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박효종 위원장)가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내린 법정제재에 대해 법원이 잇단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정치 편향’ 시비가 끊이지 않는 심의위의 여야 6대 3 구성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통신심의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여당이 과반수를 추천하는 행정기구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나 권력에 대한 의혹, 문제제기를 심의하는 것은 통제 효과를 불러와 그 자체로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처장은 “방송심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이중 잣대’로, 방통심의위는 장르별 특성을 고려하는 대신 정파성에 따라 매체를 차별 심의하고 있다”며 “심의위는 대통령이 9인의 위원을 위촉하고 그중 6인을 정부여당이 직접 추천토록 해 인사권을 통해 얼마든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이므로 지난 7년간 입증된 이 제도의 실패를 인정하고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1년 1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추적 60분> 중징계 결정에 대해 “천안함 의혹을 잠재우고자 하는 MB정권의 청부 심의”라고 비판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처장은 심의위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정치심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난 2013년 5월 23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위기 조성에 양보 없다>라는 리포트를 사례로 들었다.

이 리포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동 헬리콥터 ‘수리온’의 실전 배치를 축하하는 기념식에 참석해 장병들을 격려했다는 내용의 보도였지만 심의위는 앵커화면에 나온 북한 인공기를 문제 삼았다. MBC가 박 대통령 얼굴 바로 옆에 인공기를 합성해 배치하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가린 것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심의위는 이 리포트에 대해 과징금 이하 최고 제재인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결정을 내렸다.

김 처장은 “이쯤 되면 심의가 아니라 대통령 ‘심기경호’라 해야 할 법하다”며 “정부·정책에 대한 보도는 공정성 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며, 현행 규정을 따른다 하더라도 최소심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방송사가 심의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모두 13건으로, 이중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시청자에 대한 사과’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종료된 사건을 제외하면 심의위는 12건 중 6건의 소송에서 패했다. 

김 처장은 또 심의위가 불법·유해정보의 경우 사법적 판단 전에 자의적으로 심의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인터넷 행정심의에 대해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한 규제는 자율규제 형식으로 개편해야 하며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 함께 심의위를 해체하고 방송심의기구의 위상을 대폭 축소해 구성과 운영은 정치적 독립성을 회복하고 시민참여와 자율규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와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가 주최해 ‘방송통신심의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날 토론자로 나온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심의위로부터 ‘주의’(벌점 1점) 처분을 받은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과 <김현정의 뉴스쇼>의 행정소송 승소 판결을 들며 “심의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원 구성에서부터 정치적인 바람을 너무 많이 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심의를 할 경우 객관적 심의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기자는 “방송심의에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공정성과 객관성 조항을 적용하면 빠져나갈 방송 프로그램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방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며 “민주화 이후 보도지침이 불가능하니까 정부가 심의위를 통해 언론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의 방향을 제시하는 ‘신형 보도지침’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힐난했다.

권 기자는 이어 “심의위의 심의를 5년여 지켜본 결과 심의위원들이 사무처 직원보다 높은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면서 “심의위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너무 낮고, 방송사가 법정제재에 소송을 제기해도 정작 징계했던 위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잘못된 심의를 내린 위원들에 대해 민사적 책임이라도 지도록 하는 보완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주식 KBS PD협회장은 “심의위원 구성에서부터 여야가 추천하는 6대 3 비율로 선임돼 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져도 표결에 부치면 결국 징계는 집권여당이 추천한 위원들이 결정한다”며 “이 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전원합의제나 특별다수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국가기관인 방통위에 방송심의 기능을 두지 않고 언론계의 자율적 심의 기구 건립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이 대법원에서 제재조치 처분 취소 확정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심의위의 결정을 주도한 위원에 대한 도덕적 비난 외에 어떤 추가적인 조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KBS 경영진은 이제 약한 제재를 받아도 제작진을 징계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바꾸려고 끊임없이 시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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