 개인적인 신의를 지키는 것이 더 무거우냐, 이걸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느 쪽이 더 무겁습니까?” 이 총재가 즉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더니 한 말씀 하십디다. “당신 말이 옳은데 그래도 안 돼!”

이철희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공천 결과를 보면 물러서지 않으신 거 같은데요.

윤여준 - 총재로부터 승낙을 받을 때까지 읍소도 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별짓 다 했어요. 이 총재 주변의 양정규 수석부총재, 하순봉 사무총장이 맹렬하게 개혁공천을 반대했어요. 저더러 위험한 이상주의자, 위험한 개혁주의자라고 하면서, 그 반대가 굉장했어요. 그래도 전 제 고집을 안 꺾었어요. “그렇지 않다. 태평양이 겉에서 보면 태평한 바다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해류가 얼마나 거칠게 흐르냐. 지금 민심이 그런 거다. 이걸 우습게 봤다가는 당도 총재도 한 칼에 간다. 민심을 거스르면 한 방에 죽는다.” 참 많이 싸우고, 논쟁도 지겹게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 총재가 결론을 내렸어요. “양쪽 얘기 충분히 들었는데, 난 윤 단장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정이 난 겁니다. 그 후에 공천 결과가 발표됐어요, 제 기억으로는 아마 그 날이 금요일이었을 거예요. 그전까지 그렇게 개혁 공천을 요구했던 신문들이 딱 발표되니까 금요 대학살이라고 표제를 달더라구요. 금요 대학살!

이철희 - 윤여준이란 사람의 강단이나 맷집도 참 어지간하시네요. 독하십니다. 거의 박근혜 대통령급인데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사진 = 도서출판 답 제공.
 

윤여준 - 하필 거기다가 비교를…. (웃음) 당시 어느 신문인가는 조그마한 활자로 원흉은 윤여준이라는 소제목까까지 달아서 내보냈어요. 어떻게 언론기관이 정당의 공천에 학살이라는 표현을 씁니까. 안 그래요? 원흉이 뭐에요. 대역 범죄를 지은 사람을 두고 원흉이라고 그러잖아요. 대한민국 언론의 후진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정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각설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이 총재께서 수용하고 결단해 시행한 거니까 그건 이회창 총재의 작품이죠.

이철희 - 이회창 주연, 윤여준 연출의 드라마, 멋진 한 편의 드라마네요.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주목해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때에도 공천심사위원회가 있었죠.

윤여준 - 당연히 있었죠. 제가 이 총재한테 공천심사위원회를 공동위원장 체제로 하자고 그랬어요. 왜냐? 당내에서만 맡으면 개혁이 안 됩니다. 그래서 외부 인사 하나, 내부 인사 하나 해서 공동위원장 체제로 가야 한다고 한 겁니다. 이 총재가 누가 좋은지 묻기에 홍성우 변호사를 추천했습니다. 저는 그 양반 모를 때에요. 그런데 여러 사람한테 들어본 바로는 그런 양반이 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 총재는 잘 아는 사이라면서도 하지만 안 할 거라고 예상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찾아뵙고 말씀은 드려보겠다고 하고, 홍 변호사를 제가 찾아갔어요. 말씀드렸더니 일언지하에 거절 하시더라구요. (웃음)

이철희 - 와, 대단한 분이네요.

윤여준 - 제가 개혁공천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을 드렸어요. 그러면서 한 번 도와주시라고 했죠. 그 양반이 다 듣고 나더니 당신들이 그런 생각이라면 해주겠다고 하십디다. 그래서 그 양반이 양정규 수석부총재하고 공심위 공동위원장을 맡았어요. 지금은 원내대표라고 합니다만 그때는 원내총무라고 했는데, 이부영 의원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총재 허락을 받아서 개혁공천을 밀어붙이더라도 공천심사위에서 통과 안 되면 그만이에요. 근데 그걸 관철시켜준 게 홍성우 변호사하고, 이부영 원내총무예요. 특히 홍성우 변호사는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개혁공천 안하겠다면 당장 기자들 불러놓고 기자회견 하겠다고까지 했어요. 2000년의 개혁공천은 이회창 총재의 결심과 홍성우 변호사의 도움, 이것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철희 - 개혁공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군요.

윤여준 - 예, 그렇습니다. 바꾸는 논리도 중요해요. 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허주나 이기택 등은 워낙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특별히 개인적인 과오나 비리가 있다는 게 아니라 상징성 때문에 배제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상징성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지역구 여론조사를 활용했습니다. 지역구 여론조사를 해서 지지도가 높으면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면 유권자 의사를 존중해야 하니까요. 이 총재가 이 원칙과 방법에 대해 좋다고 하면서 추진하라고 해서, 조사를 해 봤더니 공교롭게도 이 분들 모두 지지도가 다 바닥이에요.

이철희 - 아, 그게 교체지수라는 거죠?

윤여준 - 예, 그때 처음으로 교체지수를 도입 했어요. 정당 공천 사상 처음이었어요. 공천심사 자료는 객관성이 있어야 되잖아요. 어떻게 객관성을 살릴까 노력을 하다가 교체지수를 처음 만들었거든요. 당시 김윤환 같은 분은 거물이잖아요. 그런데 선거구 조사를 해보니까 지지도가 바닥이에요. 그때 그런 거물이 여섯 분 있었는데 다 그래요. 그대로 보고했더니 총재가 잘못된 조사라고 믿을 수 없다고 해요. 저도 사실 믿기지 않았어요. 대개 지역별로 네 번쯤 조사 했어요. 여론조사 기관을 바꿔가면서. 지방 같은 경우는 서울에 있는 기관 셋을 해 보고, 현지에 있는 기관을 통해서도 한 번 조사를 해보았죠. 그런데 데이터는 놀랄 만큼 흡사하게 나오더라구요. 총재도 결과에 대해 의아해 여기기도 해서 자세히 알아봤더니 이 분들이 평소에 지역구 관리를 안 한 거예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사진 = 도서출판 답 제공.
 

이철희 - 그 분들은 왜 그랬을까요? 뭐라 그래도 지역구 표심을 얻어야 하는 건 국회의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인데….

윤여준 - 나중에 선거 때 다른 방법으로 표를 얻으면 됐지 하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지역구 관리를 안 한 거죠. 그래서 그 분들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 워낙 지지도가 낮았기 때문이에요. 유권자 지지도가 높으면 못 바꾸죠. 왜냐면 지역구 유권자 의사 가장 존중 받아야 하니까요.

이철희 - 상징성이 있어도?

윤여준 - 그럼요. 그 지역구 유권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요. 절대적으로 그 의사 존중해야지요.

이철희 - 그 공천에서 탈락하신 분들이 탈당해서 당 만들었잖아요. 당명이 민국당(민주국민당)이던가요.

윤여준 - 만들었죠. 그래서 선거에 다 출마했어요.

이철희 - 천하의 윤여준이라도 당시에는 상당히 겁이 났을 것 같은데요?

윤여준 - 공천 파동이 나는 바람에 책임지고, 원흉이니까 (웃음) 저는 집으로 와 있었거든요. 어느 날 제가 이 총재 집에 찾아가서 물었죠. “총재님, 후회하십니까?” 아니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근데 후회하지 않는다는 어조에 자신이 없어 보이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선거는 우리가 이깁니다. 국민이 개혁공천을 인정해주실 겁니다.” 말씀은 그렇게 드렸지만 저도 내심 불안했죠. 선거 결과를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나중에 결과가 좋게 나온 거 보고 정말 등골이 오싹하더라구요. ‘와, 국민이 이렇게 무섭구나.’ 제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철희 - 그때 선거에서 이겼죠?

윤여준 - 다수당이 됐죠. 그때 공천 탈락한 뒤 따로 해서 당(민국당) 만들어서 출마한 분들은 지역구에서 전원 낙선했어요.

이철희 - 비례대표로 되신 분은 있었던가요?

윤여준 - 한 명, 한승수 의원이 당선됐죠.

이철희 -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총리로 발탁된 분이군요. 그렇게 어렵게 당선된 분이 훗날 총리가 됐으니 정치인의 미래는 참 모를 일이네요.

윤여준 -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됐는데, 그걸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국민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고, 다른 한편으로 국민이 참 고맙더라구요. 국민이 잘 모르는 거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정당이나 정치인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진정으로 옳은 일을 하고자 하면 국민이 밀어줘요. 정혜신 박사가 한 말이 있잖아요. ‘민중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저는 그 말을 확신하거든요. 민중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아요.

이철희 - 왜 무의식이라고 그랬을까요, 의식이 아니라?

윤여준 - 아…, 그게 이런 것 아닐까요.

이철희 - 집단 지성하곤 또 다른 개념이죠.

윤여준 - 예, 다른 개념이죠. 사람의 의식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게 있어요. 평상시에는 의식을 못 하니 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그게 의식인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해석을 했어요. 저는 심리학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니까 잘은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민중의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무의식이 사실은 의식이라는 거죠.

이철희 - 민중의 의식은 언제나 옳다, 이러면 제가 반론을 펴려고 했는데 무의식이라 하니까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윤여준 - (웃음) 정 박사는 진짜 놀라운 경구를 던진 거예요.

(다음주 금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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