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 논란이 벌어졌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문제의 인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차기 이사진이 공영방송사 사장을 선임하고 다음 총선·대선까지 임기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을 정권의 손발로 만들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임기가 지난 8일 끝났지만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선임 논의를 아직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다. 야당추천 김재홍 위원은 “위원장이 단 하나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몇 주째 상황이 그대로”라고 말했다. 갈등의 표면적인 이유는 ‘인사원칙’에 관한 견해차다.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위원들은 법에서 규정한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적이 있거나 3년 내에 특정후보 캠프에서 일한 경우 등의 결격사유자는 지난달 1차 심사에서 걸러졌다.

야당 위원들은 ‘공영방송 이사선임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삼석 위원은 “결격사유는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자격’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라며 “공영방송 이사로서 제대로 된 자질을 갖고 있는지는 위원회 차원에서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 야당위원들은 △3연임(9년) 금지 △정파 나눠먹기식 인사 금지 △ 공공성 및 공정성 구현 책임자 선임 등 ‘3대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 KBS 이사직에 지원한 차기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왼쪽)와 이인호 KBS 이사장. (사진 = 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정부가 차기환·김원배·김광동 방문진 이사, 고영주 방문진 감사 등 논란이 불거진 인사의 연임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총선과 대선 때 공영방송을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야당 관계자는 “차기환 이사의 경우 MBC를 단기간에 망가뜨리며 정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는데, 그를 무리하게 KBS에 보내는 건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정권에 유리한 방송을 만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번 인사는 정부여당이 아닌 청와대에서 직접 골랐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극우’와 ‘친박’ 중에서도 최적의 인사를 뽑았다는 이야기다.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언론홍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송장악은 없다던 청와대가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리며 개입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 바 있다”면서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승리를 위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와 시도가 있다면 이는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큰 그림’에는 공영방송 장악 뿐 아니라 우경화를 통한 장기집권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KBS 이인호 이사장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박효종 위원장이 뉴라이트”라며 “방송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하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삼석 위원은 “당장은 공영방송을 이념전쟁터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넓게 보면 국정 교과서 추진 등과도 맞물린 문제”라며 “정권차원에서 중립성이 확보돼야 할 분야를 정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새언론포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사회단체는 7일 오후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이사 3연임을 반대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최성준 위원장의 태도는 모호하다. 회의를 공전시키면서 야당 위원들의 요구를 단 하나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통위원장이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논란이 된 인사를 강행하면 책임론이 불거져 부담이 있지만 청와대 낙점 인사이기 때문에 방통위원장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성준 위원장이 고의로 시간을 끈다는 분석도 있다. 추혜선 정책위원장은 “시간을 끌어 이사선임 강행의 명분을 얻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방문진 임기가 끝났으며 오는 31일 KBS 이사회의 임기 역시 끝난다는 점도 야당 위원들에게 부담이다. 김재홍 위원은 “공영방송 이사는 후임자가 선임 안 될 경우 자동으로 임기가 연장돼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건 ‘시기’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적임자를 뽑는 것”이라며 “다만, 진전이 없으니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삼석 위원은 “방송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래서 여야의 추천인사들이 논의를 통해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방통위의 기본구조인데 이번 이사 선임 과정에서는 어떤 장치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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